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산(光山). 초명은 김현룡(金見龍). 자는 응건(應乾). 호는 세한재(歲寒齋). 아버지는 우후 김준민(金俊民)이며, 어머니는 하동정씨(河東鄭氏)이다. 키가 8척이며 용력이 뛰어났다고 한다.
1629년(인조 7) 무과에 응시하러 간 사이에 작은아버지의 노복인 김이(金伊)가 집안의 불상사를 계기로 아버지를 죽였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돌아와 동생 김성구(金成九)와 함께 반노(叛奴) 김이와 그 부모를 죽였다.
곧 담양부에 나아가 자수하였는데, 담양부사 이윤우(李閏雨)와 추관(推官)인 광주목사 임효달(任孝達) 등의 비호로 사형을 면하였다. 인조는 이들 형제의 효열을 가상히 여겨 특사하였다. 이후 이경여(李敬輿)·신경진(申景禛)의 막하에 들어가 후한 대접을 받았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인조를 남한산성까지 호종하여 선전관이 되었으며, 이어서 무과에도 급제하였다. 도총부경력(都摠府經歷)·영원군수 등을 거쳐 1657년에 삭주도호부사(朔州都護府使)가 되었다가 순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