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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식(金仁湜)

현대음악인물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음악 교사로 「학도가」, 「표모가」, 「점진가」 등을 작사한 교육자.   음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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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음악 교사로 「학도가」, 「표모가」, 「점진가」 등을 작사한 교육자.음악인.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및 활동사항
평양 출생. 우리 나라 최초의 서양음악 교사로 알려져 있다. 1896년 감리교에서 경영하던 평양의 숭덕학교(崇德學校)에 입학하였고, 그 뒤 숭실중학교 재학 때에는 선교사 부인인 헌트(Hunt)와 당시 정의여학교(正義女學校) 교장이던 스눅(Snook)에게서 성악·오르간·악전을 배웠다. 그 뒤 바이올린과 코넷을 배웠고, 오르간 솜씨가 특히 뛰어나 숭실중학 3학년 때에는 1학년의 음악수업을 맡기도 하였다.
1907년 미국 유학 준비차 상경하였다가, 당시 서울의 여러 사립학교들의 간청으로 본격적인 음악교사로 활약하게 되어 미국 유학을 포기하였다. 황성기독교청년회가 설립한 상동청년학원(尙洞靑年學院) 중학부에서 서양음악을 지도하면서, 진명(進明)·오성(五星)·경신(儆新)·배재(培材) 등 여러 사립학교에서 서양음악을 지도하였다.
1910년에는 우리 나라 최초의 음악교육기관이었던 조양구락부(調陽俱樂部)가 발족되자 이곳의 교사로서 활약하게 되었는데, 이때 그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 중에는 홍난파(洪蘭坡)와 이상준(李尙俊)이 포함되어 있다. 홍난파는 바이올린을 그에게서 배우기도 하였다.
그 뒤 서울 와이엠시에이(YMCA)에서 합창을 지도하였으며, 우리 나라 최초의 합창단인 경성합창단(京城合唱團)을 결성하였다. 경성합창단은 처음에는 남성을 중심으로 출발하였으나 뒤에 혼성합창단이 되었고, 본부는 종교교회(宗橋敎會)에 두었다.
그는 이 밖에도 많은 찬송가 가사를 우리말로 번역하였고,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세레나데」, 헨델의 「할렐루야」 등 성가와 합창곡들을 번역하였다. 또한 우리 나라 전통음악의 채보에도 공헌하였으니, 「영산회상」·「여민락」·가곡 등을 서양식 5선보로 채보하였다. 한편 전하는 바에 따르면 「애국가」의 후렴 전(前) 1절을 작사하였다고도 한다.
작품으로는 「학도가 學徒歌」·「표모가 漂母歌」·「점진가 漸進歌」·「국기가 國旗歌」 등이 있다. 초창기 서양음악 발전에 끼친 공이 크기 때문에, 우리 나라 서양음악의 주춧돌이 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이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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