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후근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개령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주요 관직
개령현감
목차
정의
조선 후기에, 개령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1862년(철종 13) 개령현감(開寧縣監)으로 재직 중 삼정문란과 서리들의 발호로 민생이 도탄에 빠진 지 이미 오래 되어 진주민란이 일어난 지 40여 일 지난 뒤 익산에 이어 개령에도 민란이 일어났다. 읍민 김규진(金奎鎭)이 격문을 돌리고 민심을 흉흉하게 하자 김후근을 체포, 구금하였다.

이에 안인택(安仁宅)·이복대(李卜大) 등이 주동이 되어 읍민 수천 명이 난을 일으키자 이방 문기표(文基杓) 등은 표리부동하게 난에 화응하였고, 정지평(鄭之平) 등은 동헌에 불을 질러 문서를 불태우고 그곳의 부호 박경주(朴慶柱), 전 이방(吏房) 우학능(禹學能), 전 수교(首校) 우해룡(禹海龍) 등 5명을 박살시키는 한편, 읍내외의 집 50여 채에 방화하였다.

난이 진압된 뒤, 현감된 책임으로 영광군 임자도(荏子島)에 유배되었다가 이듬해에 풀려났다.

참고문헌

『철종실록(哲宗實錄)』
집필자
박정자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