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조(慧照)의 법명은 담진(曇眞)이며 시호는 혜소(慧昭)이며, 고려 문종, 예종 때에 주로 활약하였다. 담진은 1076년(문종 9)에 송에 들어가 3년간 유학을 하였다. 그가 유학하였던 시기는 약 50년 동안 단절되었던 고려와 송의 국교가 재개되었고, 당시 송의 신종(神宗)과 신법당 관료들은 고려와 연합해서 요를 공략하려는 대외 정책을 펴고 있었다. 그는 송 신종과 신법당 관료들의 후원을 받아 수도 변경에서 지내면서 당시 송 불교계의 승려들과 교유하였다.
담진은 특히 정인도진(淨因道臻)의 사상적 영향을 많이 받았다. 정인은 본래 임제종의 부산법원(浮山法遠)의 법맥을 계승하였으나, 변경 정인선원(淨因禪院) 주지인 운문종의 대각회련(大覺懷璉)에게 나아가 회련의 높은 평가를 받고 정인선원의 주지로 주석하였다. 담진은 임제종, 운문종을 비롯한 북송 선종의 새로운 동향과 사상적 흐름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좌선의 수행 규칙과 거란본 대장경을 구해 고려에 전하였다. 1080년(문종 34)에 귀국하여 개경의 선종 사찰인 광명사(廣明寺)에 머물렀고, 그 후 춘천 화악사(華岳寺), 광주 증심사(證心寺), 순천 정혜사(定惠社) 등에 머물렀다. 나아가 담진은 1107년(예종 2)에 왕사(王師), 1114년(예종 9)에 국사(國師)에 책봉되었다.
담진의 문하 제자로는 대감국사(大鑑國師) 탄연(坦然), 예종의 서자인 광지대선사(廣智大禪師) 지인(之印), 개경 광명사 주지 관승(貫乘), 예천 용문사(龍門寺) 영보(英甫) 등이 있다. 또한 이자현( 李資玄)을 비롯한 거사들과 교류하며 사상적 영향을 주고받았다. 담진이 송의 선종계와의 교류에 물꼬를 트면서, 그의 제자인 탄연은 송 임제종의 황룡혜남(黃龍慧南)을 계승한 개심(介諶)과 서신을 통해 교류하였다. 탄연이 개심에게 자신의 사위의송(四威儀頌)과 상당어구(上堂語句)를 보내 인가를 받았고, 이어 개심의 제자인 계환(戒環), 도응(道膺) 등과 교류하였다. 이러한 교류 관계를 통해 송에서 성행하던 공안선이 본격적으로 고려에 수용되었고, 송의 다양한 선적을 입수하였다. 또한 계환의 법화경, 『능엄경』 주석서가 고려에 전해지고 이후 지속적으로 간행되어 폭넓은 사상적 영향력을 미쳤다. 따라서 담진의 활동과 송 선종과의 교류는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천태종을 창립하면서 침체하였던 선종이 부흥하는 계기를 마련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