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숙하(叔夏), 호는 반주(盤州). 아버지는 군수 정유(鄭維)이다.
1657년(효종 8) 진사가 되고, 이듬해 의금부도사를 비롯하여 연원찰방(連源察訪)·제용감직장(濟用監直長)·활인서별제(活人署別提)·감찰·형조좌랑을 역임한 뒤 파직되었다가, 1667년(현종 8) 공조정랑·호조정랑·공산현감·형조정랑·부평부사를 역임한 뒤 해주목사·한성판관·원주목사·이조정랑·태인현감·한성부서윤·선공감부정(繕工監副正) 등을 역임하였다.
이 시기는 남인·서인간의 당쟁이 극심하여 서인인 그는 여러 차례 파직된 바 있고,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 때 남인에 의하여 서인이 축출당하매 고향 임천(林川)에 돌아갔다가 1698년 첨지중추부사에 제수되고 이듬해 죽었다.
대과급제는 하지 않았으나 관료생활 40여년에 여러 차례 외직으로 수령과 내직을 역임하면서 보통 이상의 재주와 세월을 기다리는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