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이채(李采)

조선시대사인물

 조선후기 호조참판, 한성좌우윤, 동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확대하기축소하기프린트URL의견제시

트위터페이스북

의견제시
항목명이채
이메일올바른 형식의 이메일을 입력해 주세요.
의견
10자 이상 상세히 작성해 주세요.
첨부파일
의견제시 팝업 닫기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조선후기 호조참판, 한성좌우윤, 동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키워드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및 활동사항
본관은 우봉(牛峯). 자는 계량(季亮), 호는 화천(華泉). 할아버지는 이재(李縡)이며, 아버지는 대사간 이제원(李濟遠)이다. 1774년(영조 50)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이듬해 휘령전(徽寧殿) 참봉에 제수되었다. 그 뒤 사헌부·호조·형조의 벼슬을 거쳐 돈녕부주부를 지냈다. 음죽현감이 되었을 때 무고로 벼슬을 그만두고 귀향하여 학문에 전념함과 동시에 가업을 계승하는 데 힘썼다.
1790년(정조 14) 다시 벼슬길에 올라 홍릉령(弘陵令), 지례현감, 선산부사, 상주·충주·황주의 목사, 익위사의 위수·사어 등의 관직을 거쳐 호조참판, 한성좌우윤 및 동지중추부사를 지냈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저서로는 『화천집』 16권 8책이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7년)
김창수
영역닫기영역열기 관련 멀티미디어 (2)
페이지 상단으로 이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