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렬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시대 효행으로 정려와 예물을 하사받은 효자.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85년(선조 18)
사망 연도
1668년(현종 9)
본관
강릉(江陵)
목차
정의
조선시대 효행으로 정려와 예물을 하사받은 효자.
생애 및 활동사항

본관은 강릉(江陵). 어려서부터 효행으로 이름이 나서, 10세에 아버지가 죽자 이를 매우 애통히 여겨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가정이 극히 빈곤하여 성장해서는 동생과 함께 품팔이까지 하면서 어머니를 공양하였다.

효성에 감복한 전의현령이 환곡 대여를 실시할 때마다 왔는지 물었으며, 김충렬에게 『소학(小學)』을 가르쳐주었다. 성장하여서 부모에 대한 효성을 다한 결과 그 효행이 조정에 알려져 정문이 세워졌고, 1666년(현종 7) 예물이 하사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집필자
장동익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