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춘장(春長), 호는 설해(雪海). 임영대군(臨瀛大君)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견철(李堅鐵)이고, 어머니는 정응창(鄭應昌)의 딸이다.
1635년(인조 13) 알성문과에 장원으로 급제, 곧 문한관(文翰官)을 거쳐 감찰이 되어 1636년 동지사(冬至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644년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이 되어, 기성군(杞成君) 유백(兪伯)의 비행을 공격하다 왕의 노여움을 사 치죄 당하였고, 2년 뒤에 사간이 되었다.
1648년 청주목사로 재직 중 술을 좋아하다 추고(推考)당하여 함안군 춘곡역(春谷驛)에 유배되었다. 1651년(효종 2) 집의로서 진향사(進香使)의 서장관이 되어 청나라에 다녀온 뒤 사간이 되었으나, 1654년 소현세자(昭顯世子)의 아들을 비호하다가 명천에 유배되었다.
2년 뒤에 직첩(職牒)이 환수되었고, 1659년 보덕으로 재기용된 이래 사간·강원도관찰사·소결청당상(疏決廳堂上)·대사간 등을 거쳐 1671년 (현종 12) 예조참판에 승진하였으며, 같은 해 사은부사(謝恩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다음해에 평안도관찰사가 되었으나 재직 중 죽었다. 저서로는 『설해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