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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올림픽대회(─大會)

체육의식행사

 1988년 9월 17일부터 10월 2일까지 서울에서 열린 올림픽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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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올림픽대회 휘장
이칭
서울올림픽, 88서울올림픽, 88올림픽
분야
체육
유형
의식행사
성격
스포츠경기대회
행사시기
1988년 9월 17일∼1988년 10월 2일
행사장소
서울특별시
시대
현대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1988년 9월 17일부터 10월 2일까지 서울에서 열린 올림픽대회.
키워드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는 ‘화합·전진’의 기치 아래, 전세계 160개국이 참가해 올림픽사상 최대 규모로 진행되었다.
1981년 9월, 올림픽의 서울 개최가 결정된 후부터 온 국민의 기대와 전세계의 관심 속에 준비가 진행되어, 경기가 개최된 16일 간 뿐만 아니라 이전, 이후의 모든 일정이 성공리에 끝을 맺었다.
이 대회에서 한국은 종합 4위를 차지했는데, 스포츠 뿐만 아니라 한국의 고유 문화와 우수한 경기 운영 역량을 전세계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유치경위
제24회 올림픽대회를 서울에 개최하기 위한 유치활동은 1979년 9월 19일 국민체육심의위원회 7인 소위원회의 유치결의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이 유치결의는 9월 21일 정부에 의해 정식으로 승인되었으며, 10월 8일 서울특별시장이 올림픽 유치계획을 공식발표했다.
1980년 3월 7일 문교부 체육국 주재 관계기관 회의를 계기로 올림픽 유치활동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9월 29일 대한올림픽위원회(Korean Olympic Committee, KOC) 10인소위원회와 11월 6일 대한올림픽위원회 확대상임위원회를 거쳐 12월 2일 서울특별시가 국제올림픽위원회(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 IOC)에 올림픽 유치 후보도시로 신청하게 되었다.
이에 12월 15일 국제올림픽위원회는 대한올림픽위원회에 올림픽 유치에 따른 질의서를 보냈으며, 12월 23일 문교부에 올림픽 유치 대책협의회가 구성되어 질의응답서 작성 등 실무작업이 본격화되었다.
이어 1981년 2월 13일 국제올림픽위원회로부터 서독 바덴바덴 총회에 참석할 대한민국 대표단원 규모를 통보해 달라는 요청이 왔으며, 2월 26일 정식답변서를 제출하고 3월 27일 올림픽유치대책위원회 및 세부 계획안을 작성했다.
3월 30일부터 4월 4일 사이 서울이 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는지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국가올림픽위원회(National Olympic Committee, NOC) 조사단의 방한이 있었고, 4월 4일부터 8일 사이 같은 목적으로 국제올림픽위원회 조사단이 방한했다.
그리고 6월 9일부터 11일 사이 국제스포츠연맹(International Sports Federation, ISF) 조사단이 서울에 다녀갔으며, 7월 9일부터 11일 사이 전상진(全祥振) 대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이 베네수엘라에서 개최된 미주(美洲) 국가올림픽위원회 총회에 참석, 올림픽 유치교섭을 벌였다.
8월 6일부터 9일 사이 대한올림픽위원회는 인도의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인 라자 발린드라 싱을 서울로 초청했고, 8월 16일부터 20일 사이 노르웨이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 스타우보를 초청, 올림픽 유치에 협조해 줄 것을 요청했다.
9월 18일 정주영(鄭周永)을 위원장으로 하는 대한민국대표 추진위원회를 바덴바덴에 파견,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했다.
영역닫기영역열기개최의의
1981년 9월 30일 바덴바덴에서 열린 제84차 국제올림픽위원회 총회에서는 1988년 하계올림픽의 개최지로 서울을 선정했다. 한국의 서울과 일본의 나고야[名古屋]가 입후보했는데, 이 총회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이 비밀투표를 실시한 결과 52 대 27로 서울이 개최권을 획득하게 되었다.
인류의 화합과 번영을 추구하는 스포츠의 대제전인 올림픽의 서울 개최는 두 가지 커다란 의미를 갖고 있었다.
첫째는 동서 세력의 대치현상이 계속되는 상태에서 분단국가인 한국에 세계 여러 나라가 모이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1980년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제22회 올림픽대회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이유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 60여 개국이 불참했고, 1984년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최된 제23회 올림픽대회는 소련 등 동유럽 국가 18여 개국에서 역시 불참했다.
이처럼 올림픽이 정치적 대결로 중대한 위기에 처한 시점에서,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제24회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게 된다면 세계평화를 정착시키는 새로운 전환점이 마련될 수 있는 것이었다.
스포츠를 통한 동서의 화해, 그것은 이념과 체제의 갈등을 해소하고 인류의 영원한 전진을 약속한다는 의미에서 더욱 비상한 관심을 집중시켰던 것이다.
둘째는 멕시코를 제외한 역대 올림픽 개최국이 모두 선진국이었는데, 한국은 선진국도 후진국도 아닌 개발도상국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었다.
한국은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공산권 및 미수교국과 경제·문화·스포츠 교류를 활발히 추진하게 되었으며, 한국 국민이야말로 진정으로 평화를 희망하는 민족임을 실천으로 보여주게 되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가 서울올림픽 개최를 결정한 것도 스포츠를 사랑하는 한국민의 적극적인 자세를 편견 없이 받아들인 것이며, 인류의 스포츠대제전이 정치적인 이유로 손상되거나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대회준비 및 운영
1. 대회경비(재정)
서울올림픽 개최가 확정된 뒤 7년 동안, 각종 시설과 준비 및 운영에 투입된 비용은 모두 2조 3826억 원에 이른다. 이 중 대회 직접사업비는 1조 1084억 원이고 여건조성사업비는 1조 2742억 원이다. 이 비용에는 체육시설투자·올림픽대로 건설 및 한강종합개발·김포공항 확장공사·가로정비 등 사회간접자본 투자도 포함되어 있다.
2조 3826억 원 규모의 투자에 따른 생산유발 효과는 4조 7504억 원에 이르기 때문에 소득유발 효과는 1조 8462억 원 정도로 추산되었다.
서울올림픽 폐막 직후 박세직(朴世直)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은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과 함께 공동 기자회견을 했는데, 서울올림픽은 2520억 원의 흑자를 기록한 대회였다고 발표했다.
총지출은 5890억 원이었고 총수입은 8410억 원이었다. 그러나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자체의 재정흑자 2520억 원 가운데는 정부출연금 371억 원, 선수촌·기자촌·패밀리아파트 분양기부금 1315억 원, 국민성금 565억 원, 올림픽공원 내 조형작품 조성기부금 90억 원 등 모두 2341억 원의 기부금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순수한 올림픽 관계 이익금은 179억 원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는 또한 이익금 중에서 12억 7000여만 원을 국제올림픽위원회 지분으로 할당하고 올림픽공원 내에 있는 세계평화의 광장에 1억 8000여만 원을 들여서 올림픽운동 기념비를 건립하기로 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 지분이란 당초에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와 국제올림픽위원회가 합의했던 사항으로서, 서울올림픽을 통해 1000억 원 이상의 흑자를 내면 0.48%를 국제올림픽위원회에 할당하고, 1000억 원 미만이면 20만 달러 이하를 할당하기로 한 것이다.
수입 부문을 세분하면 텔레비전 방영권료 2188억 원, 아파트 분양수익금 1315억 원, 휘장사업 수입금 819억 원, 기념주화 판매수익금 1208억 원, 올림픽복권 수입금 1174억 원, 국내외 성금 565억 원, 광고수입 282억 원, 입장권 판매수입금 209억 원, 선수촌과 기자촌 입촌료 116억 원, 우표 판매수익금 25억 원, 조형작품 조성기부금 90억 원, 정부출연금 371억 원, 이자 48억 원 등이다.
2. 경기장
서울올림픽에 사용된 경기장은 모두 34개이며 연습장은 72개였다. 개회식과 폐회식, 축구와 승마 결승전, 그리고 육상경기가 거행된 올림픽 주경기장은 송파구 잠실동에 있는 메인스타디움으로서 필드의 넓이는 105×67m, 수용인원은 7만 명이다.
이 경기장은 건축가 김수근(金壽根)의 설계로 만들어졌으며, 1986년 제10회 아시아경기대회 때도 메인스타디움으로 사용되었다. 스탠드가 2층으로 꾸며졌고 스탠드 위에 완만한 곡선의 지붕을 씌웠기 때문에 한국적인 미와 조화를 느낄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이 잠실 주경기장은 세계적인 명물이 되었으며, 한국을 상징하는 조형물로서도 그 가치를 높이 인정받게 되었다.
이 밖에 송파구 방이동에 마련된 올림픽공원에는 사이클경기장(트랙 333.3m, 수용인원 6000명)·체조경기장(바닥넓이 67×43m, 수용인원 1만 5000명)·펜싱경기장(바닥넓이 70×55m, 수용인원 7000명)·역도경기장(바닥넓이 50×35m, 수용인원 4000명)·테니스경기장(면 18개, 수용인원 1만 5000명)·수영경기장(연면적 7585평, 지하 1층 지상 3층의 경영풀: 50×25×3m, 다이빙풀: 25×25×5m, 연습풀: 50×12·5×2m, 수용인원 1만 명) 등이 있고, 경기종목에 따라 각종 경기장이 분산되어 있다.
제10회 아시아경기대회 때도 사용된 농구경기장(바닥넓이 49×42m, 수용인원 2만 명)·복싱경기장(바닥넓이 48×40m, 수용인원 8000명) 등은 송파구 잠실동에, 조정경기장(코스 132×2212×3m, 수용인원 2만 5000명)은 경기도 광주군 미사리에, 승마경기장은 경기도 과천시에 있는 서울승마공원(마장마술 11면, 수용인원 3만 명)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에 있는 종합마술경기장(마장마술 28∼32㎞)에서 각각 치러졌다.
서울대학교·한양대학교 체육관은 각각 탁구와 배구경기장으로 사용되었으며, 상무체육관은 레슬링경기장으로, 장충체육관은 태권도경기장으로 사용되었다. 요트경기는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수영만에 설치된 4개 경기장에서 거행되었다.
3. 선수촌
쾌적한 주거환경 조성과 충분한 휴식여건을 제공해 최상의 신체조건을 유지할 수 있고, 친목과 화합 분위기를 도모해 최적의 안전유지를 목표로 건립된 것이 서울올림픽의 선수촌이었다.
서울올림픽이 개막되기 14일 전인 9월 3일부터 선수들을 맞아 올림픽이 끝난 3일 뒤인 10월 5일에 모든 선수을 돌려보낸 이 선수촌에는 모두 1만 3626명이 투숙했다. 입촌비는 1인 1일 42달러였으며, 주요 시설은 아파트 86동으로 여기에는 선수·임원 숙소와 라운지·관리실·국가올림픽위원회사무실 등이 있었다.
선수회관은 지하실에 대표단 부사무실·휴게실·진료실·국제행사 부사무실·디스코테크·주방·창고 등이 있고, 1층에 안내센터·국가올림픽위원회 서비스센터·전신전화국·식당·경기안내센터·비디오 및 유선텔레비전(CATV)실·우체국·은행·식전사무실, 2층에 식당·극장·전자오락실·탁구장·한국관(관광안내소)·항공안내소, 3층에 쇼핑센터·국제올림픽위원회 사무실·이용원·미용원·당구장·세탁소·음악감상실·다방·회의실·사진관 등이 있었다. 이 밖에 행정센터·선수촌본부·IP라운지·합동상황실·병원·종교관 등이 고루 갖추어 있었다.
급식은 42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선수회관 1층과 2층 식당에서 카페테리아식으로 AD카드에 의한 자유급식제를 채택했다.
메뉴는 5일 주기였으며 1일 영양가는 6000㎈ 이상이었다. 아침 밥은 6시부터 10시까지, 점심시간은 11시부터 16시까지, 저녁시간은 17시부터 23시까지였으며 남은 시간에는 간이식을 제공했다.
숙소 관리에서 소모품은 룸메이드를 통해 수시로 보급했으며, 정리정돈 및 청소도 룸메이드가 담당했다. 리넨류는 무료 서비스, 시트·베갯잇은 3일에 1회씩, 타월류는 1일 1회씩 세탁했다. 전화기·텔레비전·전열기(커피포트) 등은 안전관리상 선수숙소에 전혀 지급하지 않았다.
각국 선수단이 입촌할 때는 반드시 선수촌 내 야외 국기광장에서 입촌 공식행사를 하고 상견례를 마친 뒤에 입촌했다. 매일 저녁 8시에는 선수회관식당에서 재촌자(在村者) 중 그날이 생일인 선수들을 위한 생일축하 행사를 가졌다. 행사는 먼저 축하음악 및 축하의 말에 이어 생일을 맞는 선수의 인사말이 있고 선물증정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대회기간 중 희망하는 선수들을 대상으로 경인지역의 우수생산업체를 시찰하게 했으며, 서울시내 중류 이상 가정에 대한 가정방문도 실시했다.
4. 메인프레스센터와 올림픽방송센터
보도진의 취재와 송고활동에 적합한 시설·장비·물자와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운영함으로써,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해 메인프레스센터(Main Press Center, MPC)가 설치되었다.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의 한국종합전시장 별관에 마련된 메인프레스센터는 1988년 9월 3일부터 10월 5일까지 운영되었으며, 주요 시설으로 공동기사 작성실, 언론사 개별 사무실, 임시 전신전화취급소, 기자회견실, 사진현상소, 카메라 수리 및 대여소, 식당, 의무실, 경기결과 복사 배포실, 공동시청실 등이 갖추어져 있었다.
서울올림픽을 전후해 메인프레스센터를 이용한 보도진은 인쇄매체의 취재기자 3864명, 사진기자 533명, 기술보조원 800명이었는데, 그 중 외국 기자가 4297명이고 국내 기자는 900명이었다.
각 경기장에는 메인프레스센터의 기능을 대행할 수 있는 SPC가 따로 설치되어 있었으며, 각 SPC에는 보도석·공동 기사작성실·임시 전신전화취급소·인터뷰실·휴게실 등이 마련되어 있었다.
MPC에서는 보도지원을 위해 공식 기자회견 및 정례브리핑, 보도자료 제작과 배포, 취재 안내센터 운영, 기타 홍보자료 배포 등을 담당했다.
또한, 보도사진 서비스를 위해 사진현상소와 카메라 수리 및 대여소를 설치, 운영했고, 메인프레스센터와 경기장 간의 필름을 전달하는 일과 각 경기장 내 사진 촬영지역을 선정해 주는 일 등을 했다.
이 밖에도 순환버스와 렌터카로 보도진의 수송편의를 제공했고, 언어가 통하지 않는 기자들을 위해 통역을 해주는 언어서비스를 했으며, 기자촌 및 호텔 등의 숙박 안내를 했다.
인쇄매체 보도진과는 별도로 전파 및 음파매체 보도진을 위한 국제방송센터(International Broadcasting Center, IBC)는 여의도의 한국방송공사(KBS) 본관 옆에 따로 설치되었으며, 규모는 2만 2156평에 지하 2층, 지상 9층이었다.
국제방송센터의 기능은 경기장으로부터 국제영상 및 음향신호의 수신 및 분배, 방송사의 개별 제작, 위성송출 전송기능, 방송인을 위한 등록·예약·안내·전산 등을 서비스하는 것이었다.
국제방송센터를 이용한 방송인은 국내인 3160명, 외국인 6250명 등 모두 9410명이었다. 기본 영상·음향 분배·해설음향 분배·일일 요약물제공·국제송출 은행 등의 기본 시설과, 편집 및 본국 송출 등을 돕기 위한 개별 시설을 비롯, 방송자료 정보제공·예약사무소·회의실·정보센터·은행·우체국·식당·응급실 등 지원시설을 갖추었다.
5. 전산시스템
올림픽에 처음으로 컴퓨터가 등장한 것은 1960년 미국의 스퀘어벨리에서 열린 제8회 동계올림픽 때였다. 비록, 경기결과만을 처리하는 소규모였으나 이때부터 올림픽에서의 컴퓨터 활용이 점차 늘어나게 되었으며, 1972년 뮌헨올림픽을 계기로 본격화되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 때는 종래의 전자전송 시스템인 EMS를 개발해 경기결과 제공 뿐만 아니라, 참가선수·임원·보도진·조직위원회직원 등 모든 올림픽가족 상호 간의 연락체계까지 확립했다.
그러나 제24회 서울올림픽에서는 로스앤젤레스올림픽보다 몇 단계 더 발전된 전산시스템으로 대회의 모든 운영과 진행을 뒷받침했다.
서울올림픽에서 사용된 전산시스템을 기능별로 나누어 보면, 경기운영시스템(Games Information on-Line Network System, GIONS)·종합정보망시스템(Wide Information Network Services, WINS)·대회관리시스템(Seoul Olympic Management System, SOMS)·대회지원시스템(Seoul Olympic Support System, SOSS) 등이다.
경기운영시스템은 참가선수 및 임원의 등록관리, 경기운영 및 결과처리, 경기정보관리 등 3대 주요 업무를 중심으로 대회운영이 원활하도록 돕고, 다양한 정보를 신속 정확하게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었다.
종합정보망시스템은 전자우편 및 경기운영시스템으로부터 경기 정보를 전송받아 제공하는 경기결과 정보 부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세계 52개 나라의 공중 정보통신망 가입자가 즉시 경기결과를 검색, 인출할 수 있게 했다.
공중 정보통신망에 가입하지 않은 국가를 위해서도 텔렉스망을 접속시켜 상호간에 메시지를 자유롭게 교환할 수 있게 한 종합정보통신시스템이었다.
대회관리시스템은 올림픽의 인력관리·입장권관리·등록카드 발급관리·선수촌관리 등의 업무를 전산처리했다. 대회지원시스템은 숙박관리·수송관리·물자관리·연습장관리 등의 대회지원 업무를 전산처리했다.
6. 안전(보안)대책
서울올림픽의 안전대책을 주관한 안전조정 통제본부는 경찰과 군 등 약 11만 2000여 명의 안전 특수임무부대를 편성해 잠실 주경기장과 선수촌 등 300여 개의 대회 관련시설에 배치, 시설의 안전확보와 참가선수단의 신변안전을 완벽하게 보장했다.
국가안전기획부를 주축으로 관계부처 합동으로 편성된 안전조정 통제본부는 올림픽안전대책을 더욱 전문적이고 능률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선수단 신변보호대·경기장경비대·선수촌경비대·관련시설경비대·교통관리대·출입국대책반·소방안전대·식음료안전관리대·대(對)테러특공대·공항경비대 등 16개 기능별로 전문화된 특수 임무부대를 편성, 운용했다.
이 밖에 4500명 규모의 민간 안전자원봉사대를 활용해 상호유기적인 협조관계를 유지함으로써 현장 안전경비활동을 눈에 보이지 않게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조직적으로 수행했다.
안전조정 통제본부는 국제테러 방지를 위해 미국·일본 등 우방각국과 공조(共助) 협력체제를 확립하고, 컴퓨터를 이용해 국제테러분자 6000명에 대해 신원정보와 600여 개의 국제테러조직 동향 등에 관한 자료를 분석, 활용했다.
공항·경기장·선수촌 등에는 금속탐지기 등 6만여 점에 달하는 각종 최신 과학장비를 설치해 올림픽의 안전을 위협하는 모든 위해요소를 사전 색출, 봉쇄했다. 올림픽기간중 테러도발과 돌발사태에 신속히 대처하기 위해 경찰과 군으로 편성된 대테러특공대를 비롯, 폭발물 처리반과 기동타격대를 운용했다.
대테러특공대는 각종 형태의 테러사건을 빠르게 진압할 수 있는 고도의 대테러 작전능력을 갖춘 정예요원으로 구성했으며, 1분에 600발을 발사할 수 있는 소음기관단총, 레이저조준경 등 특수장비를 갖추었다.
또한, 위장된 폭발물을 찾아내기 위해 일단 의심의 여지가 있는 물건에 대해서는 전자식 청진기와 엑스레이 투시기로 철저히 검사했으며, 64마리의 폭발물 탐지견(探知犬)으로 하여금 콤퍼지션4와 같은 금속탐지기로 적발되지 않는 폭발물을 찾아내게 했다.
안전조정 통제본부는 소련 등 참가선수의 전용항공기와 선박에 대해서도 안전경비를 특별히 강화했으며, 참가선수단이 입출국하는 공항(空港)에 영접센터와 의전요원을 배치하고 전용 심사대와 검사대를 운영해 통관수속 지원 등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했다.
각국의 수상급과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 등 주요 인사는 별도로 수행경호하고, 선수·임원 등의 차량에는 무장한 신변보호 요원이 함께 타고 다니며 기동보호했다. 적대관계에 있거나 분쟁 당사국의 선수 임원의 상호마찰과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숙소를 분리, 배치하고 이동할 때도 분리해 호송했다.
선수촌·기자촌·경기장에는 전자경보기·폐쇄회로 TV·금속탐지기 등 각종 과학경보 감시장비를 설치해서 위해 인물과 위해 물품의 출입을 통제하고, 마라톤 등 도로경기와 요트경기장에는 지상 및 수중탐색과 공중감시를 연결하는 입체 경비체제로 임했다.
이와 같은 안전대책을 실시한 결과 대회기간 중 발생한 사고는, ① 위해 물품 소지자 적발 18건, 검거 13명, ② 올림픽 방해책동 시위 16건, 유인물소지 18건, 검거 53명, ③ 출입증 부정사용 발생 21건, 검거 21명, ④ 외국인 절도사건 9건, 검거 15명 등으로 나타났다.
7. 교통 및 숙박
서울올림픽에 참가하는 각국 선수·임원·심판과 IOC·IF·NOC 위원, 귀빈 및 보도진이 입국해서 출국할 때까지, 즉 9월 3일부터 10월 5일까지의 33일 간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에서는 최적의 교통편의를 제공했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선수 임원 1만 4000명, 심판진 2000명, 귀빈 5000명, 보도진 1만 4000명을 34개 경기장, 82개 연습장, 30개 호텔 및 각종 장소에 수송했다.
여기에 투입된 장비는 버스 776대(국방부지원 95대, 수송업체에서 임차 681대), 미니버스 309대(수송업체 임차 254대, 국방부 지원 55대), 승용차 1,340대(휘장사업 420대, 택시회사 지원 603대, 정부투자기관·금융기관·사기업체지원 152대, 국방부 지원 165대), 화물차 69대(화물수송 용역업체 선정), 특수차 62대(구급차·트레일러 등 수송업체 용역, 국방부 지원) 등 모두 2556대였다.
또한, 여기에 투입된 인원은 운전기사 3208명(단기 고용), 정비사 1572명(자원봉사자 포함, 업체 지원), 조직위원회 직원 34명(용역), 행정 및 운영요원 683명(임대) 등 모두 5497명이었다. 수송방법은 선수·임원·심판을 위해 116개 노선에서 순환버스를 운행했으며, 선수단 규모에 따라 전용차를 할당 운행했다.
보도진에 대해서는 기자촌·IBC·MPC·경기장 사이에 순환버스를 운행했으며, 요구에 따라 렌터카(유료)도 알선해 주었다. 귀빈에 대해서는 전용차를 할당, 운행했고 공식행사 또는 연회에 참석할 때는 단체수송을 했다.
숙박은 대상 인원 3만 9960명(선수촌·기자촌 투숙자는 제외)을 관광호텔(1만 6800명)·대회용아파트(1만 2960명)·지정 여관(9700명)·민박(500명) 등으로 분산, 투숙시켰다.
좀더 세분하면 IOC·IF·NOC 대표단은 본부 호텔인 신라호텔을 비롯한 20개 특급호텔(롯데·힐튼·하이야트·워커힐·프라자·조선·앰버서더·가든·팔레스·세종·코리아나·리버사이드·뉴월드·롯데월드·뉴서울·리베라·인터콘티넨탈·스위스그랜드·라마다르네상스·캐피탈)에서 투숙했으며, 올림픽 참가선수 가족 및 관광객은 대회용 아파트에서 투숙했다.
요금은 특급호텔이 8만 5000원∼11만 2500원, 1급 호텔은 5만 3400원∼6만 8500원, 2급 호텔은 3만 8000원, 3급 호텔은 3만 5000원이었으며, 대회용 아파트는 32평형이 9만 2000원, 43평형과 49평형이 각각 18만 원씩이었다.
8. 위생 및 방역대책
대회기간중의 위생과 방역을 위해 의무지원센터를 설치했으며, 그 밑에 위생담당관·공해담당관·방역담당관을 두어 선수촌·기자촌·대회용 아파트·MPC·IBC·청소년캠프·올림픽공원·전 경기장, 경기·부산·대구·광주·대전 지역에 별도의 점검반을 상설 운용했다.
주요 임무는 ① 경기장 및 행사장 급식시설과 위생 지도 점검, ② 식품 및 조리기구 등에 대한 위생검사, ③ 식음료 검식, 검수 입회 확인, ④ 식품 부패 및 이상 발견시 신속한 식품의 수거와 폐기 조처, ⑤ 식중독 사고 발생시 신속한 대처, ⑥ 환경위생 접객업소 위생점검 등이었다.
위생점검 대상은 식당·스낵바·다방·휴게실·식음료매점·디스코장·자동판매기·식품보관창고·이미용업소 등으로, 오전 6시부터 8시간씩 3교대로 근무했다.
검사대상은 천연재료(어패류·육류·야채·과일류)·음료수(미네랄워터·수돗물·엽차)·가공식품(우유·빵·식품제품·어육연제품 등 유효기간 표시식품, 도시락)·조리기구(칼·도마·행주·개숫물) 등이었으며, 주 검사항목은 비브리오균·살모넬라균·대장균·포도상구균 등이었으나, 대회기간 중 위생불량 또는 방역대책 미비 등으로 인한 발병 사고는 전혀 없었다.
9. 자원봉사요원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 진행하는 데는 언어·지식·품행 3요소의 요건을 갖춘 일정 수준 이상의 우수 인력 5만 276명의 활동이 크게 기여했다.
이 중 책임이 무겁고 난이도가 높은 직무를 담당한 요원은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에서 1435명을 차출했으며, 단기고용과 용역 외 자원봉사자도 2만 7221명이나 되었다.
자원봉사제도는 19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 때 처음 채택된 제도로서, 공개모집에 의해 선발한 인원을 소정교육을 거쳐 올림픽기간에 운영요원으로 활용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1986년 제10회 아시아경기대회 때 이 제도를 채택, 높은 성과를 올렸기 때문에 서울올림픽에서 다시 한번 채택했다.
1987년 9월 11만 6000명의 응모자 중에서 3만 명을 선발, 1년 동안의 교육(소양교육·직무교육·현장적응훈련·종합 예행연습)을 거쳐 서울올림픽에서는 통역 및 번역, 경기·사무 지원, 서비스, 출입통제 분야에서 완벽에 가까운 성과를 올렸다.
학생·직장인·가정주부·해외거주 동포 등으로 구성된 자원봉사자는 식사제공과 1일 교통비 2000원씩을 받는 무보수로 헌신적으로 봉사함으로써 서울올림픽대회를 성공적으로 끝마치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10. 각종 국내·국제회의
제94차 IOC총회가 서울올림픽이 개최되기 직전인 9월 12일부터 16일까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12일 오전 6시 사마란치 IOC위원장과 한국의 이현재(李賢宰) 국무총리 등 각국 대표 1200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립극장에서 개회식을 가진 IOC총회는 13일부터 장소를 신라호텔로 옮겨 각종 현안 과제를 다루었다.
제94차 IOC총회에는 베르톨프 바이츠·알렉산드르 드메로드·리처드 파운드 등 부위원장과 집행위원 전원 90명의 IOC위원이 참석했으나, 김유순 북한 IOC위원은 참석하지 않았다.
총회는 15일 회의에서 최고정책결정 및 집행기관인 집행위원회의 새 위원으로 한국의 김운용(金雲龍)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부위원장 겸 IOC위원을 선출했으며, 선임 IOC위원으로 영국의 앤 공주, 콜롬비아의 피델 멘도사, 모리셔스의 램 뤼시 등을 뽑았다.
또한, 1994년 제17회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노르웨이의 릴리하마르를 선정했다. 제17회 동계올림픽 유치를 희망한 도시는 이 밖에 미국의 앵커리지, 스웨덴의 외스테르순드, 불가리아의 소피아 등 3개 도시가 더 있었으나, 투표 결과 릴리하마르로 결정되었다.
북한을 비롯한 알바니아·니카라과·쿠바·에티오피아·세이셸 등 서울올림픽에 불참하기로 한 6개국에 대한 처벌문제를 논의한 총회에서는 IOC에서 모든 회원국에게 지급하던 지원금(솔리타리티기금) 6000달러를 6개국에 대해서는 중단하기로 했으며, 다음 올림픽 출전권을 박탈하는 문제 등은 1990년 동경(東京)에서 열리는 IOC총회에서 다시 다루기로 했다.
이 밖에 서울올림픽을 전후해 서울에서 개최된 스포츠관계 국제회의는 IOC집행위원회(9.11∼9.12), IOC분과위원회(9.10∼9.12), ANOC집행위원회(9.16)를 비롯, 체조·핸드볼·배구·수영·역도·조정·사이클·유도·카누·레슬링·하키·요트·육상 등 각 경기단체별 국제연맹회의와 88서울올림픽 스포츠과학학술대회(9.9∼9.15, 단국대학교 천안분교) 등이었다.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가장 많은 관심을 집중시켰던 회의는 올림픽의 공동개최 문제를 협의한 남북한 체육회담이었다. 1985년 2월 1일 사마란치 IOC위원장은 남북한 NOC에 각각 서한을 보내고 ‘북한선수단의 서울올림픽 출전 문제’에 관한 협의를 가지도록 하자는 제의를 해왔다.
이 제의에 따라 1985년 10월 8일과 9일 이틀 동안 스위스의 로잔에서 제1차 남북한체육회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우리 측은 “제24회 올림픽 개최지로 서울을 선정한 IOC총회 결정과 올림픽헌장을 존중할 것”을 주장하면서 올림픽헌장 범위 내에서 배구·축구·핸드볼·탁구·양궁 등 일부 종목의 예선경기를 평양에서 분산, 개최하도록 할 용의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북한 측에서는 개최지를 서울로 결정한 그 자체가 잘못된 일이라고 반박하면서 ① 주최는 남북한 NOC가 공동으로 해야 하며, ② 대회 명칭도 ‘조선올림픽경기대회’ 또는 ‘조선평양 서울올림픽경기대회’로 하고, ③ 경기종목은 서울 12개, 평양 11개로 하며, ④ 개폐회식은 서울과 평양에서 각각 따로 거행해야 하고, ⑤ 텔레비전 방영권의 이익도 반반씩 나누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IOC측에서는 양쪽 주장에 대해 “올림픽을 서울과 평양에서 따로따로 개최한다는 것은 올림픽헌장에 정면으로 위배되기 때문에 절대로 불가능하며, 일부 종목의 분산 개최는 가능하다.”고 절충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북한 측에서 본래의 주장을 계속 고집해 제1차 회담은 아무 결론 없이 끝났다.
이어 1986년 1월 8·9일에 제2차 회담, 1986년 6월 10·11일에 제3차 회담, 1987년 7월 14·15일에 제4차 회담을 가졌으나 북한측에서 끝내 공동개최를 주장해 모처럼의 남북한체육회담은 아무 성과 없이 막을 내리고 말았다.
그 뒤 1988년 5월 13일 일본의 니가타[新瀉]에서 열린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 북한선수단 단장이 “공동개최가 아니면 북한의 서울올림픽 불참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함으로써 서울올림픽에 관한 북한과의 대화는 완전히 단절되었다.
11. 관광 및 기념품
올림픽기간을 전후해서 서울을 다녀간 외국관광객은 모두 24만 1299명으로, 1987년 같은 기간의 17만 6150명에서 37%의 증가율을 보였다.
이와 같은 증가현상은 서울올림픽 관광기획단의 활동이 컸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1987년 4월 22일에 발족된 이 기획단은 1988년 12월까지 관광업무를 수행했다.
서울올림픽 관광코스는 총 18개 코스로 다음과 같다.
① 서울시내(경복궁-국립박물관-서울타워-이태원상가-창덕궁-비원-대한생명63빌딩-한강유람선-문화예술축전행사장-서울놀이마당).
② 수도권(민속촌-이천도요지).
③ 판문점(종군기자탑-자유의 다리-전진기지).
④ 강화도(광성보-전등사-갑곶돈대-인삼밭-토산품판매장-인삼제품공장).
⑤ 경주(천마총-경주국립박물관-첨성대-김유신장군묘-민예품단지-보문단지-석굴암-불국사).
⑥ 제주도(삼성혈-만장굴-민속자연박물관-성산일출봉-제주민속촌-서귀포-정방폭포-천지연폭포-중문단지).
⑦ 설악산(한계령-오색약수터-신흥사-권금성-통일전망대-낙산사-오죽헌-경포대-영동고속도로) 등이다.
관광객을 국가별로 나누어 보면 일본 10만 4274명, 미국 3만 3619명, 대만 1만 1504명, 기타 7만 1066명, 재외교포 2만 836명 등이었다.
한편, 서울올림픽 기념품 중 기념주화의 인기는 단연 으뜸이었다.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가 한국은행에 제작을 의뢰해 만든 기념주화는 금·은·니켈·백동화(貨) 등 모두 32종 1056만 개였는데, 가장 높은 인기를 끈 것은 1온스짜리 거북선 금화였다.
액면가 5만 원인 이 금화는 100만 원을 주고도 사기 어려울 정도였다. 일곱 가지 종류의 주화를 1세트로 한 7종세트는 액면가 9만 8000원이고 5종세트는 8만 원으로 비교적 비싼 편이었으나, 1056만 개 전량이 매진되었다.
그 다음으로 인기가 높은 것은 체신부에서 발행한 기념우표였는데, 32종 1억 4000만 매가 거의 매진된 상태였다. 금·은·동 1세트인 기념메달도 1세트당 91만 5000원에 1만 5000세트가 모두 팔렸다.
이 밖에도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에서 공식지정한 업체인 대왕산업의 민속공예품 봉산탈·하회탈 등 88종 1만 9880개가 완전 매진되었으며, 남교물산의 호돌이컵 10만 세트, 에덴상공사의 호돌이 배지와 기타 업체에서 제작한 열쇠고리·소형종(鐘)·호돌이인형·호돌이마스코트·넥타이핀·티스푼·기념접시·재떨이 등이 인기리에 판매되었다. 대체로 집계된 기념품 판매 총액은 356억 2600만 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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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학술대회
서울올림픽을 단순한 스포츠행사가 아닌 이념과 체제, 그리고 종교와 인종의 벽을 넘어선 ‘인류의 대화합’을 다짐하는 대회로 승화시키기 위해 8월 16일부터 10월 5일까지 서울에서 문화예술축전과 국제학술회의가 열렸다.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가 주최하고 크리스찬 아카데미가 주관한 서울올림픽 국제학술회의(WACSO)는 8월 21일부터 9월 8일까지 힐튼호텔과 아카데미하우스에서 개최되었다.
‘후기산업시대의 세계공동체’라는 대주제를 내걸고 개최된 이 학술회의에는 국내 학자 150명, 외국 학자 111명 등 모두 261명이 참석했다.
이 회의는 ① 가족의 변화와 전망, ② 커뮤니케이션의 단절과 회복, ③ 윤리가치관의 혼란과 새로운 윤리의 정립, ④ 동서문화의 만남과 세계문화의 창조, ⑤ 자연의 훼손과 재창조 등 5개 분야로 나누어서 진행되었다.
가족 분야의 주요 발표자는 조지 드 보스(미국)·이광규(한국)·슈강 아그블레마농(아프리카 토고)·제임스 망간(영국)·바실치오크(소련) 등,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주요 발표자는 레오나르드 추(홍콩)·최정호(한국)·리처드 카터(미국)·위말 디사나야케(스리랑카)·다카야마 마사야(일본) 등이었다.
윤리가치관 분야의 주요 발표자로는 레이몬 아르자팔로(멕시코)·비달 베네이토(프랑스)·프리츠 뷰리(스위스)·리 웬창(중국)·황경식(한국) 등이 나섰고, 동서문화 분야의 주요 발표자는 정범모(한국)·테오도르 드 배리(미국)·아마도 엠보우(세네갈)·보츠쿠르트 구벵크(터키)·아이젠슈타트(이스라엘)·내기 피터(헝가리) 등, 자연 분야의 주요 발표자는 조가경(미국)·수락 시바락스(타이)·아노아 압텔말렉(이집트)·나폴레옹 볼란스키(폴란드) 등이 참석했다.
이상 5개 분야의 학술회의에는 직접 참가하지 못했으나 크게 관심을 가지고 있던 학계·종교계·언론계·사회단체 인사 약 600명이 참가한 별도의 국제학술대회는 9월 7일과 8일 이틀 동안 힐튼호텔에서 개최되었다.
특별강사로 초청된 미국의 존 케이 갈브레이드와 프랑스의 미셀 크로제, 인도의 토머스 등은 동서양이 서로 필요한 보완의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내용의 강연을 했다.
국제학술회의에 수반된 행사는 다음과 같다.
① 보고서 발간: 국제학술회의에서 발표된 각 분야의 주제 강연과 논문의 토의내용, 대회의 기조연설 등을 수록한 보고서를 한국어·영어·프랑스어로 각각 출판해 전세계 대학도서관과 학술기관에 배포했다.
② 공개강연·좌담회·인터뷰: 국제학술회의에 참가한 학자들의 프로필과 체류 일정 등을 상세하게 작성해서 국내 대학교·학술기관·텔레비전방송국·일간신문사·월간잡지사와 기타 관계기관에 배부하고, 국제적인 학자들의 공개강연·좌담회·인터뷰를 주선했다.
③ 현장연구 프로그램: 국제학술회의에 참가한 학자들이 관심을 가졌던 한국의 문화재·유적지·문화현장에 대한 시찰과 연구를 주선했다.
④ 도서전시회: 국내외 학자들의 도서전시회를 국제학술회의 기간에 아카데미하우스에서 열었다. 또한, 국내에서 출판된 모든 책 중에서 ‘후기산업시대의 세계공동체’라는 주제와 관련된 도서 1500종류를 선정해 교보문고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2. 문화제전
1) 음악제
‘인류의 화합과 공동의 전진’을 주제로 하는 ’88서울국제음악제가 9월 17일부터 10월 3일까지 세종문화회관과 예술의 전당에서 각각 열렸다. 공연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창작곡의 밤: 「서울올림피아드」·「축제교향곡」·「수난과 여명」 등을 KBS교향악단(지휘 원경수)과 국립합창단(지휘 나영수)이 연주했다.
② 올림픽 평화의 날 기념연주회: 성악곡·오페라 아리아·가곡·합창곡 등을 평화를 주제로 연주했다(조수미·박미혜 등 출연).
③ 교향악연주회: 외국 교향악단과 함께 서혜경(피아노)·강동석(바이올린)·조영창(첼로) 등 해외에서 활약 중인 한국 음악인들이 협연했다.
④ 로잔실내관현악단연주회: 하이든의 「교향곡 No.95」·「교향곡 No.104」 등을 연주했고 지휘는 로렌스 포스터가 담당했다.
⑤ 금관5중주의 밤: 프랑스의 아르방 금관5중주단 및 KBS금관앙상블이 연주했다.
⑥ 실내악의 밤: 일본 도쿄앙상블이 출연했다.
⑦ 한국 가곡의 밤: 김윤자·김신자·엄정행·김성길·오현명 등이 출연하고 지휘는 임원식이 담당했다.
⑧ 강동석·조영창 협주곡의 밤: KBS교향악단의 연주로 바이올린과 첼로협주곡을 연주했다. 지휘는 금난새가 맡았다.
⑨ 피아노3중주의 밤: 미국 보자르피아노 3중주단이 멘델스존의 3중주 D단조 작품49 등을 연주했다.
⑩ 소프라노 박미혜와 테너 우도 라이네만의 조인트 리사이틀: 벨라니의 「퀼라 보체」등을 연주했다.
⑪ 소프라노 조수미 독창회: 헨델의 「카레셀베」 등이 공연되었다.
2) 국악제
한국음악의 세계화를 위한 축제로 전통음악 및 창작 국악을 공연하는 88대한민국 국악제가 9월 1일부터 15일까지 국립극장 무대에서 펼쳐졌다.
① 개막공연: 관악 「수제천」, 피리독주 「자진한잎」, 가곡 「언락」·「편락」, 남도민요 「육자배기」·「흥타령」·「경기잡가」·「제비가」·「장끼타령」·「판소리」·「흥보가」 등.
② 인간문화재 초청 공연의 밤: 홍원기(가곡)·정경태(가사)·김죽파(가야금산조)·김소희(판소리)·박귀희(가야금병창)·이은관(배뱅이굿) 등이 출연, 무대를 꾸몄다.
③ 풍류와 시나위의 밤: 「영산회상」·「시나위」 합주, 「대풍류」·「구음살풀이」 등.
④ 정악의 밤: 관현악 「여민락」, 피리독주 「자진한잎」·「처용무」 등, 성경린·김천흥 등 출연.
⑤ 사물놀이와 산조의 밤: 사물놀이·아쟁산조·태평소시나위 등, 김덕수·윤윤석·서용석 등 출연.
⑥ 경기·서도창: 경기잡가·서도산타령·서도잡가 등, 이춘희·최창남·이춘묵·김광수 등 출연.
⑦ 남도창과 산조의 밤: 남도민요·거문고산조 등, 남해성·안숙선·장덕화 등 출연.
⑧ 무속음악의 밤: 진도 씻김굿·동해안별신굿 등, 박병천·김석출 등이 출연.
⑨ 판소리의 밤: 「수궁가」·「심청가」·「춘향가」 중에서, 조상현·성창순·오정숙 등 출연.
⑩ 창작국악의 밤: 관현악 「협주곡 1번」·「메나리조 주제에 의한 피리협주곡」·「산조 주제에 의한 협주곡」, 가야금협주곡 「비단길」·「새야새야」 등.
⑪ 관현악연주화합의 밤: 전인평 작곡의 관현악 「두레」, 황의종 작곡의 「가야금협주곡 1번」 등.
⑫ 영산재: 봉원사 박송암 외 20명이 출연해 불교의식인 영산재를 재현.
3) 연극제
6개의 외국 연극단체와 국내 정상급 13개 연극단체가 참여한 서울국제연극제가 8월 16일부터 10월 2일까지 문예회관·국립극장·세종문화회관·문화체육관·현대토아트홀에서 공연되었다.
① 브라질 마쿠나이마극단의 「쉬카다실바」, ② 체코슬로바키아 스보시극단의 「충돌」, ③ 안양예술극장의 「바꼬지」, ④ 폴란드 가르지니차극단의 「아바쿰」, ⑤ 극단 세실의 「불가불가」, ⑥ 그리스국립극장의 「오이디푸스 왕」, ⑦ 자유극장의 「피의 결혼」, ⑧ 여인극장의 「산불」, ⑨ 프랑스 코미디 프랑세스의 「부르주아 귀족」, ⑩ 일본 가부키의 「가나데혼 추신구라[假名手本忠臣藏]」 공연이 있었다.
더불어 ⑪ MBC 마당놀이의 「심청전」, ⑫ 극단 산울림의 「고도를 기다리며」, ⑬ 극단 작업의 「술래잡기」, ⑭ 국립극단의 「팔곡병풍」, ⑮ 국립창극단의 「춘향전」, ⑯ 극단 성좌의 「유도(乳島)」, ⑰ 88서울예술단의 「아리랑 아리랑」, ⑱ 서울시립가무단의 「즐거운 한국인」, ⑲ 민중극단의 「뮤지컬 춘향전」 등이 공연되었다.
4) 무용제
헝가리 기요르발레단을 비롯해 영국의 런던컨템퍼러리무용단 등 5개 외국 무용단과·국립발레단 등 14개국내 무용단이 참가한 서울국제무용제가 8월 21일부터 9월 30일까지 문예회관·국립극장·세종문화회관·리틀엔젤스예술회관에서 거행되었다.
① 국립발레단의 「왕자호동」, ② 스페인 마리아로사무용단의 「카르멘」, ③ 캐나다 토론토무용단의 「급진적인 빛」, ④ 미국 워싱턴발레단의 「밤의 열기」, ⑤ 영국 런던컨템퍼러리무용단의 「그리고 그들은 행동한다」. ⑥ 김숙자무용단과 한국남성 무용단의 「오열도」, ⑦ 정재만무용단의 「학 불림굿」, ⑧ 헝가리 기요르발레단의 「태양의 연인들」, ⑨ 유니버설발레단의 「심청」 공연이 펼쳐졌다.
또한 ⑩ 서울시립무용단의 「물마루」, ⑪ 국립무용단의 「하얀초상」, ⑫ 홍정희발레단과 발레 블랑의 「장생도」, ⑬ 애지회의 「시골로 갔더란다」, ⑭ 김복희·김화숙무용단의 「요석 신라의 외출」, ⑮ 한국 컨템퍼러리무용단의 「틈·터·틀」 등이 화려하게 무대를 장식했다.
5) 전시행사
서울올림픽 문화예술축전 행사의 일환으로 국제현대회화전과 한국현대미술전이 8월 17일부터 10월 5일까지 과천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다.
국제회화전에는 아펠(네덜란드)·올리츠키(미국)·마티유(프랑스)·펜크(서독)·상도르피(프랑스)와 한국의 김기창·남관·변종하 등 64개 나라 160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또한, 한국미술전에는 김옥진·박세원·홍석창·곽훈·김창락·오승윤·강대철·김창희·김영태·유혜자·장윤우 등 500명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9월 10일부터 10월 9일까지는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주최하는 동서현대도예전이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에서 열렸다. 스페인의 엔리케 에스트레, 프랑스의 피에르 바일르, 영국의 앵거스 서티, 이탈리아의 카를로 자우리, 스웨덴의 안나 에일러트, 미국의 피터 볼코스, 일본의 사토 고헤이, 한국의 정담순·임무근·손정리·이일로·한길홍·신광석·권오훈·서동희·장수홍 등이 참여했다.
9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는 한국문화재보호협회 주최로 경복궁 전통공예관에서 전승공예대전이 열렸다. 역대 공예전 수상 작품 436점과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및 전승자의 작품과 찬조 출품작 209점 등 모두 640여 점이 전시되었다.
이 밖에 서울시가 주최하고 김치박물관이 주관하는 한국음식5천년전이 8월 17일부터 11월 5일까지 서울 종로구 경희궁터에서 열렸고, 한국방송공사 주관 한국풍물사진전이 8월 17일부터 31일까지 올림픽주경기장 특별전시장에서 열렸다.
또한 조선시대의 생활문화를 주제로 한 문화재 150여 점과 서울의 옛 지도·도자기·의약도구·민속공예품 총 634점이 전시된 서울시민소장 문화재전이 8월 17일부터 24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렸다.
6) 올림픽공원
서울특별시 송파구 방이동 50만 평의 넓은 터전에 마련된 올림픽공원은 스포츠와 문화예술이 화합하는 대규모 다목적 공원으로서 국제 명물이 되었다.
서울시가 1700억 원을 들여 조성한 올림픽공원은 몽촌토성 부분과 경기장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5세기경에 축성된 백제의 몽촌토성은 높이 15∼45m, 너비 50∼70m, 길이 2285m가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되었다.
올림픽공원의 출입문이라고 할 수 있는 ‘평화의 문’은 높이 32m, 너비 62m로 돌기둥 60개를 양쪽에 거느리고 있으며 천장은 청룡·백호·주작·현무의 4신도(四神圖)로 장식되어 있다.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사무실로 사용된 올림픽회관은 지하 2층, 지상 15층에 연면적 1만 7305㎡로, 우리 고유의 전통 건축양식을 살린 저층부와 현대적 감각을 살린 고층부로 구성되어 있다.
이 밖의 건축물로는 청소년문화센터와 올림픽청소년회관이 있고, 몽촌토성을 둘러싼 1300m의 해자(적의 침공을 막기 위한 물도랑) 건너편에는 수변(水邊) 무대 3개가 나란히 마련되어 있다. 수변 무대 좌우 벽면에는 가로 45m, 세로 2m의 벽화가 있는데, 여기에는 서울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의 공적이 새겨져 있다.
토성 해자와 성내천이 만나는 지점에는 9650㎡ 규모의 6단으로 된 화계정원이 있어서 각종 꽃들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맡을 수 있다.
몽촌토성 오른쪽으로는 25m 높이로 치솟는 분수대가 있고 인공호수를 둘러싼 40개의 돌식탁이 있으며, 왼쪽으로는 1만㎡ 규모의 지구촌공원이 있다.
이 지구촌공원에는 서울올림픽에 참가한 각국 임원·선수들이 자기 나라에서 가지고 온 돌과 기념물들을 기증, 이곳에 보존되어 있다.
토성과 경기장 사이에는 3만 6000㎡ 넓이의 반월형 잔디광장이 있는데, 88마당으로 이름 붙여진 이 광장은 대형 야외무대(3만 5000명 수용)로 활용되고 있다.
올림픽공원 내의 녹지 면적은 모두 68만 2400㎡이며 여기에 66종류 30만 4000그루의 수목이 있다. 이 수목 사이사이에 옥외 휴게소 13개, 정자 2개, 야외 식당 41개, 벤치 563개, 음료수대 10개, 휴지통 327개, 쓰레기 소각장 3개 소가 있다.
또한, 이 녹지대에는 서울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67개 나라에서 기증한 192점의 조각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예술의 광장으로서의 가치를 높이 평가받고 있다.
올림픽공원 안에는 사이클경기장을 비롯, 역도·체조·펜싱·수영·테니스 등 6개 경기장이 있는데, 스포츠경기장으로서의 시설이 완벽한 것은 물론이고 건축물로서의 예술성까지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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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야제
역사적인 서울올림픽 개막을 하루 앞둔 9월 16일 오전 7시 20분부터 9시 30분까지 여의도 한강시민공원 특설무대에서는 경축 전야 대축전 ‘손에 손잡고’가 KBS 주최로 화려하게 펼쳐졌다.
3부로 나누어 진행된 전야제에는 10만 명이 넘는 관중이 모여 크게 성황을 이루었는데, 국내 쇼공연사상 최대 규모인 2438명의 연예인이 출연했다.
제1부는 농악과 무용, 제2부는 미국·이탈리아·뉴질랜드 등 12개 나라의 전통민속춤과 노래, 코리아나·조용필·후잉잉(중국)·사이조 히데키(일본)·다니챙(홍콩) 등의 가요, 제3부는 도시 불꽃축제와 패션쇼로 진행되었다.
이와는 별도로 서울시립오페라단의 「시집가는 날」이 16일 저녁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전야제 경축행사의 하나로 공연되었다.
이는 오영진 원작의 「시집가는 날」을 이탈리아의 세계적 거장 장 카를로 메노티가 2막 5장의 오페라로 만든 것인데, 각국 IOC위원과 올림픽 가족들은 한국적인 소재의 특색있는 오페라에 많은 박수를 보냈다.
2. 성화봉송
1988년 8월 23일 오전 11시(현지 시간) 그리스의 헤라신전에서 여사제 카테리나 디다스칼루에 의해 채화된 성화는, 그리스 국민의 열렬한 환영과 축제행사 속에서 2박 3일 동안 파트레-코린트-아테네까지 352명의 그리스 주자 요원에 의해 봉송되었다.
8월 25일 저녁 7시 30분 아테네의 팬아테니언 스타디움에서 서울 인수단에게 인도된 성화는 대한항공 특별기편으로 아테네 공항을 출발, 방콕에서 1박하고 8월 27일 오전 11시 제주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제주도에 도착한 성화는 대대적인 환영식을 마치고 제주도를 일주한 뒤, 호화여객선 88올림피아호편으로 8월 28일 부산에 도착, 22일간 2만 855명(주자 1461명)의 주자 요원에 의해 61개 시를 경유한 4163㎞를 달려 9월 16일 저녁 서울시청 앞 광장에 안치되었다.
9월 17일 아침 시청 앞 광장을 떠난 성화는 잠실올림픽 주경기장으로 봉송되었다. 국내 봉송에 동원된 주자 요원 가운데는 외국인·재외동포 등 247명의 특별 주자 요원이 포함되어 있어, 서울올림픽이 지구촌의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 화합의 큰 마당임을 실감하게 했다.
3. 개회식
제24회 서울올림픽 개회식은 1988년 9월 17일 오전 10시 30분 한강에서 펼쳐지는 강상제(江上祭)를 서막으로 시작되었다. 1846명이 이끄는 458척의 대선단(大船團) 행렬이 세계가 하나 되어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으로 모여드는 상징적인 모습을 연출했다.
사상 최대의 참가국 수를 나타내는 160개의 윈드서핑은 각 나라의 깃발을 달고 주선단을 환영했으며, 제24회 서울올림픽을 의미하는 24척의 선도 선단이 올림픽휘장에 그려진 오대양의 빛과 그 바탕색인 흰빛으로 된 여섯 가지 깃발로 장식되어 주선단을 이끌었다.
주선에는 용(龍) 모양을 그린 전통적인 한국의 대북인 용고가 실려 있었으며, 이 용고는 한강물을 거슬러 올라 주경기장 앞에 닿은 주선에서 이동했다. 이후부터 시간에 따라 개회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0시 40분 한강에서 옮겨진 용고의 지나갈 길과 터를 정화하는 의식인 「해맞이」 중의 「새벽길」이 덕수상업고등학교와 정의여자고등학교 학생 1252명에 의해 펼쳐졌다.
10시 46분 「해맞이」 중의 두번째 순서인 용고행렬이 경기상업고등학교 학생 470명에 의해 진행되었으며, 10시 50분 천(天)·지(地)·인(人)을 뜻하는 율동과 춤이 국립발레단과 88서울예술단원들에 의해 화려하게 펼쳐졌다.
10시 54분 「해맞이」의 마지막 순서로 현대무용단·이화여자대학교·세종대학교·서울예술전문대학·동대문상업고등학교·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 등 1525명의 학생과 무용수들이 벌이는 「태초의 빛」이 잠실벌의 열기를 점차 뜨겁게 했다.
11시부터 1분 동안 팡파르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노태우(盧泰愚) 대통령 내외가 입장했으며, 11시 2분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와 동대문상업고등학교의 학생 1100명의 「어서 오세요」라는 매스게임이 있었다.
11시 7분부터 12시 7분까지는 그리스를 선두로 하는 선수단 입장이 있었다. 입장 순서는 가나다순이며 「올림픽헌장」 규정에 의해 어느 올림픽에서나 그리스가 가장 먼저 입장하고, 개최국은 제일 마지막으로 입장하게 된다.
서울올림픽의 출전 신청국은 모두 161개 나라였으나 마다가스카르가 신청만 해놓고 출전하지 않아 입장식에 참여한 국가는 160개국이었다.
선수단 입장에 이어 12시 7분 박세직 서울올림픽 조직위원장의 대회사가 있었고, 12시 9분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의 환영사에 이어 12시 11분 노태우 대통령의 개회 선언이 있었다.
12시13분 올림픽기의 게양에 이어, 12시 21분 7000개의 트럼펫이 동시에 연주되는 가운데 남문으로 들어온 손기정(孫基禎)에게서 성화를 이어받은 최종 주자 임춘애에 의해 높이 22m, 화반지름 5.5m, 기둥지름 0.75m의 8각기둥으로 된 성화대에 불길이 옮겨 붙었다.
12시 26분 허재(농구)·손미나(여자핸드볼) 두 선수가 선수 선서를 했으며, 이어 이학래(유도심판)가 심판 선서를 했다. 12시 31분 애국가가 연주되고, 12시 33분 선수단이 퇴장했다.
선수단이 퇴장하고 난 넓은 그라운드에서는 다시 식후 공연행사로서 제3부 「뒷마당」 중 「좋은 날」이 펼쳐졌다. 12시 48분 영등포여자상업고등학교 학생 800명이 강복을 비는 춤을 추고 있을 때 높이 4000m의 상공에서는 국제낙하산연맹 소속 외국인 54명과 한국인 22명이 참가한 팰러슈트 곡예가 장관을 이루었다.
12시 55분 하늘과 땅이 조화를 이룬 태고의 태평성대를 기리는 화관무가 경희대학교·대동상업고등학교·염광여자상업고등학교 등 1450명의 학생에 의해 펼쳐졌으며, 13시 태평성대가 가고 불화와 갈등이 시작되는 「혼돈」이 국립무용단·국립국악원·선봉무용단 단원 등과 중앙대학교·한양대학교의 학생 등 846명에 의해 춤과 합창으로 표현되었다.
13시 5분 인종의 벽, 이념의 벽, 빈부의 벽, 너와 나를 가로막는 무수한 경계의 벽을 넘어서 모든 사람이 한 곳에 모이는 것을 상징하는 「벽을 넘어서」가 비호태권도단과 미동초등학교 어린이 등 1008명에 의한 태권도시범으로 펼쳐졌다.
13시 10분 서울올림픽 개최가 바덴바덴 IOC총회에서 확정, 발표되던 바로 그날인 1981년 9월 30일에 태어난 윤태웅 어린이(서울 잠원초등학교 1년)가 굴렁쇠를 굴리며 경기장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정적」이 감동적으로 연출되었고, 13시 11분 굴렁쇠와 함께 정적이 지나간 자리에서 1200명의 삼천초등학교 어린이들의 「새싹놀이」가 펼쳐졌다.
13시 16분 선봉고놀이팀·선봉농악팀·광신상업고등학교·성암여자상업고등학교 등 1450명에 의한 고놀이 「화합」이 있었고, 13시 23분 역대 올림픽 개최국의 국화인 무궁화·장미·백합·벚꽃을 비롯한 78개국의 국화와 함께 역대 올림픽 마스코트인 개·비버·곰·독수리·호돌이 등이 등장했다.
이와 함께 헝가리·폴란드·프랑스·일본 등 12개국의 무용수 360명과 함께 개회식에 출연했던 6000명이 모두 경기장에 나와 「손에 손잡고」를 합창과 무용으로 연주하며 「한마당」놀이를 펼치는 것으로 개회식의 모든 순서는 끝났다.
4. 폐회식
10월 2일 오후 7시 잠실 주경기장에는 폐회식을 알리는 에밀레종 소리가 울려 퍼졌다. 국보 제29호로서 1000년 전 신라의 범종인 에밀레종 소리가 멎으면서 세종대학교·공주농업고등학교·해성여자상업고등학교 학생으로 구성된 리본 체조단과 농악대·상모놀이꾼 등 807명의 「우정」 축제가 있었다.
7시 5분부터 37분까지는 150명으로 구성된 기수단을 앞세우고 각국 선수단이 입장했으며, 7시 37분 올림픽 발상국인 그리스와 제24회 개최국인 대한민국, 그리고 제25회 대회를 개최하게 될 스페인 등 3개국의 국기게양식이 있었다.
7시 41분 「오작교」라는 주제로 펼쳐지는 까치춤(선봉무용단 1150명)과 「빛과 소리」라는 주제의 부채춤과 바라춤(선봉무용단·숙명여자대학교·숭의여자전문대학 등 720명)이 연주되었고, 7시 52분 창무회·선봉무용단·이화여자대학교·수원대학·대한유도학교 등 560명에 의한 「떠나는 배」가 한국 고유의 판소리 「심청가」의 구슬픈 뱃노래에 맞추어 펼쳐졌다.
7시 59분 박세직 서울올림픽 조직위원장의 폐회사가 있었고 8시 1분 사마란치 IOC위원장에 의한 폐회 선언이 있었다. 8시 3분 김용래 서울 시장이 사마란치 IOC위원장을 통해 다음 올림픽 개최 도시인 바르셀로나의 파스쿠알 마라갈 시장에게 올림픽기를 인도했다.
8시 11분 올림픽기 하강에 이어 성화가 꺼지기 시작했으며 다섯 발의 예포가 울려퍼졌다. 8시 15분 무형문화재 한영숙이, 1988년도 준미스유니버스 장윤정, 1986년도 미스코리아 이혜정과 함께 「소원」이라는 뒤풀이 춤을 추었다.
8시 18분 국악고등학교·계원예술고등학교·남서울상업고등학교 학생 800명이 출연해 아리랑가락에 맞추어 춤을 추는 가운데, 각국 선수들이 춤 대열에 끼여들어 세계인의 한마당 춤자리가 베풀어졌으며, 스탠드에는 청사초롱을 든 관중에 의해 ‘안녕’이라는 글자가 한글과 영문(Good Bye)으로 쓰여졌다.
춤은 다시 강강수월래로 바뀌었으며 ‘바르셀로나에서 만납시다’라는 글씨를 매단 기구가 공중으로 올라가면서 호돌이와 코비(바르셀로나올림픽 마스코트)가 정답게 밤하늘에서 어울리는 가운데, 현란한 폭죽이 요란한 폭음과 함께 잠실 상공을 꽃밭처럼 밝히는 것으로 폐회식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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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가선수단 및 규모
서울올림픽대회에 참가한 각국 선수단의 규모를 개회식 입장 순서에 따라 살펴보면 [표 1]과 같다.
[표 1] 서울올림픽대회 각국 선수단 참가규모
선수단선수임원선수단선수임원선수단선수임원선수단선수임원
그리스5834몰타94스위스10959중앙아프리카 공화국1610
가나1813몽고2812시리아168중화인민공화국29287
가봉32미국615164시에라리온154자부티75
가이아나83바누아투61싱가포르88짐바브웨319
감비아74바레인1110아랍에미리트126차드62
과테말라3020바베이도스1713아루바87체코슬로바키아17154
2016바하마1710아르헨티나12552칠레1810
그레나다62방글라데시61아이슬란드3218카메룬158
기니84버마23아이티41카타르129
적도기니63버뮤다1312아일랜드6538캐나다379122
나이지리아7632버진제도2621아프가니스탄52케냐7627
네덜란드19279영국령버진제도33안도라32케이맨제도85
네팔1813베냉72안티과1615코스타리카1614
노르웨이7940베네수엘라1815네덜란드령안틸레스34코트디부아르3220
파푸아뉴기니129베트남103알제리4622콜롬비아4330
뉴질랜드9355벨기에6539앙골라2915콩고92
니제르86벨리즈104에스파냐26994쿠웨이트3118
덴마크9252보츠와나82에콰도르1616쿡제도74
도미니카 공화국166볼리비아75영국369135차이니스타이페이9041
독일민주 공화국28290부르키나파소62예멘민주 공화국62타이1616
독일연방 공화국404132부탄33예멘아랍 공화국117탄자니아106
라오스61불가리아18663오만1310터키5025
라이베리아87브리질17165오스트레일리아295104토고63
레바논2115부루나이01오스트리아8849통가61
레소토63미국령사모아66온두라스84튀니지4123
루마니아6421서사모아116요르단94트리니다드토바코66
룩셈부르크86사우디아라비아149우간다259파나마63
르완다61사이프러스95우루과이1415파라과이107
리비아69산마리노118유고슬라비아15767파키스탄3115
리히텐슈타인129엘살바도르65이라크3117페루2216
말라위176세네갈2216이집트5431포르투갈6831
말레이시아1311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72이탈리아28695폴란드15254
말리65소련514141인도4627푸에르토리코7036
멕시코9149소말리아76이란2714프랑스309109
모나코98솔로몬제도72인도네시아3125피지2410
모로코2721수단82일본288101핀란드7949
모리셔스85수리남66이스라엘1918필리핀3328
모리타니63스리랑카61자메이카3516헝가리20371
모잠비크85스와질랜드118자이르189홍콩4924
몰디브72스웨덴20577잠비아3112대한민국467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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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올림픽대회에서는 23개 정식 종목과 3개 시범 종목, 2개 전시 종목의 경기가 치러졌다.
1. 정식종목
1) 육상: 남녀 합쳐서 모두 42개(남자 24, 여자 18)의 세부 종목으로 나누어지기 때문에 올림픽에서는 가장 많은 금메달이 걸려 있는 종목이다. 이 서울올림픽에서는 여자 1만m 트랙경기가 새로 채택되었다.
42개의 세부 종목을 살펴보면, 남자 100m·200m·400m·800m·1500m·5000m·1만m·110m허들·400m허들·3000m장애물·400m계주·1600m계주·20㎞경보·50㎞경보·멀리뛰기·높이뛰기·3단뛰기·장대높이뛰기·10종경기·원반던지기·창던지기·포환던지기·해머던지기·마라톤·여자100m·200m·400m·800m·1500m·3000m·100m허들·400m허들·400m계주·1600m계주·7종경기·멀리뛰기·높이뛰기·원반던지기·창던지기·포환던지기·1만m·마라톤 등이다.
2) 근대5종: 승마·펜싱·수영·사격·육상(4㎞크로스컨트리)을 한 선수가 모두 하고 종합 점수로 순위를 정한다.
3) 농구: 남자경기와 여자경기로 나누어진다.
4) 레슬링: 허리 아래를 공격해서는 안 되는 그레코로만형과 아무 제한 없이 공격할 수 있는 자유형으로 나누어지는데, 48㎏ 이하 급부터 130㎏ 이상 급까지 몸무게에 따라 10체급씩으로 구분되기 때문에 금메달은 20개가 걸려 있다.
5) 배구: 남자경기와 여자경기로 나누어진다.
6)복싱: 라이트플라이·플라이·밴텀·페더·라이트·라이트웰터·웰터·라이트미들·미들·라이트헤비·헤비·슈퍼헤비급 등 모두 12체급으로 나누어진다.
7) 사격: 남자는 소구경 소총복사·소구경 소총 3자세·공기소총 서서쏴·자유권총·속사권총·이동표적 사격(외닝보어)·공기권총 등 7개 종목이 있고, 여자는 소구경 소총 3자세·공기소총 서서쏴·소구경권총·공기권총 등 4개 종목이 있으며, 트랩과 스키트 2개 종목은 남녀혼성으로 치러진다.
8) 사이클: 도로경기와 실내에서 하는 트랙경기로 나누어지는데, 남자는 100㎞단체도로·150∼200㎞개인도로·독주경기·스프린트·개인추발·단체추발·득점경기 등 7개 종목이고, 여자는 75㎞ 개인도로와 스프린트 2개 종목이 있다.
9) 수영: 육상 다음으로 메달이 많이 걸려 있는 종목인데 서울올림픽에서는 자유형 50m가 새로 추가되어 총 40개의 세부종목으로 되어 있다. 첫째, 경영 부문에는 자유형 50m·100m·200m·400m·1500m(여자는 800m), 평영 100m·200m, 배영 100m·200m, 접영 100m·200m, 개인혼영 200m·400m, 계영 4×100m·4×200m(남자만 있음), 혼계영 4×100m 등이 있다.
둘째, 다이빙 부문에는 남녀 똑같은 스프링보드(3대)와 플랫폼(10m)이 있다. 셋째, 수구는 남자경기만 있다. 넷째, 수중발레는 여자경기만 있는데, 솔로와 듀엣 2개 종목이 있다.
10) 승마: 남녀 구분 없이 혼성으로 치러지는 경기로서 대장애비월 개인·대장애비월 단체·마장마술 개인·마장마술 단체·종합승마 개인·종합승마 단체 등 6개 종목이 있다.
11) 양궁: 남녀 각각 개인전과 단체전이 있기 때문에 종목은 4개인 셈이다.
12) 역도: 52㎏ 이하 급부터 110㎏ 이상 급까지 몸무게에 따라 10개 체급으로 나누어진다.
13) 요트: 올림픽 종목 중 유일하게 바다에서 펼쳐지는 경기로서, 핀급 1인승, 솔링급 3인승, 토네이도급 2인승, 스타급 2인승, 플라잉 더치맨급 2인승, 디비전 Ⅱ급 1인승(이상은 남녀 구분없이 혼성) 등 6개 종목이 있고, 470급 2인승은 남자종목과 여자종목이 따로 나누어진다.
14) 유도: 엑스트라 라이트급(60㎏ 이하)부터 헤비급(95㎏ 이상)까지 모두 7체급으로 나누어진다.
15) 조정: 남자만 하는 종목은 키잡이가 있고 2인승인 콕시드 페어, 키잡이 없이 4인승인 콕스레스 포어, 4인승 쿼드러플 스컬 등 3개 종목이다.
여자만 하는 종목은 키잡이가 있고 4인승인 콕시드 포어 1개 종목 뿐이며, 남녀가 각각 따로 하는 싱글스컬, 키잡이 없이 2인승인 콕스레스 페어, 더블 스컬, 키잡이가 있고 4인승인 콕시드 포어, 에이트 등이 있기 때문에 금메달은 모두 14개가 걸려 있다.
16) 체조: 남자는 마루운동·안마·링·뜀틀·평행봉·철봉 등 6개 종목이 있고, 여자는 뜀틀·2단평행봉·평균대·마루운동 등 4개 종목이 있는데, 남녀 각각 개인 종합과 단체전이 있기 때문에 14개 종목이 되며, 이 밖에 여자만 하는 리듬체조가 별도로 치러져 금메달은 모두 15개이다.
17) 축구 : 남자 경기가 치러졌다.
18) 카누: 남자는 카약 500m 1인승·1000m 1인승·500m 2인승·1000m 2인승·1000m 4인승 등 5개 종목과 캐나디안 500m 1인승·1000m 1인승·500m 2인승·1000m 2인승 등 4개 종목이 있고, 여자는 카약 500m 1인승·500m 2인승·500m 4인승 등 3개 종목이 있어, 금메달은 모두 12개가 걸려 있다.
19) 탁구: 남녀 각각 단식과 복식 4개 종목이 있으며, 서울올림픽에서 새로이 채택되었다.
20) 테니스: 남녀 각각 단식과 복식 4개 종목이 있는데, 1924년 파리올림픽 이후 정식 종목에서 제외되었다가 64년 만에 서울올림픽에서 다시 채택되었다.
21) 펜싱: 남자는 플뢰레·사브르·에페 등 3개 경기가 각각 개인전과 단체전으로 나누어지기 때문에 6개 종목이 되고, 여자는 플뢰레 한 가지만으로 개인전과 단체전을 치른다.
22) 하키: 남자경기와 여자경기가 따로 있다.
23) 핸드볼: 남자경기와 여자경기로 나누어진다.
2. 시범종목
서울올림픽에서는 야구·태권도의 2개 시범 종목과 여자유도 1개 시범 세부 종목이 채택되었는데, 정식 종목과 똑같이 금·은·동 메달 시상식이 있기는 하지만 올림픽 전적 또는 기록으로 인정되지는 않는다. 시상식 때 선수에게 메달을 수여하는 시상자도 정식 종목은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이 하게 되어 있으나, 시범 종목은 당해 경기단체 회장 또는 임원이 하게 되어 있다.
시범 종목에 출전하는 선수도 올림픽선수촌에 입촌할 수 있으며, 시범종목으로 두 번 이상 채택된 종목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될 수 있다는 규정에 의해, 야구는 다음 바르셀로나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하게 되었다.
3. 전시종목
서울올림픽대회에서의 전시 종목은 배드민턴과 볼링 2개 종목이었는데, 전시 종목은 메달 수여식이 없으며 출전 선수들의 올림픽선수촌 사용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순위나 기록은 중요하지 않으며, 개최국의 재량에 따라 경기가 진행될 따름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경기결과
제24회 서울올림픽에서 1위를 차지한 나라는 소련으로 금메달 55개, 은메달 31개, 동메달 46개를 획득했으며, 2위에는 금메달 37개의 동독, 3위에는 금메달 36개의 미국, 4위에는 금메달 12개의 한국, 5위에는 금메달 11개의 서독 등으로 순위가 결정되었다 [표 2]·[표 3].
[표 2] 서울올림픽대회 종목별 메달수
종목
육상424242(43)
근대5종222
농구222
레슬링202020
배구222
복싱121224
사격131313
사이클999
수영383838(39)
승마666
양궁444
역도101010
요트888
유도7714
조정141414
체조15(19)15(12)15(17)
축구111
카누121212
탁구444
테니스448
펜싱888
하키222
핸드볼222
총계237(241)237(234)260(264)
[표 3] 서울올림픽대회 각국별 메달 획득현황
순위\경기종목육상근대5종농구레슬링배구복싱사격사이클수영승마양궁역도요트유도조정체조축구카누탁구테니스펜싱하키핸드볼
1소련5510 1811442  6   1213  1 1
316  411112  21125 3  1  
4610113 2626 1 1414    3 1
2동독376    21311  11 81 1     
3511    1128  1 213 4  1  
3010  1   19  1 114 2     
3미국3613 1213  10 1 1    2 2   
317  1 31 1021 212    1   
276 13 2 16 1 2111   2   
4한국12   2 2    3  2    2   1
10   2 11   21      1  11
11   5 1    11 1 1  1    
5서독11      1 14    1    13  
141  1  121  1 21     31 
153    11211 2  1 1  11  
6헝가리11 2 1  4 4      1 2  1  
6   1  2 2  2     1     
6     1           1  2  
7불가리아102  1 11 1  2   1 1     
121  4 11 1  1  1  1     
131  3  1 1  1  21 3 1   
8루마니아71  1          13       
111    11 1  1  43       
6      1 1     23       
9프랑스6         1  21      2  
4     1   1          1  
61     2 21   1   1     
10이탈리아61  1 1        2     1  
412                  1  
41     1 1           2  
11중국5      2 2      1  2    
11      6 6  1  1   2    
121     2 2  4  11  1    
12영국5      1 1   1 1      1 
106     1 12             
921   11 111            
13케냐54    1                 
22                      
21    1                 
14일본4   2    1    1         
3   2  1                
7        2    3 2       
15오스트레일리아31       1            1 
61    1 21        1     
5       21        1 11  
16유고슬라비아3      2 1              
4  21              1    
5     11       1   1   1
17체코슬로바키아31     1            1   
31     1            1   
2   1               1   
18뉴질랜드3         1  1    1     
2            1    1     
8        21  1 3  1     
19캐나다3     1  2              
2     1  1              
51    1  11  1          
20폴란드2   1         1         
5   1   1     1   1  1  
9   1 4  1  1     2     
21노르웨이2   1  1                
3            1 1       1
0                       
22네덜란드2       1      1        
2       11              
5     1       1   1   2 
23덴마크2       1    1          
1        1              
1            1          
24브라질1             1         
21               1      
31           2          
25핀란드11                      
1   1                   
21  1                   
26스페인1           1           
1                   1   
2      1 1              
27터키1           1           
1   1                   
0                       
28모로코11                      
0                       
21    1                 
29수리남1        1              
0                       
0                       
30포르투갈11                      
0                       
0                       
31오스트리아1             1         
0                       
0                       
32스웨덴0                       
4     11 1    1         
71  1 1 1          12   
33스위스0                       
2         1    1        
21        1             
34자메이카0                       
22                      
0                       
35아르헨티나0                       
1                   1   
1    11                  
36코스타리카0                       
1        1              
0                       
36칠레0                       
1      1                
0                       
36세네갈0                       
11                      
0                       
36안틸레스0                       
1            1          
0                       
36버진제도0                       
1            1          
0                       
36페루0                       
1    1                  
0                       
36인도네시아0                       
1          1            
0                       
36이란0                       
1   1                   
0                       
44벨기에0                       
0                       
2      1      1         
44멕시코0                       
0                       
2     1  1              
46그리스0                       
0                       
1   1                   
46필리핀0                       
0                       
1     1                 
46콜롬비아0                       
0                       
1     1                 
46타이0                       
0                       
1     1                 
46몽고0                       
0                       
1     1                 
46파키스탄0                       
0                       
1     1                 
46지부티0                       
0                       
11                      
서울올림픽의 금메달 총 수는 241개, 은메달 234개, 동메달 264개로 집계되었고 메달권에 든 국가는 모두 52개국이다. 세계신기록은 모두 33개가 수립되었는데, 그 중 가장 주목받은 기록은 터키의 역도선수 나임 슐레이마눌루의 기록이었다.
60㎏ 급에 출전한 슐레이마눌루는 인상에서 종전의 세계 최고기록 150㎏보다 0.5㎏이 더 많은 150.5㎏을 들어 올려 첫번째 세계신기록을 수립했고, 다시 152.5㎏을 들어 올려 두번째 세계신기록을 수립했다.
그리고 용상에서도 종전의 세계 최고기록 188㎏보다 0.5㎏이 더 무거운 188.5㎏을 들어 올렸고, 연속해서 190㎏을 다시 들어 올려 네번째 세계신기록을 수립했다. 합계에서 슐레이마눌루가 연속해서 두 번 341㎏과 342.5㎏을 기록해(종전 세계 최고기록 335.5㎏), 한 자리에서 모두 6개의 세계신기록을 수립했다.
같은 역도종목에서 불가리아의 세브달린 마리노프는 52㎏급에서 인상 120㎏(종전 119.5㎏), 합계 270㎏(종전 267.5㎏)으로 2개의 세계신기록을 수립했으며, 소련의 유리 자하레비치도 110㎏급에서 인상 205㎏·210㎏(종전 203. 5㎏)으로 두 차례 세계신기록을 수립, 합계 455㎏(종전 452.5㎏)으로 모두 3개의 세계신기록을 수립했다.
육상에서는 캐나다의 벤 존슨이 육상 100m 트랙경기에서 9초79라는 기록으로 세계신기록을 수립했으나 IOC에서 복용 금지 약물로 발표한 아나볼릭스테로이드를 복용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기록과 함께 금메달을 박탈당했다.
육상경기에서는 미국의 플로런스 그리피스 조이너가 여자 200m(종전 21초71)에서 수립한 두 차례의 세계신기록 21초56(준결승)과 21초34(결승전)이 기록되었다. 이 밖에 종목별 세계신기록은 [표 4]와 같다.
[표 4] 세계신기록 수립현황
선수국가종목세부종목기록종전기록
마리노프불가리아역도52㎏급 합계270.0㎏*267.5㎏
마리노프불가리아역도52㎏급 인상120.0㎏119.5㎏
마리노프불가리아역도52㎏급 합계*267.5㎏267.5㎏
슐레이마눌루터키역도60㎏급 합계341.0㎏335.5㎏
슐레이마눌루터키역도60㎏급 합계342.5㎏335.5㎏
슐레이마눌루터키역도60㎏급 용상188.5㎏188.0㎏
슐레이마눌루터키역도60㎏급 용상190.0㎏188.0㎏
슐레이마눌루터키역도60㎏급 인상150.5㎏150.0㎏
슐레이마눌루터키역도60㎏급 인상152.5㎏150.0㎏
자하레비치소련역도110㎏급 합계455.0㎏452.5㎏
자하레비치소련역도110㎏급 인상205.0㎏203.5㎏
자하레비치소련역도110㎏급 인상210.0㎏203.5㎏
회르너동독수영여자200m평영2'26"712'27"40
다슬러동독수영남자400m자유형3'46"953'47"88
댈비·세트린스키·게르트슨·비온디미국수영남자4×200m계영7'12"517'13"10
에번스미국수영여자400m자유형4'03"854'05"45
제이콥스·댈비·재거·비온디미국수영남자4×100m계영3'16"533'17"08
버코프미국수영남자100m배영(예선)54"5154"91
비온디미국수영남자자유형50m22"1422"23
버코프·슈레더·비온디·제이콥스미국수영남자4×100m혼계영3'36"933'38"28
암스트롱오스트레일리아수영남자200m자유형1'47"251'47"41
다르니헝가리수영남자400m개인혼영4'14"754'15"42
다르니헝가리수영남자200m개인혼영2'00"172'00"56
살룩바제소련사격여자공기권총본선390.0389.0
쿠스미네소련사격남자속사권총결선698.0599.0
바르가체코사격남자소구경소총복사 본선*600.0600.0
세카릭유고사격여자공기권총본선*389.0389.0
세카릭유고사격여자공기권총결선389.5389.0
불중미국사격남자공기권통본선*590.0590.0
더튼·매카니·맥글리드·우즈오스트레일리아사이클남자400m단체추발예선4'16"324'17"71
에키모프·카스푸티스·넬루비네·우마라스소련사이클남자400m단체추발예선4'16"104'17"71
김수녕한국양궁여자50m싱글(예선)336335
김수녕한국양궁여자개인결승1,3521,333
커시미국육상여자7종7,2917,215
조이너미국육상여자200m(준결)21"5621"56
조이너미국육상여자200m결승21"3421"56
에베렛·루이스·로비진·레이놀즈미국육상4×400m계주*2'15"162'15"16
레도프스카야·나자로바·브리즈키나·피니귀나소련육상4×400m계주3'15"183'15"92
주: *표는 타이기록.
영역닫기영역열기한국의 메달리스트
한국은 이 서울올림픽에서 금메달 12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11개로 종합 순위 4위를 차지했다 [표 5].
[표 5] 한국 메달획득 내역
메달선수종목날짜
김영남레슬링그레코로만74㎏급9.21.
 한명우레슬링자유형82㎏급10.1.
 김재엽유도60㎏급9.25.
 이경근유도65㎏급9.25.
 여자핸드볼팀 9.26.
 김수녕양궁여자개인9.29.
 양궁여자팀양궁여자단체9.30.
 양궁남자팀양궁남자단체10.1.
 양영자·현정화탁구여자복식10.1.
 유남규탁구남자단식10.1.
 김광선복실플라이급10.2.
 박시헌복싱라이트급미들급10.2.
전병관역도52㎏급9.18.
 차영철사격소구경자유소총복사9.19.
 김성문레슬링그레코로만68㎏급9.22.
 박장순에슬링자유형68㎏급10.1.
 왕희경양궁여자개인9.30.
 박성수양궁남자개인9.30.
 여자하키팀 9.30.
 백현만복싱헤비급10.1.
 남자핸드볼팀 10.1.
 김기택탁구남자단식10.1.
안대현레슬링그레코로만62㎏급9.20.
 이재석레슬링그레코로만52㎏급9.21.
 김상규레슬링그레코로만82㎏급9.22.
 김태우레슬링자유형90㎏급9.29.
 노경선레슬링자유형57㎏급10.1.
 박종훈체조남자뜀틀9.24.
 이형근역도82.5㎏급9.24.
 이재혁복싱페더급9.29.
 유남규·안재형탁구남자복식9.30.
 윤영숙양궁여자개인9.30.
 조용철유도95㎏이상급10.1.
특히, 양궁의 김수녕(金水寧)은 한국 올림픽 참가사상 최초로 올림픽 2관왕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 공로와 가치를 높이 인정받았다.
그는 개인전에서 344점으로 금메달을 차지한 데 이어 단체전에서도 왕희경·윤영숙과 함께 982점으로 강호 미국·소련·인도네시아 등을 모두 물리치고 2관왕이 되었다.
박성수·전인수·이한섭으로 구성된 남자양궁팀의 우승은 예상 밖의 수확이었다. 한국 남자양궁팀은 줄곧 미국팀에 뒤지면서 2위권에서 추격하다가 최종 순간에 986점으로 미국팀보다 6점을 앞서면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여자핸드볼팀의 우승은 참으로 극적인 것이었다. 예선리그에서 1패를 안고 결승리그에 올라갔기 때문에 매우 불리한 입장이었으나, 노르웨이와 소련을 차례로 격파하면서 세계 정상에 올라섰다.
서울올림픽에서 활약한 한국여자핸드볼 선수들의 명단은 손미나·김영숙·송지현·김명순·김춘례·김현미·이기순·김미숙·이미영·성경화·김경순·석민희·임미경·박현숙·한현숙 등이다.
탁구 여자복식에서는 양영자·현정화가 우승했다. 준결승에서 일본의 호시노·이시다조를 2 대 0으로 가볍게 물리친 양영자·현정화조는 결승에서 중국의 자오즈민·천징조에 2 대 1로 승리해 금메달을 차지했다.
한편 탁구 남자단식 우승은 의외의 결과였다. 당초 목표는 동메달 정도였는데 준결승에서 유남규가 스웨덴의 린드를 3 대 0으로 꺾고 김기택이 헝가리의 클램저를 역시 3 대 0으로 물리쳐 결승전은 한국 선수들끼리의 대결이 되었다. 이 대결에서는 유남규가 3 대 1로 김기택을 누르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나머지 6개의 금메달은 모두 체급경기인 격투기 종목에서 나온 것이었다.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74㎏급에서 김영남이 최초의 금메달을 획득한 데 이어, 자유형 82㎏급에서 한명우가 또 하나를 추가했다.
한명우는 조 1위 결정전(준결승)에서 이마를 크게 다쳐 경기진행이 어려운 상태였으나 붕대를 감고 출전, 터키의 네즈미 겐잘프를 물리치고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유도 60㎏의 김재엽은 순조로운 경기진행 끝에 우승을 차지했고, 65㎏의 이경근은 우승이 어려울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재치있는 플레이로 결승전에서 헝가리의 야누시 파블로프스키를 누르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복싱은 여러 가지로 말썽이 많은 종목이었다. 기대를 모았던 라이트 플라이급의 오광수와 밴텀급의 변정일이 잇따라 1회전에서 탈락하자 한국 복싱관계자들이 경기장 안에서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이 난동사건으로 인해 미국의 NBC를 비롯, 일부 외신에서는 서울올림픽의 원만한 진행을 염려하는 기사를 보도했으나, 대회관계자들의 노력으로 모든 복싱경기는 정상을 되찾았고, 플라이급 결승전에서 김광선이 동독의 안드레아스 테브스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인 끝에 4 대 1 판정승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뒤이어 라이트 미들급에서 박시헌이 기대하지 못했던 금메달을 추가함으로써 금메달 12개로 종합순위 4위가 확정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성과 및 의의
올림픽은 하나의 스포츠행사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올림픽만큼 많은 국가에서 많은 인원을 동원하는 행사는 지구상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그러한 측면에서 볼 때 올림픽은 단순한 스포츠행사 이상의 중요한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제24회 서울올림픽을 평가할 때, 첫째 스포츠행사로서 완벽에 가까운 성공을 거두었고, 둘째 동서의 이념분쟁 및 인종차별로 인한 갈등과 불화를 해소시키면서 세계평화의 새로운 계기를 마련했으며, 셋째 한국의 국제적 지위를 크게 격상시켰다고 할 수 있다.
이 서울올림픽에서는 33개의 세계신기록과 5개의 세계타이기록, 227개의 올림픽신기록과 42개의 올림픽타이기록이 수립되었다.
이는 19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에서 수립된 세계신기록 12개 및 올림픽신기록 81개와 비교해볼 때 엄청나게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의 세계신기록 28개, 올림픽신기록 32개보다도 훨씬 상회하는 결과였다.
두 차례의 반조각 올림픽이 모처럼 하나의 올림픽으로 치러졌기 때문에 풍성한 기록이 수립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완벽한 경기장 시설과 빈틈없는 경기진행이 중요한 구실을 했다는 국내외의 평가를 받았다.
이 서울올림픽에 출전한 160개국 중 한국과 수교 없이 북한과 단독수교를 맺고 있던 국가가 25개국이나 되었으며, 한국은 물론 북한과도 미수교 상태에 있던 국가가 2개국이 포함되어 있었다.
대부분이 공산국가인 이들 미수교국이 대거 서울올림픽에 출전해서 한국 및 한국민과의 우의를 두텁게 하고 상호교환의 기회를 가짐으로써 한국의 국제적 지위 향상은 물론, 세계평화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었다.
서울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끝난 직후인 10월 18일 노태우 대통령이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국가원수로서는 최초의 국제연합총회(UN총회)에서 연설을 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서울올림픽이 가져다 준 정치적·외교적 성과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문화적으로 볼 때 소련의 볼쇼이발레단과 모스크바 필하모닉이 서울에 와서 한국인에게 공산권 예술을 소개했다는 것도 중요한 변화이자 소득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 보였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금기로 닫혀져 왔던 공산권 예술을 받아들이면서 미지의 예술에 대한 호기심을 아낌없이 충족시킬 수 있었다는 것도 역사적인 사실로 기록될 수 있다.
이와 같은 변화는 예술과 문화의 영역을 넘어서서 한국민의 이데올로기 문제로까지 확산되었다. 그것은 ‘우려할 만한 변혁’이 아닌, 시대의 흐름에 순응하는 ‘발전적 변화’라는 점에서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한국민의 의식수준까지 크게 향상시켰다고 평가할 수 있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다. 헝가리와는 이미 무역대표부 설치로 통상의 길을 열었고, 동독·유고슬라비아·체코슬로바키아 등이 교역을 적극적으로 희망하고 나섰다. 소련은 시베리아 개발사업에 한국의 참여를 권유했으며, 중국은 한국의 기술도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한국 경제를 더욱 성장시킬 수 있는 이와 같은 현상은 서울올림픽을 통해 직접 사용해 본 한국상품에 대한 신용도가 높아졌고, 그 기술에 대한 신뢰도 컸기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스포츠가 이룩한 세계 제4위라는 지위는 결코 스포츠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다. 정치·경제·문화적으로도 세계 열강의 지위를 굳힐 수 있는 계기와 바탕을 마련했던 것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이의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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