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주1이다.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 중의 한 곳으로서 대표적인 불교 성지이다. 신라 때 자장율사(慈藏律師)가 당나라 청량산에서 문수보살(文殊菩薩)을 주2 석가모니불의 진신 주3와 가사(袈裟)를 전수받아 643년(선덕여왕 12)에 귀국하였다. 그 뒤 오대산 상원사(上院寺), 태백산 정암사(淨岩寺), 영축산 통도사(通度寺), 설악산 봉정암(鳳頂庵) 등에 사리를 봉안하고 마지막으로 이 절을 창건하여 진신 사리를 봉안하였으며, 사찰 이름을 흥녕사(興寧寺)라 하였다.
신라 말에 징효대사 절중(折中)이 주4 선문구산(禪門九山) 중 사자산문(獅子山門)의 개산 사찰이 되었다. 당시 헌강왕은 이 절을 중사성(中使省)에 예속시켜 사찰을 돌보게 하였다. 그러나 891년(진성여왕 5) 주5로 소실되었고, 944년(혜종 1) 주6. 그 뒤 다시 불타서 천년 가까이 작은 사찰로서 명맥만 이어왔다.
1750년과 1863년에 편찬된 『해동지도(海東指圖)』와 『대동지지(大東地志)』에 ‘법흥사’로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1799년과 1830년에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와 『관동지(關東誌)』에는 ‘흥녕사’로 표기되어 있어, 조선 후기에 법흥사로 사명이 바뀌었지만 흥녕사가 함께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1902년 비구니 대원각(大圓覺)이 중창한 이후에 법흥사로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1912년에 다시 화재로 소실된 뒤 1933년에 지금의 터로 적멸보궁을 이전하여 중수하였다.
현존하는 주7로는 적멸보궁을 비롯하여 극락전, 조사전, 삼성각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적멸보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주8으로 1939년에 중수하였으며, 법당 안에는 불상을 봉안하지 않고 있다. 적멸보궁 뒤에 있는 영월 법흥사 부도에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져온 진신 사리가 봉안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부도 옆에는 영월 법흥사 석분(강원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이 있다.
석분 뒤쪽에 돌로 된 관이 있는데, 이름 높은 스님의 사리 또는 유골을 모시던 곳일 수도 있으나 기록에는 승려가 수도하던 토굴과 같은 역할을 하였던 곳으로 전한다. 그 내부 구조로 보아 고려시대에 축조 또는 보수된 것으로 추정된다.
영월 법흥사 부도 옆에 석함이 있는데, 자장율사가 석가의 진신 사리를 담았던 것이라고 전한다. 그러나 『범우고』에는 “토굴 안에 길이 1장에 폭 5촌(寸)쯤 되는 석함(石函)이 있는데, 위에 뚜껑이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주9인 패경(貝經)을 넣었던 함이라고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만 이 사찰에 앞뒤 가득 범어로 쓴 패엽경(貝葉經) 한 장이 전해지고 있다. 석분, 석함에 관해서는 연구가 더 필요하다.
이 밖에도 보물로 지정된 영월 흥녕사지 징효대사탑비, 강원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징효국사 부도(澄曉國師浮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