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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군(龜城郡)

인문지리지명

 평안북도 중서부에 있는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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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읍도
분야
인문지리
유형
지명
시대
조선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평안북도 중서부에 있는 군.
영역닫기영역열기개관
동쪽은 태천군, 서쪽은 의주군, 남쪽은 정주군·선천군, 북쪽은 삭주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4°49′∼125°25′, 북위 39°47′∼40°11′에 위치하며, 면적 1,241.6㎢, 인구 7만 8365명(1945년 현재)이다. 10개 면 91개 동으로 되어 있으며, 군청 소재지는 구성면 좌부동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자연환경
강남산맥(江南山脈)과 적유령산맥(狄踰嶺山脈)의 서남단 여맥이 모두 이 군에 미치어, 천마산(天摩山, 1,169m)을 비롯한 여러 높은 산이 솟아 일반적으로 산지가 많다.
군 중앙부에 청룡산(靑龍山, 920m)·입봉(笠峰, 775m)·구봉산(九峰山, 720m) 등이 연이어 남북으로 뻗어 이 군의 동남·북서 방면의 분수령이 된다.
분수령의 동남쪽에는 천방강(川坊江)·운천강(雲川江)이 흘러 태천군에서 대령강(大寧江)으로 흘러 들어가며, 북쪽에는 삼교천(三橋川)이 흘러 의주군에서 압록강으로 들어간다. 이들 강 유역에 비교적 넓은 평지가 발달되어 군민의 생활 터전이 되고 있다.
위도 상 북쪽에 있는 내륙 지방으로 한서의 차가 심한 대륙성 기후 지역이다. 연평균 기온 8.5℃, 1월 평균 기온 ·10.3℃, 8월 평균 기온 24℃이며, 연 강수량 1,300㎜로 다우지이다. 첫서리는 9월 29일경, 마지막 서리는 4월 3일경에 내린다.
영역닫기영역열기역사
[고 대]
구석기 시대의 유물·유적은 아직까지 평안북도 일원에서 발견된 바 없으므로 이때 사람이 살고 있었는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또한, 신석기·청동기·철기 시대의 유물·유적도 발견되지 않고 있으나, 이웃하고 있는 의주군·삭주군·선천군·정주군 등에서는 신석기 시대를 비롯한 유물 및 주거지가 발견되고 있으므로 이곳에서도 이 시대에 사람이 정착하여 살았을 가능성이 있다.
고조선 시대에는 고문헌에 많이 나오는 동이(東夷)나 한(韓)·예맥(濊貊) 등의 이동을 고찰해 볼 때 단군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 그리고 한사군 설치 및 고구려·발해의 건국에 이르기까지 구성군은 종족 이동과 문화 파급의 길목에 위치하여 활발한 접촉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더욱이, 고구려 시대에는 이곳에 군현을 설치하였을 것으로 짐작되나, 기록이 없어서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발해 시대에는 압록부(서경)에 속하였다.
[고 려]
고려 초에는 만년군(萬年郡)이라 하였다. 993년(성종 12) 거란의 제1차 침입 때 서희(徐熙)의 활약으로 흥화진·용주·철주·통주·구주·곽주 등의 강동육주를 수복하니, 구주는 곧 지금의 구성군이다. 고려는 이곳을 수복한 뒤 서희에게 명하여 구주 등에 견고한 성을 쌓게 하여 서북면 방어의 최전선으로 삼았다.
1018년(현종 9) 방어사를 두었다. 구주를 청사에 크게 빛나게 한 것은 거란의 제3차 침입 때 강감찬(姜邯贊)이 이룩한 구주대첩이다.
적장 소배압(蕭排押)이 개경 근방까지 진격하였다가 방비가 견고하여 그 함락이 불가능하므로 일단 후퇴, 구주에 당도하였을 때 강감찬이 동교(東郊)에서 요격하여 거란군을 크게 무찌르니, 적은 크게 패하여 수십만 중 겨우 수천 인이 살아남아 압록강을 건너 달아났다.
1216년(고종 3) 거란 왕자 김산(金山)·김시(金始)가 몽고군에 쫓기어 구주를 침공하였을 때 주민이 항전하여 큰 전과를 거두고, 1231년 몽고의 제1차 침입 때 몽고군이 구주를 포위하였으나 정주분도장군(靜州分道將軍) 김경손(金慶孫)과 병마사 박서(朴犀)가 성을 끝까지 잘 지켜, 그 공으로 정원대도호부(定遠大都護府)로 승격되었다. 뒤에 도호부를 삼았다가 다시 정주목으로 고쳐 주치(州治)를 마산 남쪽으로 옮겼다.
[조 선]
1455년(세조 1) 11월 구성은 사통오달의 요충지인 데다가 일찍이 여몽전쟁 때 박서·김경손이 성을 사수한 바 있는 유서 깊은 곳이라 하여 정주목에서 분리하여 군으로 독립시키고, 1457년 2월 곽산의 석현(石峴), 정주의 방아현(防阿峴)·천현(泉峴)·외서양상하사기소(外西陽上下沙器所), 수천(隨川)의 안의리(安義里)를 구성에 편입시켰다.
또한, 폐4군의 백성을 이곳에 옮겨 살게 하였으며, 1466년 2월 거진(巨鎭)이 있었다고 하여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관원으로 부사(종3품)·교수(종6품) 각 1원이 있었고, 진관에는 선천·곽산의 두 군이 딸려 있었는데 병마첨절제사(종3품) 1원이 있어 이를 지휘하였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이 좌천되어 부원수 겸 평안병사로서 구성에 머물러 있다가 불만을 품고 구성부사 한명련(韓明璉)과 공모하여 반란을 일으켜 한때 서울까지 점령하였으나, 무학재에서 관군에게 크게 패하여 난은 평정되었다. 이에 선천·곽산의 진관을 폐하고 도호부만 존속시켰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 후금이 일주일 만에 청북(淸北) 지방을 석권하자 구성부사 전상의(全尙毅)는 급히 부하 병사를 동원하여 안주를 방어하다가, 안주목사 김준(金浚), 평안병사 남이흥(南以興)과 같이 다 전사하고 성이 함락되었다.
1683년(숙종 9)에는 구성에 좌영을 두고 태천·안의·식송을 관할하게 하였다가, 1732년(영조 8) 좌영장을 폐하고 1748년에는 태천과 안의를 독립시켰다.
『여지도서 輿地圖書』에 의하면, 1759년(영조 35) 현재 구성부는 13방에 호수 5,551호, 인구 1만 9135인이었다. 1811년(순조 11) 관서 지방에서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 약 보름 만에 청북 8읍, 즉 박천·가산·정주·곽산·선천·철산·용천·태천이 반군의 손에 들어갔지만, 구성은 부사 조은석(趙恩錫)이 좌수 홍이경(洪履慶), 대동도감 조영(趙映)의 협조를 얻어 신속하게 방비책을 세워 부의 남쪽 남창(南倉)까지 들어온 반군을 격퇴함으로써 반군의 기세를 꺾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근 대]
갑오개혁 이듬해인 1895년 5월 지방 관제가 바뀌어 종래의 도·목·부·군·현제를 폐지하고 부·군제, 즉 23부 334군을 설치하여 부에는 관찰사, 군에는 군수를 두었는데, 구성은 군이 되어 의주부에 속하였다.
그러나 23부제는 불합리한 점이 많아 1896년(건양 1) 8월 다시 전국을 13도 1목 15부 337군으로 개편하였는데, 구성군은 평안북도에 속하게 되었다. 1907년 5월 구성군은 14면으로 호수 7,765호, 인구 4만 2492명이었고, 1943년의 행정구역은 구성면·동산면·오봉면·방현면·서산면·노동면·이현면·사기면·관서면·천마면 등의 10개 면에 호수 1만 3563호, 인구 7만 8356명이었다.
민족 항일기의 독립 운동 상황을 살펴보면 외적의 침공 때마다 보인 끈질긴 저항 정신을 여기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하였음을 알 수 있다.
먼저 3·1운동 당시에는 3월 11일 방현면 남시(南市)의 시위에서부터 시작하여 집회 횟수 17회, 참가자 1만 6500명, 사망자 20명, 부상자 48명, 투옥자 38명에 이르렀으며, 천도교·기독교의 신자와 면리의 유지들이 주동하였다.
3·1운동 직후 최시흥(崔時興)을 대장으로 하여 조직된 의병인 천마대(天摩隊)는 대원이 대부분 구한국군 출신으로 국내에서 군자금을 모금하면서 암살·방화 등의 게릴라전을 펼쳐 일제에 항거하였다.
오봉면 출신 박찬계(朴燦啓)는 3·1운동 직후 남만주 관전현(寬甸縣)에 건너가 평북독판부(平北督辦部) 참사가 되었고, 1920년 독립군 참리부(參理部) 국내출장원으로 배휴호(裵鐫浩)와 함께 활약하다가 압록강변에서 일본 경찰과 충돌하여 같이 전사하였다.
그리고 일찍이 한말 의병 운동에 투신한 바 있고, 3·1운동 후 남만주 관전현에 건너가 독립단 소모부장(召募部長)으로 근무하였으며, 1920년에는 광복군사령부 제3영장으로 백의범(白義範) 등과 함께 국내에 잠입하였다가 김종희(金宗熙)의 밀고에 의하여 용천군에서 일본 경찰의 습격을 받아 전사한 관서면 출신 홍식(洪植)의 활약도 특기할 만하다.
영역닫기영역열기유물·유적
994년(성종 13)에 서희가 축성하고 1702년(숙종 28) 부사 권순(權詢)이 개축하여 1704년에 완성한 구성읍성이 있으며, 동·서무를 갖춘 문묘와 향교가 있다.
구란(龜卵)·구석(龜石)의 전설적 유물과 구위동(舊衛洞)의 지당(池塘)이 있으며, 구성면의 동창(東倉)·서창(西倉), 방현면의 남창(南倉), 오봉면의 오창(敖倉), 노동면의 용창(龍倉), 사기면의 안창(安倉), 천마면의 천창(天倉) 등 7개의 창고지와 혜민창(惠民倉)·염창(鹽倉)·지통고(紙筒庫)·내군고(內軍庫)·화약고 등 많은 창고가 있다.
구성면 북서쪽 28㎞에 있는 천마면 극성산령에는 안의진(安義鎭)이 있으며, 천마면 새원령(塞垣嶺) 아래에는 1681년에 설치하였던 식송진(植松鎭) 터, 구성면에는 구성지(龜城池)가 남아 있다. 구성지는 연당을 비롯한 여덟 곳의 못으로, 이구동의 위사구지(衛舍舊址)와 동문 안에 2개, 남문 안에 2개, 만년사 앞에 3개가 있다.
위사구지는 1681년(숙종 7) 부사 신건(申健)이 축조하고, 그 밖의 것은 부사 권순이 축조하였다. 1829년(순조 29)에는 부사 윤영배(尹永培)가 동문 안의 연당을 확장하여 주위에 버드나무를 심고 못에 연을 심어 구성 제일의 절경으로 만들었으나, 연꽃이 점점 시들어 없어지자 1906년 일진회에서 못을 묻고 논과 밭으로 만들었다. 이 못을 축조한 공을 기려 주민들이 권구추모비를 세우기도 하였다.
불교 문화재로는 구성면 서성(西城)의 만년사(萬年寺)가 있으며, 북면에 원통사지(圓通寺址)가 남아 있고, 이현면 길상동의 길상사(吉祥寺), 동산면 개모산의 동림사(東林寺), 천마면 은창산의 안심사(安心寺) 등이 있다.
음성의 동문 밖 4㎞ 지점의 봉황대(鳳凰臺)에 있는 굴암사(窟巖寺, 일명 묘굴사)는 오백나한상을 동굴 속에 봉안하고 있는 역사가 오랜 절이다.
구성 남문인 진남루와 서산면 염잠동의 탐암대, 구성면 서쪽 32㎞에 있는 편월성(片月城), 서북쪽 16㎞에 모문룡구지와 석성 등이 있다.
군내에는 17개소의 성터와 사기면 구암동에 도요지 등이 있으며, 고구려 및 낙랑 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석총과 전곽분 등 많은 고분군이 구성면 하단동, 노동면 백석동, 사기면 향산동, 천마면 연창동·탑동 등에 분포되어 있다. 이들의 크기는 지름 4∼6m 크기에 이르는 소규모 고분들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영역닫기영역열기교육·문화
조선 시대의 교육기관으로 구성향교와 많은 서당이 있었으며,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906년 군수 윤석필(尹錫弼)이 향교 부설로 실업교육기관인 대동학교(大同學校)를 설립하였고, 1906∼1908년에 종래의 서당을 사립학교로 개편하여 신교육을 실시하였다.
이들 교육기관으로는 구성면의 유신학교(維新學校), 방현면의 변산학교(辨山學校)·창명학교(刱明學校)·희명학교(熙明學校)·흥명학교(興明學校), 노동면의 부양학교(扶養學校)·창명학교(昌明學校), 서산면의 신명학교(信明學校)·충명학교(忠明學校), 관서면의 영명학교(英明學校), 이현면의 덕명학교(德明學校), 동산면의 동룡학교(東龍學校)·효명학교(孝明學校) 등이 있었으나 1922년 실시된 1면1교 정책에 의하여 공립학교를 설치함에 따라 전부 폐지되었다.
1937년 현재 공립학교는 구성면에 2개교와 각 면에 1개교씩 모두 11개교가 있고, 학생 수는 2,872명, 교원 수는 38명이다. 이 밖에도 간이학교 4개교가 있으며 학생 수는 215명, 교원 수는 4명이다.
1927년 구성공립보통학교 보습과를 승격시켜 2년제인 구성공립농업실수학교를 설립하였으며, 1941년 군수 장도건(張道鍵)이 설립한 구성공립농업학교는 이 군은 물론 인근 군의 농업 교육에 크게 공헌하였다.
종교 분포는 1935년 현재 불교 사찰로는 폐사 15개소와 묘향산 보현사(普賢寺)의 말사인 청룡산 만년사 및 굴암사·동림사·안심사·길상사 등이 있다. 천도교는 동학운동 5년 뒤부터 동학이 포교되어 천도교의 고장이라 불릴 정도로 성하였다.
1921년에 교구장 이종수(李鍾秀) 등이 동학교당 내에 2년제 강습원을 설치하여 교육에 힘썼으며, 1921년에 천도교소년회, 1923년에 천도교청년당 및 여성 단체인 천도교내수단(天道敎內修團) 등이 설립되어 교육과 포교 활동을 하였다.
기독교는 3·1운동 33인 중의 한 사람인 양전백(梁甸伯)이 최초의 신자가 되어 사기면 신시(新市)에 교회당을 세웠으며, 1905년에 최석찬(崔錫贊)이 구성면 좌부동에 교회당을 설치하여 미국인 선교사 방혜법(邦惠法)을 목사로 초빙하였다. 1910년에는 신도 수가 8백여 명으로 늘어 방현면 남시의 교회와 노동면의 청룡교회(靑龍敎會) 등 많은 교회가 설립되었다.
이 지방의 설화 중 대표적인 것은 「소도둑이야기」가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날에 범 한 마리가 배가 고파서 먹을 것을 찾아 마을로 내려와, 어느 집 앞의 삼밭에 들어가서 그 집의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그 집 주인 남자가 뜰에서 저녁밥을 먹다가 소나기가 오겠다고 하면서 밥상을 들고 급히 방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범은 겁이 덜컥 났다.
자기가 아까부터 여기 와 있어도 조금도 무서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던 사내가 소나기 오겠다고 급히 숨는 것을 보니, 그 소나기란 천하에 무서운 놈인가 보다고 생각하며 급히 외양간으로 들어가 숨었다.
밤이 되자 마침 소도둑이 외양간에 들어가 손으로 더듬어 보니 송아지가 있는지라 얼른 등에 올라타고 냅다 달려 나가서 보니 송아지가 아닌 범의 등에 올라탄 것을 알았다. 범은 제 등에 탄 것이 틀림없이 그 무서운 소나기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소나기를 떨쳐 버리기 위하여 죽을힘을 다해서 뛰고, 소도둑은 떨어지면 범에게 잡혀먹힐 줄 알고 역시 사력을 다하여 범의 등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러던 차에 범이 큰 나무 밑을 지나가는 기회를 타서 소도둑은 나뭇가지를 붙잡고 범의 등에서 벗어나 나무의 구멍 속에 들어가 숨었다. 소나기에게 다시 붙잡히지 않으려고 뛰어가는 범을 보고 토끼가 그것은 무서운 소나기가 아니고 사람이니 돌아가서 잡아먹자고 일러 주었다.
범과 토끼는 나무 구멍으로 가는 도중에 곰을 만나서 셋이 합세하여 소도둑을 잡아먹기로 하였다. 곰은 윗구멍을 막고 범과 토끼는 나무 밑둥을 깎아서 구멍을 뚫기로 하였다. 곰은 나무 위로 올라가서 나무에 걸터앉아 엉덩이로 구멍을 막았다.
소도둑이 위를 쳐다보니 곰의 고환이 늘어져 있는지라, 그것을 두 손으로 움켜 쥐고 힘껏 잡아당기니 곰이 아픔을 참지 못하여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그 소리에 놀란 범과 토끼는 멀리 달아나 버리고, 곰은 제 고환에 난 털을 하나 뽑아 주겠으니 살려 달라고 애원하였다. 곰의 고환 털은 쌀 나오라면 쌀이 나오고 돈 나오라면 돈이 나오는 보배라는 것이었다. 소도둑은 그 털을 얻어 가지고 가서 큰 부자가 되어 잘살았다는 것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산업·교통
군 서북쪽의 삼교천, 북동쪽의 천방강·운천강 등의 유역은 비교적 토지가 기름지고 수리 시설이 잘되어서 쌀의 산지로 제공된다. 쌀의 산출량은 도내 수위이며, 밭작물로 콩·조·수수·옥수수·대마의 생산도 많다. 산록에서는 축우·누에치기·양돈이 성하다.
광산물은 금·사금·동·흑연 등이 산출되며, 특히 금광산이 많다. 삼성(三成)·구성(龜城)·탑동(塔洞)·백석동(白石洞) 등의 광산이 유명하며, 구성면의 백운광산(白雲鑛山)은 광구가 가장 넓고 생산량이 많다.
『임원경제지』에 의하면, 1830년대 구성군 내에는 관전장(館前場)과 방현(方峴)의 남장(南場), 사기면의 신장(新場)이 있어 주로 쌀·콩·밀·보리·깨·개석잠풀[水蘇]·포목·솜·생선·소금·과일·놋그릇·사기그릇·철물·나무그릇·옹기·꿀·담배·삿자리·가축 등이 거래되었다 한다.
『증보문헌비고』에 의하면, 1902년경에는 관전장과 남장만이 있었고, 1926년에는 시장이 늘어 관전장·성내시장·남장과 조악동의 조악시장, 사기면의 신시장, 동산면의 동산시장, 이현면의 길상시장·원창시장, 천마면의 탑동시장 등이 있었다 한다.
그중 성내시장은 4일과 9일의 5일장으로 계절에 따라 산채·머루·다래 등의 토산물이 많이 거래되었고,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남시장은 5일과 10일의 5일장으로 1786년(정조 10)부터 열렸고 농산물의 집산지로 유명하며, 교통이 편리하여 장날이 되면 소달구지가 많았다.
주로 가축·농산물·생선류·목탄 등이 거래되었고, 태천·정주·선천 등지에서까지 사람들이 모여들어 평안북도에서는 선천시장 다음가는 시장으로 유명하였으며, 특히 소시장은 전국적으로 유명하였다.
정삭선(定朔線)이 개통되면서 남시장은 더욱 번성하여 상점은 물론 노점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조악시장은 광산 지대의 시장으로 구성군에서는 큰 시장에 속한다.
군의 동북부를 철도 평북선(平北線, 일명 定朔線, 定州∼水豐)이 남북으로 통과하며, 구성역과 백운역이 설치되어 이 군의 교통은 물론 연안 개발 사업에 큰 몫을 하고 있다. 도로는 구성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통하여 있어 군내의 교통은 편리하다.
구성을 기점으로 2등도로가 나 있어 남쪽은 정주·남시 방면, 동쪽은 태천 방면, 서쪽은 청룡령(靑龍嶺, 465m)을 넘어 선천 방면, 북쪽은 팔영령(八營嶺, 298m)을 넘어 삭주 방면에 각각 통한다. 이 군은 구성팔경으로 이름난 경관과 유명한 하단 굴앙골약수가 있어서 많은 소풍객과 요양객이 찾는 곳이다.
구성군 내의 여덟 군데 경치 좋은 곳을 구성팔경이라 하는데, 구성면 동쪽 주운정(籌運亭) 아래의 연못 주위(東阜賞蓮), 구성면 남쪽 유교천(柳橋川)에 있는 유교 부근의 순채(蓴菜)주 01) 산지(南澗摘蓴), 구성면 북서쪽 청룡산에 있는 용담폭포의 폭포물이 떨어지는 절경(龍岫霽瀑), 구성면 동북쪽에 있는 굴암산(窟巖山)에 아침 안개가 가득찬 모습(窟刹朝嵐), 구성면 북쪽 고양동 강 위의 옛 장수들이 칼을 갈았다는 큰 반석(劒街盤石, 일명 磨劒處), 천창강(天倉江)과 입암천(立巖川)이 합류하는 천마면 전탄강에 있는 모래벌판(箭灘沙岸), 서산면 염금동의 절벽(塔巖幽勝), 구성면 북쪽에 있는 낭떠러지의 절경(校崖通眺) 등을 일컫는다.
동산면 용덕동에 있는 굴앙골약수는 철분이 많아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위장병에 특효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약수터 부근의 수석과 계곡의 경치가 아름다워 명소로 알려져 있으며, 경내에는 관악묘(關岳廟)가 있다.
굴앙골약수를 찾는 사람은 심신을 정갈하고 단정하게 하여 이곳을 청정무비의 경지로 만들어야 한다 하였으며, 만일 이 금기를 지키지 못하면 산신령이 노하여 약수 물을 흐리게 하며 뜻밖의 재화를 내린다고 한다.
이 밖에 구성면 하단동의 하단약수, 구성면 백운동의 백운약수, 노동면 운계동의 운계약수가 있다. 하단약수는 물맛이 좋고 주변의 경관이 아름다워 연중 요양객들이 모여든다. 백운약수는 정삭선의 백운역 근처에 있어 교통이 편리하여 요양객이 많다. 운계약수는 물맛이 좋기로 유명하나 교통이 불편하다.
영역닫기영역열기읍·면
[구성면 龜城面]
군의 북부에 있는 면. 인구 1만 1232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우부동이다. 남쪽에는 아미산(俄嵋山), 서쪽에는 주라봉(珠羅峰)이 있다. 지세는 동남 방향으로 점차 평탄해지는 지형으로 개석분지이다.
적유령산맥의 서쪽 끝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청천강 지류인 대령강에 흘러드는 동문천이 이곳을 동남류한다. 비교적 평탄한 지형에 풍부한 강수량이 있어 농업 지역으로 적지이나 천연 재해가 많다.
쌀·조·수수 이외에 특산물로는 콩·은어·누에고치·소 등이다. 특히, 섶누에로 불리는 누에고치는 북부 산지에서 많이 생산된다. 백운동에 백운금광이 있으며, 산림자원이 풍부하여 각종 임산물이 생산된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와 백운간이학교·구성공립농업실수학교·구성공립농업학교 등이 있다.
우부(右部)·좌부(左部)·하단(下端)·상단(上端)·이구(犂邱)·고양(高陽)·청룡(靑龍)·백운(白雲)·차유(車踰)·원흥(院興) 등 10개 동이 있다.
[관서면 館西面]
군의 서부에 있는 면. 인구 1만 141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소관동이다. 구릉성 산지로 문곡산(門谷山, 648m)·승암산(僧巖山, 593m)·가래산(柯來山, 386m)이 주산이며, 서북쪽은 남북 방향으로 산세가 험하여 좁고 길다란 곡저평야가 발달되어 있다.
산간분지에 있는 계곡 지대로 임산자원이 풍부하며, 밭농사가 성하다. 광산업으로는 조악동의 삼성금광산이 한때 세계적으로 유명하였던 곳이며, 이 밖에 어궁동의 어궁금광도 유명하다. 금 광산으로 인하여 구성군 내에서 가장 경기가 좋았던 지역이다. 교육기관으로는 관서초등학교가 있다.
소관(昭關)·신풍(新豐)·북남송(北南松)·서고성(西古城)·대우(大牛)·송림(松林)·어궁(御宮)·조악(造岳) 등 8개 동이 있다.
[노동면 蘆洞面]
군의 중앙부에 있는 면. 인구 6,610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중방동이다. 대체로 산세가 낮으며,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은 충적평야가 발달되어 있다.
운천강의 개석평야에서는 논농사를 비롯한 밭농사를 지으며, 주요 농산물은 쌀·콩·조·옥수수·팥 등이다. 서부 산지에서는 누에치기를 하며 운천강의 은어가 유명하다.
면의 동쪽은 교통이 편리하며, 서쪽은 작심령(酌深嶺)·백갈령(白葛嶺)을 넘어 이현·원창과 통하고, 서남쪽의 어유령(於踰嶺)을 넘어서 방현·길상으로 연결된다. 교육기관으로는 노동공립초등학교와 운흥간이학교가 있다.
중방(中坊)·백석(白石)·내양(內陽)·운계(雲溪)·청룡(靑龍)·상승(上勝)·풍산(豐山)·운흥(雲興) 등 8개 동이 있다.
[동산면 東山面]
군의 북동부에 있는 면. 인구 3,432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차복동이다. 산간분지가 개석된 지형으로, 진산인 벽력산(霹靂山)의 봉황대 남쪽 기슭이 면의 북쪽에 위치하며 선무봉(仙舞峰)은 풍치가 아름답다. 용동(龍洞)은 갈령(葛嶺)의 지맥에 속하는 계곡 지대로 기암괴석이 많다.
대부분 산간 지역이기 때문에 밭농사를 주로 하여 잡곡 생산이 많으며, 임산자원이 풍부하여 임산물 생산이 많다. 주요 농산물로는 콩·조·수수·옥수수·피·대마·참깨·누에고치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동산공립초등학교가 있다.
차복(車福)·용풍(龍豐)·용퇴(龍退)·남산(南山)·선흥(仙興)·양지(陽地)·덕화(德化)·백석(白石)·풍덕(豐德)·부풍(富風)·금곡(金谷)·용덕(龍德) 등 12개 동이 있다.
[방현면 方峴面]
군의 남부에 있는 면. 인구 9,772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하단동이다. 남쪽은 높은 산지가 가로놓여 있다. 특히, 길상산이라 불리는 천검산은 이곳의 진산이며, 남쪽의 경계 지역이 되는 돌고개[石峴]는 마전령(馬轉嶺)의 동쪽 고개로 정주군의 옥천면·고안면과 경계가 된다.
이 지역은 청천강의 지류인 원천강(猿川江)이 개석한 침식분지이며, 낮고 넓은 평야가 발달되어 있다. 비교적 평야가 많고 토질이 좋아 벼농사를 비롯한 농작물이 잘 재배된다.
주산물은 콩·수수·옥수수·조·피 등이며, 소의 사육도 많다. 특히, 면 북쪽의 남시는 예로부터 소시장으로 유명하여 구성축우로 이름이 나 있다.
지하자원도 풍부하여 청송동에 금광·아연광·운모광 등이 있어 주요 광산 지역이다. 정주∼신의주 간 철도가 있으며, 정주∼구성 간, 구성∼역주 간, 구성∼방현 간의 도로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방현공립초등학교가 있다. 하단(下丹)·창(滄)·와룡(臥龍)·청송(靑松)·발산(鉢山)·변산(辨山)·길하(吉下) 등 7개 동이 있다.
[사기면 沙器面]
군의 남서부에 있는 면. 인구 6,928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향산동이다. 면의 대부분이 구릉성 산지이며 남쪽은 동서로 길게 산줄기가 계속되고, 북쪽은 동서로 길게 계곡평야가 발달되어 있다. 진산인 갈덕산(葛德山)은 퇴만산(退蠻山)의 서쪽 기슭에 있으며, 동쪽에 높은 고개와 낮은 구릉성 산지가 산재한다.
구봉산·화암산(花巖山, 620m)·밀죽봉(密竹峰, 432m) 등이 주봉을 이루며, 이 밖에 전모봉(全帽峰)·박주산(泊舟山)·우두산(牛頭山) 등이 있다. 경자령(景子領)에서 발원하여 향산포(香山浦)에서 합류되는 계류가 입암강(立巖江)이 되고 있다.
여름이 짧아 단기 재배의 밭농사가 발달되었다. 주요 농산물로는 콩·조·피·수수·옥수수 등이 있으며, 각종 임산물이 많이 생산된다. 화암동의 지경토금광(地境土金鑛)과 구암동의 동방금광(東邦金鑛)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사기공립초등학교와 지경간이학교가 있다.
향산(香山)·신시(新市)·왕당(旺堂)·구암(九巖)·독송(獨松)·석현(石峴)·송백·(松栢)·지경(地境)·인곡(寅谷)·은봉(殷峰)·화암(花巖) 등 11개 동이 있다.
[서산면 西山面]
군의 중앙부에 있는 면. 인구 6,077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입석동이다. 북서쪽에 있는 입봉이 면의 종산이며, 중앙부는 개석된 침식분지이다. 북서 지역은 구릉성 산지로 둘려 있고 남동쪽은 앞이 탁 트인 지형을 이룬다.
대맥산(大脈山)은 문수산(文秀山)의 동쪽 줄기로 면 경계가 되며, 설매봉(雪梅峰)은 입봉의 남쪽 줄기로 노동면과 경계가 된다. 황룡담(黃龍潭)은 유성령(流星嶺)에서 발원하여 세갑천(洗甲川)으로 흐르며 곡지를 개석하고 있다.
북동쪽에 있는 유교현(누다리고개)은 정주와의 전신·우편 등의 주요 통로가 된다. 내륙 산간분지에 위치하여 대륙성 기후를 나타내며 한서의 차가 심하다. 구릉성 산지와 낮은 침식분지 위에 논농사가 잘 이루어지고 있으며, 콩·조·수수·옥수수·피·참깨·대마 등의 밭농사도 성하다.
지하자원으로는 옥인동의 금 광산과 입석동의 토금광(土金鑛)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서산공립초등학교가 있다. 입석(立石)·염잠(廉岑)·평지(坪地)·옥인(玉仁)·신덕(新德)·대성(大星)·남평(南坪) 등 7개 동이 있다.
[오봉면 五峰面]
군의 남동부에 있는 면. 인구 6,925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양지동이다. 북부 일대는 천방강과 고천강이 개석된 충적평야가 발달되어 있으며, 동쪽과 남쪽일대는 구릉성 산지이다. 면의 중앙부에 대암산(大巖山, 342m)이 있으나, 대체로 낮은 산간지대를 이루고 있다.
하천에 의하여 개석된 침식분지로 비교적 농사가 잘되어 벼농사는 물론 밭농사도 성하다. 임산자원이 많으며, 특히 운천강의 은어는 옛날부터 유명하다. 이 면의 선모동에 있는 산골광산천은 접골에 특효가 있어 전국에서 유명하다. 교육기관으로는 오봉공립초등학교와 기룡간이학교가 있다.
양지(陽地)·조양(朝陽)·인봉(仁鳳)·남양(南陽)·선모(仙帽)·내양(內陽)·봉덕(鳳德)·사기(士氣)·용연(龍淵)·엄교(嚴橋) 등 10개 동이 있다.
[이현면 梨峴面]
군의 남부에 있는 면. 인구 8,351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원창동이다. 면의 대부분이 산지이며, 중앙부의 길상산과 서북쪽의 가인봉(佳人峯, 536m)이 주산이다.
원창강이 동쪽에서 여러 지류와 합류하며, 지경강(地境江)은 서남쪽의 수로로, 석상천(石上川)은 사기면의 석중강(石中江)으로, 석하천(石下川)은 사기면의 송현강(松峴江)으로 흘러든다.
내륙 산간 지역에는 임업이 성하고, 밭농사를 주로 하고 있다. 콩·옥수수·조·수수 등이 주요 작물이며, 산지가 많아 광산물이 풍부하다. 길상동의 길상금광, 진조동의 진조금광, 용산동의 용산토금광과 흑연광 등이 있다.
산지가 많아 산간도로를 통하여 인접 지역과 연결된다. 작심령을 통하여 동쪽의 방현·남시로 연결되고, 영현(嶺峴)과 수현(修峴)을 통하여 사기면과 연결된다. 교육기관으로는 이현공립초등학교가 있다.
원창(院倉)·택인(擇仁)·대안(大安)·길상(吉祥)·하단(下丹)·용산(龍山)·진조(眞鳥)·마성(磨星) 등 8개 동이 있다.
[천마면 天摩面]
군의 북부에 있는 면. 인구 6,621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탑동이다. 내륙 산간분지에 위치하여 산세가 험준하고 서쪽과 동쪽으로 각각 뻗어 내린 산 능선에 의하여 차단된 지역이다.
천마산의 동맥(東脈)인 향로봉(香爐峯)과 서맥인 극성령(極星嶺), 극성령의 남맥인 월계산(月桂山)과 서맥인 차유령 등이 주봉이다. 이 밖에 덕무산·은창산 등이 있다. 천마산에서 발원한 천창강(天倉江)이 곤지천(昆芝川)·창성천·탑동천·주음천(注音川) 들을 합류하여 전탄강(箭灘江)으로 흐르며, 청룡산에서 발원한 안창강이 노곡폭의 신창강을 합류하여 천창강으로 흘러든다.
산세가 험준하나 곡저평야에서는 밭농사가 성하고, 풍부한 임산자원이 생업이 되고 있다. 옛날부터 금 광산이 유명하여 탑동의 금광과 안창의 금광산이 유명하다. 교육기관으로는 천마공립초등학교가 있다.
탑(塔)·대성(大城)·안창(安倉)·송수(松水)·노곡(蘆谷)·동암(東巖)·신음(新音)·연창(延昌)·신두(新頭)·관(館) 등 10개 동이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광복 후 변천
1949년 1월, 광복 당시의 10개 면에서 구성·동산·오봉·방현·서산·노동·이현의 7개 면만으로 구성군을 재편성하였다.
1954년 10월에는 상단리 일부와 양하리(陽荷里) 일부를 분리하여 구성읍에 편입하고, 차흥리(車興里)에 이구리(犂邱里) 일부와 상단리 일부를 편입하여 차흥노동자구로, 남산리 일부를 분리하여 오봉리(五峰里)에 편입, 남창리에 청송리 일부를 편입하여 방현노동자구로 각각 변경하였다. 1967년 10월에 구성군을 구성시로 개편하면서 군을 폐지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주석
주01
숫나물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6년)
노도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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