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백일헌 종택은 현재 대문채, 본채, 사당, 부속채(변소와 광)로 이루어져 있다. 종중(宗中)의 원로들과 면담을 한 결과로, 1908년(융희 2)의 화재로 소실된 대문채와 본채 외곽의 사랑채 일부를 재축(再築)한 이후 현존하는 건물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부속채들에는 지속적으로 변화가 있었다. 대문채의 옆에 나란히 있던 광채가 사라졌으며, 본채의 서측에 있는 변소 옆의 헛간, 텃밭 앞의 부속채가 없어졌다. 이 부속채는 부엌, 안방, 윗방 등 세 칸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1985년경 철거되었다. 또한 본채의 뒤에 있는 현재의 장독대에는 짚으로 지붕을 덮은 ‘짚주저리’가 있었다.
1950년대 중반 이전에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 사진을 보면, 건넌방 앞의 작은 마당을 둘러싸는 담의 위에는 현재와 같이 기와를 얹은 것이 아니라 초가형의 지붕이 씌워져 있었다. 그리고 사당의 일각 대문 앞으로는 지형을 경사지게 처리하였을 뿐 지금과 같은 돌계단은 없다. 그 밖에도 안사랑채와 바깥사랑채에 각각 ‘환벽정(環碧亭)’과 ‘오월재(梧月齋)’라는 현판이 대문채 쪽을 향한 처마 아래에 걸려 있었으나 지금은 철거된 상태다. 오월재는 현재 종손(宗孫)인 이신행의 7대조인 이유창(李儒昌)의 호이기도 하다.
대지의 형상이 부정형이며, 이에 따라 주거 영역의 구성도 정형에서 벗어나 있다. 기본적으로 안채 영역, 사랑채 영역, 그리고 사당 영역으로 구성되는데, 안채와 사랑채는 ㅁ자형의 틀 안에 통합되어 있다. 사랑채가 안사랑채(작은사랑채 혹은 윗사랑채)와 바깥사랑채(아랫사랑채)의 두 채로 구성되며 두 채의 사랑채, 안채, 광채 등 본채를 이루는 네 부분의 지붕이 분절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본채의 전체적인 형태는 ㅁ자형이다. 그런데 네 면이 일정한 ㅁ자형의 구조체가 아니라, 한쪽 날개채가 짧은, ㄷ자형의 안채를 중심으로 짧은 일자형의 안사랑채, ㄴ자형의 바깥사랑채, ㄴ자형의 광채 등 네 채가 결합해 이루어진 ㅁ자형 집이다.
안채는 동쪽의 짧은 날개채를 제외하면, 공간이 깊이 방향(보 방향)으로 두 켜로 이루어진 겹집이다. 광채는 홑집이며, 안사랑채와 바깥사랑채는 겹집형인데 한 켜의 실에 한 켜의 개방된 마루가 부가된 형태이다. 전형적인 전통 한옥에서 온돌과 마루는 횡방향(도리 방향)으로 결합되는 데 비해 백일헌 종택의 안사랑채와 바깥사랑채에서는 깊이 방향(보 방향)으로 결합되어 있다. 이런 독특한 공간 구성은 경사지의 제한된 부지에서 필요한 온돌방과 마루의 칸 수를 확보하려 한 결과로 보인다.
이런 겹집의 공간 구성과 달리, 구조 방식은 두 켜의 공간에 같은 높이의 대들보를 설치한 겹집이 아닌, 대들보보다 높이가 다소 낮게 퇴보(退樑)를 설치한 퇴집 구조이다. 곧, 안사랑채에는 마루의 보를 퇴보 형식으로 경사지게 설치했으며, 바깥사랑채에는 퇴보를 설치하였다.
안채는 납도리집, 곧 첨차나 익공 등의 공포 부재를 사용하지 않고 기둥머리에서 보와 도리를 직교시켜 직접 결구(結構)한 형식이다. 광채는 3량 구조이며, 다른 부위는 1고주 5량 구조다. 복잡한 공간 구성과 대응해 지붕도 복잡하게 분절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ㄇ형과 ㄩ형이 결합한 형태이나 각각은 다시 두 개로 분절되어 네 부분으로 나뉜 모양이다. 분절된 각 부위의 용마루 선은 일치하지 않으며 그 높이도 각기 다르다.
안채 평면형은 윗방에서 꺾이는 ㄷ자형이다. 그러나 동쪽 날개가 짧은 비대칭 모양으로, 온전한 ㄷ자형이라기보다 윗방 꺾음형의 ㄱ자집이 변형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중심이 되는 몸채는 대청으로, 안마당의 폭과 대응해 전면 3칸으로 구성되었다. 안채는 전퇴집 형식의 동쪽 날개를 제외하면 공간이 두 켜로 구성된 겹집이다. 안마당의 폭을 좁게 하고 안채를 겹집형으로 구성한 것에서 대지 폭의 제한 속에서 필요한 공간을 수용하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또한 동 · 서쪽 날개에 안마당 쪽으로는 퇴 공간이 없으나 반대 방향으로 퇴 공간이 발달한 것에서 안채 건물을 그 양측의 외부공간과 긴밀히 연결해 공간을 확장적으로 구성해 활용하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특히 며느리의 공간을 건넌방, 그 앞에 전용 툇마루, 그리고 다시 그 앞에는 낮은 담을 두른 건넌방 전용의 작은 마당을 차례로 두어 확장적으로 구성한 것은 다른 한옥에서 볼 수 없는 디자인이다. 이 안채에 두 칸의 작은 사랑채가 이어져 ㄷ자형을 이룬다. 안사랑채는 전면 두 칸에 한 칸 깊이(2.12m)의 넓고 높은 (기단의 상면에서 마루 상면까지의 높이 93cm) 마루를 설치한 것이 특징이다.
논산 백일헌 종택은 대체로 충청도 지역의 ㅁ자계 한옥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마을 입구 쪽의 돌출한 지형에 입지하고 본채를 짜임새 있게 구성한 점, 사랑채를 안사랑채와 바깥사랑채로 분절하고 각각 온돌과 마루를 깊이 방향(보 방향)으로 배열한 점 등은 일반적인 전통 한옥, 그리고 충청남도 지방의 전통 한옥들과 다른 면모이다. 논산 백일헌 종택은 비슷한 시기인 1709년(숙종 35)에, 인근의 노성면 교촌리에 건립된 논산 명재고택(論山 明齋古宅)과 비교되기도 한다. 백일헌과 명재의 가문이 대를 이어 교류했으며 백일헌이 명재의 제자였음을 고려할 때 백일헌 종택이 인근에 지어진 명재고택을 모델로 삼았을 개연성이 크다고 본다. 그러나 성리학자의 한옥인 명재고택이 교과서적인 정격(正格)의 전통 한옥이라면, 무신의 한옥인 백일헌 종택은 긴장감 있는 변격(變格)의 전통 한옥으로서 의미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