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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속학(民俗學)

    민속·인류개념용어

     민간에 전승된 풍속·제도·습관·신앙 등을 조사하고 기록하여 민족의 전통적 문화를 구명하려는 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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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속·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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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민간에 전승된 풍속·제도·습관·신앙 등을 조사하고 기록하여 민족의 전통적 문화를 구명하려는 학문.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민속학은 전승문화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되었으나 학문적으로 전개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멀리는 14, 1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본격적인 민속학적 연구는 19세기에 들어와서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1826년 학술원의 회원인 와크네(Walcknaer,B.C.)가 민담과 우화의 기원에 관한 책을 출판하였으며, 독일에서는 그림(Jacob and Wilhelm Grimm) 형제의 민담집이 나왔다. 한편, 영국에서는 톰스(Thoms,W.J.)가 『아세늄』이라는 주간지에서 1846년 민속학(folklore)이라는 용어를 처음 만들어 사용하였다. 그 뒤 이것은 민담·민요뿐만 아니라 넓은 의미의 민속학을 의미하게 되었다.
    서구의 여러 나라에서는 영국이나 미국과 병행하여 민속학의 발전이 진행되었는데, 대개 영국에서 민속학이 시작되었으면서 영국보다는 다른 나라에서 더 발전된 인상을 받게 되었다.
    예를 들어, 영국의 민속학이 주로 저급의 문화민족이나 일반서민 속에서 예로부터 전래되는 전통적인 설화·가요·속담·신앙·습관 등을 연구의 대상으로 하였다면, 독일계의 민속학은 민족의 단합이나 통일을 중시하여 구비전승만이 아닌 생활·제도·풍속·신앙 등 민족정신을 추출해낼 수 있는 전반적인 분야를 대상으로 하였다. 용어에 있어서도 영국이 folklore라면, 독일계에서는 Volkskunde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동양권에서 민속학을 최초로 수입한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에서는 야나기타(柳田國男)에 의하여 1913년경 민속학을 향토연구라는 개념으로 사용하다가 그 뒤 1928년 민간예술이라는 단체에서 『민간예술 民間藝術』이라는 잡지를 발행하고 다음해 민속학회가 창립된 뒤 정식으로 학문적 출발을 하게 되었다.
    우리 나라의 경우 민속학의 성격은 영국의 folklore보다는 독일의 Volkskunde에 가깝다. 그러나 이미 독립과학으로 정립되어가는 단계에 와 있는 우리 나라의 민속학이 반드시 독일의 민속학과 같을 수 없으며, 마찬가지로 일본의 민속학이 용어의 표기에서는 같을지라도 그 개념에서는 같다고 볼 수 없다.
    또한, 현대의 민속학의 개념은 folklore라는 개념 속에 그대로 수용시키기에는 그 범위가 매우 광범위하여졌음을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민속학은 민족학의 단계에까지 그 개념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하겠다.
    우리 나라에서 단편적이나마 민속에 대하여 관심이 싹튼 것은 조선 중엽 이후 실학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실학의 학적(學的) 성격이 어느 한 가지 학문의 분야로 귀결지을 수 없는 총체적인 학문이기에 관점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실학이 지니는 민족주체성·현실성·박학다식성 등은 서구의 민속학의 성립여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민속학이 자생할 수 있는 소지로서는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하겠다. 민속에 대한 이러한 관심이 체계있는 연구로써 이루어진 시기는 대체로 갑오경장을 전후한 시기로 보고 있다.
    또한, 민속학이 학문적으로 정립을 본 것은 1927년부터로 보고 있다. 그 이유는 그 해 최남선(崔南善)의 「살만교차기 薩滿敎箚記」와 이능화(李能和)의 「조선무속고 朝鮮巫俗考」가 『계명 啓明』지에 발표되었고, 손진태(孫晉泰)의 「조선의 설화」와 「온돌문화 전파고」가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원래 민속학의 대상범위는 국가와 학자마다 다르다. 민속학이 민간전승을 그 대상으로 한다고 볼 때 그것은 한없이 세분될 수 있으며, 방법론에 따라서는 더욱 확대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 민속학의 전개과정을 시기상으로 나누어 구분하는 작업은 관점에 따라 각기 다르게 구분될 수 있다. 그러나 편의상 구분하면 8·15광복을 기점으로 대략 4기 정도로 나누어볼 수 있다. 광복 전까지를 민속학의 형성기 내지 정립기로 보고, 광복 이후 1960년대 까지를 발전기, 1970년대 까지를 혁신기 내지 전환기, 그리고 1980년대 이후를 난숙기로 볼 수 있다.
    (1) 민속학의 형성기(1920년대∼광복 전)
    이 시기는 우리 나라 민속학의 초창기로 대부분의 연구가 자료의 소개 또는 문헌학적으로만 단편적으로 진행되는 한계를 보였다.
    또한, 일제하였기에 학계의 공통적인 경향이 민족정신의 고취와 결부되어 민속학 역시, 신앙·종교의 사상적인 면에 관심을 두었으며, 세시풍속·언어문자의 학예 부문에 치중하는 한계를 보였다. 따라서 이 시기의 특징의 하나는 종교학자·사학자·어문학자가 민속학의 일익을 담당하는 경향을 들 수 있다.
    대표적인 선구자로는 최남선과 이능화를 들 수 있다. 이 두 사람은 사학자였기에 엄밀한 의미에서 민속학을 하였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많은 관심을 보였으며 업적을 남겼다. 특히, 이능화는 『불교통사 佛敎通史』·『기독교급외교사 基督敎及外交史』·『조선도교사 朝鮮道敎史』 등 종교에 관한 저술과 『조선여속고 朝鮮女俗考』 (1927)·『조선해어화사 朝鮮解語花史』(1927) 등을 발표함으로써 학문적 깊이나 방법에 있어서 한국민속학의 시조로 꼽힐 수 있다.
    초창기에 우리 민속학의 형성에 기여한 학자로는 최남선과 이능화 이외도 권상로(權相老)·안확(安廓)·이중화(李重華)·이규봉(李圭鳳)·차상찬(車相瓚)·문일평(文一平)·함화진(咸和鎭)·정노식(鄭魯湜)·김윤경(金允經)·이은상(李殷相)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대개 신앙·연희·무예·복식·풍속·음악·세시 등에 관한 논저를 남겼다.
    이들보다 다음 시기에 각자의 전공 분야에서 민속학과 관련된 문제를 연구한 학자는 다음과 같다. 이병도(李丙燾, 사학-신앙), 김영수(金映遂, 불교학-신앙), 백남운(白南雲, 사회경제사-신화), 김태준(金台俊, 문학-신화), 유홍렬(柳洪烈, 사학-신앙), 유창선(劉昌宣, 사학-속담), 김두헌(金斗憲, 윤리학-가족제도), 이상백(李相佰, 사회학-가족제도), 양주동(梁柱東, 문학-민속·지명), 고유섭(高裕燮, 미술사-민예·설화) 등이다.
    그러나 우리의 민속학이 제대로 된 연구업적을 가지게 된 것은 손진태와 송석하(宋錫夏)에 의해서이다. 이들은 1920년대 말부터 20여 년간 민속학의 여러 분야를 연구함으로써 민속학 정립에 크게 공헌하였다.
    특히, 손진태는 1927년 「조선의 설화」와 「온돌문화전파고 溫突文化傳播考」를 발표하였고, 일문(日文)으로 쓰인 『조선민담집 朝鮮民譚集』(1930), 『조선신가유편 朝鮮神歌遺篇』 등의 저술과 광복 후 『한국민족사개론』(1948) 등을 남겼다.
    그리고 송석하는 1927년 『민족예술』에 「조선(朝鮮)의 인형예거(人形藝居)」를 발표한 뒤 주로 민속극 방면에 연구의 중점을 두었으며, 광복 후 정부수립 초에는 수장자료를 토대로 민족박물관을 개설하기도 한다.
    이 시기의 민속학은 주로 일부 학자에 의하여 개별적으로 이루어졌으나, 1924년 조선총독부가 『조선민속자료 朝鮮民俗資料』를 출간한 이래 민속 분야에서는 관의 주도하에 조사사업이 이루어졌다.
    이 편찬사업에는 주로 일본인 학자들이 참여하였는데, 이마무라(今村鞆)·다카하시(高橋亨)·무라야마(村山智順)·요시우미(善生永助) 등이 한국민속연구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 밖에도 아키바(秋葉隆)와 아카마쓰(赤松智城)는 만몽지방(滿蒙地方)을 답사하여 많은 민속자료를 수집하였으며, 손진태·송석하·정인섭(鄭寅燮) 등과 조선민속학회를 창립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의 특이한 업적의 하나로는 민요의 채록을 들 수 있으며, 최영한(崔榮翰)·엄필진(嚴弼鎭)·김사엽(金思燁)·최상수(崔常壽)·고정옥(高晶玉) 등이 이 방면에서 성과를 거두었다. 이 밖에도 민영규(閔泳珪)·홍이섭(洪以燮)·전몽수(田蒙秀)·지헌영(池憲英)·조동탁(趙東卓)·김용국(金龍國)·석주명(石宙明) 등이 민속학에 관계된 논고를 발표하였다.
    이 시기의 민속학연구의 특징은 일제하에서 다른 학문 분야가 그렇듯이, 논문발표기관이 거의 없었기에 신문이나 잡지의 일부 지면을 통하여 글이 발표되었으며, 자료의 수집이나 조사가 거의 개인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대부분의 논문이 일문으로 쓰였고, 일본 학술지에 게재된 것은 당시의 불가피한 사정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 민속학의 발전기(광복 이후∼1960년대)
    8·15 광복은 민속학에 있어서 새로운 출발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민족의 독립과 함께 문화적 독립에 대한 자각은 국학의 융성과 함께 민속학 역시 시대적으로 주목을 받기에 이른다. 또한, 이러한 것이 동기가 되어 우리 나라 민속학은 관련 학회의 성립과 연구발표회, 그리고 대학에서의 민속학 강좌의 개설 등으로 새롭게 발전하게 되었다.
    학회의 성립은 먼저 1946년에 전설학회가 생겨났고, 이것이 1954년 8월 한국민속학회로 개칭되어 발족하였다. 이 학회는 기관지로 『민속학보』를 발간하였는데, 1956년 제1집, 1957년 제2집을 발간하고 중단되었다. 그리고 연구발표회를 여러 번 가졌다.
    한편, 국어국문학회에서는 민속학연구와 고전연구의 필요성, 국어국문학연구의 한 방법으로 민속학에 관심을 가지고 1957년 학회 내 민속분과위원회를 두었다. 이런 까닭에 학회기관지인 『국어국문학』에는 민속학과 관계되는 다수의 논문이 게재되었고, 월례연구발표회에서는 많은 연구성과가 발표되었다.
    1958년 11월 임석재(任晳宰)·김동욱(金東旭)·이두현(李杜鉉)·장주근(張籌根)·김정학(金廷鶴)·강윤호(康允浩)·김기수·임동권(任東權) 등이 발기하여 한국문화인류학회가 결성되었다. 이 학회는 이미 서구에서는 민속학이 인류학에 접근하는 경향이 있고, 한국의 민속학도 어느 시기에 가서는 비교학의 단계에 들어가야 한다고 보고 그 영역을 보다 확대하였다.
    즉, 민속학에서 인류학으로 방향을 전이하고, 매월 실시되는 월례발표회에서 민속학과 인류학의 모든 문제를 광범위하게 다루었다. 학회의 발족과 함께 민속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대학에서는 민속학에 대한 강좌가 개설되었다.
    1946년 국학대학에 민속학강좌가 개설됨을 시작으로 숙명여자대학교와 경희대학교에도 민속학이 개강되었고, 서울대학교에서는 1963년부터 고고인류학과에서 민속학강좌를 개설하였다. 이처럼 민속학이 대학에서 강의되기 시작한 것은 민속학이 기초학적인 의미와 보조 학문으로서의 위치에서 점차 독립된 학문으로서의 위치를 구축하여 가는 과정이라 하겠다.
    이 시기에 민속학의 각 분야에서 거둔 성과는 1960년대 초반까지의 전반기와 1960년대 중반 이후의 후반기로 나누어볼 수 있다. 먼저 전반기에 민속학 각 분야에서 거둔 성과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설화 분야에서는 손진태가 민간전승의 설화와 문헌을 대비하여 고증한 『조선민족설화의 연구』(1947), 한국의 신화와 민담 및 무가를 외국신화와 비교한 장주근의 『한국의 설화』(1961), 자료집인 최상수의 『한국의 전설』(1957) 등을 들 수 있다.
    한편, 설화의 이론적 연구로는 장덕순(張德順)의 「삼국유사 소재의 설화분류」(1958), 김지용(金智勇)의 「단군신화의 민속학적 고찰」 등이 있다.
    속담 분야에서는 방종현(方鍾鉉)과 김사엽 공저로 『속담대사전』(1949)이 출간되었으며, 이어서 김사엽의 「속담론」(1953), 이기문(李基文)의 『속담사전』(1962)이 나왔다. 은어 분야에서는 이숭녕(李崇寧)의 「은어고」(1957), 김민수(金敏洙)의 「은어시고」(1953), 서정범(徐廷範)의 「은어문자고」(1958) 등이 있다.
    민요 분야에서는 김소운(金素雲)의 『조선구전민요집』이 1950년에 재판되었고, 방종현·김사엽·최상수 공저인 『조선민요집성』(1948)이 자료집으로 나왔으며, 이 밖에 고정옥의 『조선민요연구』(1961)와 임동권의 『한국민요집』(1961)이 간행되었다.
    민속극 분야에서는 최상수의 『한국인형극의 연구』(1961)와 양재연(梁在淵)의 「산대도감희에 취(就)하여」(1955), 이두현의 「산대도감극 성립에 대하여」(1957), 장한기(張漢基)의 「가면극의 동서비교」 등이 있다.
    1960년대 후반기에는 무속연구에 관심을 기울인 연구들이 많이 나왔다. 장주근·현용준(玄容駿)·진성기(秦聖麒)는 주로 제주도의 무가를, 김태곤(金泰坤)은 전국의 무가를, 최길성(崔吉城)은 경기도·경상도 무가를 연구하여 업적을 남겼다.
    이 중에서 김태곤은 「한국신당연구」(1965), 「무속상으로 본 단군신화」(1968), 「한국무속의 내세관연구」(1969) 등을 발표하였으며, 단행본으로 발간된 『황천무가의 연구』(1966)는 이 방면 연구의 길잡이 구실을 하였다.
    한편, 최길성은 「한국무속의 연구」(1966), 「소놀이굿과 배송굿」(1967), 「한국원시종교의 일고」(1967), 「무계전승고」(1969) 등 한국무속의 계통적 해명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 밖에도 단편적으로 무가에 관심을 보였던 학자로는 임석재·윤성범·이보형(李輔亨)·박계홍(朴桂弘)·서대석(徐大錫) 등을 꼽을 수 있다.
    설화 분야에서는 김동욱이 판소리계 설화소설의 근원설화에 대하여, 문헌설화를 바탕으로 추적하며, 황패강(黃浿江)·장주근·소재영(蘇在英)·박시인(朴時仁)·최내옥(崔來沃)·여영택 등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그 밖의 분야에서는 다음과 같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민속극연구는 이두현에 의하여 더욱 심화되며, 속담에서는 김선풍(金善豊), 은어에서는 장태진(張泰鎭)·서정범, 금기에서는 김성배(金聖培)·문효근(文孝根), 민간신앙에서는 현용준·김열규(金烈圭)·김태곤·이두현, 신흥종교에서는 이강오(李康五)·장병길, 전승놀이에서는 지춘상(池春相)·이철희(李喆熙)·나현성(羅絢成) 등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
    (3) 민속학의 혁신기(1970년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민속학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한다. 학계에서는 구세대와 새세대가 교체되면서 새로운 학풍이 조성되고, 새로운 방법론을 시도한 연구업적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먼저 학회의 활동을 살펴보면, 1969년 임동권·김선풍·김태곤·최길성·홍윤식의 발기로 창립된 한국민속학회가 1970년도에 학회지 『한국민속학』을 발간하면서 의욕적인 출발을 시작하였다. 한편, 문화인류학회는 1970년도에 들어와 회지 3집이 나온 이래 계속 간행하고 있으며, 문화공보부와의 제휴로 『전국민속종합보고서』를 연차적으로 펴내고 있다.
    이 시기에는 연구소가 창설되면서 많은 업적을 쌓게 되는데, 1971년 원광대학교에는 최초로 민속학 전문의 민속학연구소가 개설되었다. 이 밖에도 심우성(沈雨晟) 중심의 한국민속극연구소와 김세중 중심의 동아민속예술원이 창설되고, 관동대학교에는 동북아민속학연구소가 창설되었다. 이 중에서 원광대학교 민속학연구소는 국제학술회의와 민속학연구발표회를 개최하는 등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1978년 안동대학에 우리 나라 유일의 민속학과가 개설되고, 이듬해 한국민속학의 개념과 과제를 놓고 심포지움을 가졌다. 이것은 이제는 민속학이 학문으로서 성립되었다는 징조로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이루어진 성과의 하나로는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가 펴낸 『한국민속대관』 전6권을 들 수 있다. 총면수가 4,716면인 이 책은 B5배판으로 내용이 21장 73항목으로 되어 있다. 약 2, 3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1980년 첫 권이 발간되고 1982년 전6권이 완간되었다.
    이 시기는 많은 연구자가 계속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으므로 그 업적의 양만 해도 상당한 숫자이기에 상세한 서술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단행본을 중심으로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구비전승 분야에서는 장덕순·임동권의 저서가 주목되는 업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장덕순의 『한국설화문학연구』(1970)는 설화에 관한 한 손진태의 『조선민족설화의 연구』 이래 가장 방대한 업적이다.
    한편, 임동권의 『한국민요연구』(1974)는 8·15광복 이후 민요연구의 집대성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으며, 조동일(趙東一)의 『서사민요연구』(1970)에서는 ‘서사민요’라는 개념의 설정과 이에 대한 현지조사의 치밀한 분석을 시도하였으며, 이 밖에 황패강의 『한국서사문학의 연구』 (1972) 등은 1960년대 민속학에 관심을 가진 학자들의 중요 저서이다.
    풍속·신앙·기타 민속극 등의 분야에서는 다음과 같은 업적을 들 수 있다. 김선풍은 『강릉지방시가의 민속학적 연구』(1977)에서 강릉지방의 신화·무가·민요·규방가사 등을 분석, 연구하였고, 박계홍은 문헌을 통한 무속연구로 『한국민속연구』(1973)를, 심우성은 남사당패놀이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 연구서인 『남사당패연구』(1974)를 내놓았다. 이밖에 김영진(金榮振)은 『충청도무가』(1976)를, 최정여(崔正如)·서대석은 『동해안무가』(1974)를, 최길성은 『한국무속의 연구』(1978)를, 유동식(柳東植)은 한국의 무교를 통시적으로 고찰한 『한국무교의 역사와 구조』(1978)를 내놓았다.
    조동일의 『인물전설의 의미와 기능』(1979)은 1970년대 설화 연구를 마무리짓는 이론서라 할 수 있다. 또한, 조동일·김흥규(金興圭)편인 『판소리의 이해』 역시 이 시기의 대표적인 저서로 지적될 수 있다.
    (4) 민속학의 난숙기(1980년대 이후∼현재)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민속학에 대한 새로운 욕구가 확산되면서 도(道) 차원의 민속학회인 강원민속학회와 안동민속학회, 남도민속학회가 생겨났다.
    1983년 김선풍은 강원민속학회를 창립하여 학회지 『강원민속학』을 펴냈으며, 1987년 성병희(成炳禧)는 안동민속학회를 창립하여 학회지 『민속학연구』를 펴냈고, 1984년 지춘상은 남도민속학회를 창립하여 『남도민속연구』를 펴낸 바 있다. 한편 민속학의 세계화에 발맞추어 1985년 김동욱은 비교민속학회를 설립하여 학회지 『비교민속학』를 펴냈다.
    1990년에는 젊은 소장학자를 중심으로 한 한국역사민속학회가 창립되었고, 1993년 김태곤은 최상수를 주축으로 했던 한국민속학회를 다시 부활시킨다면서 한국민속학회를 설립하여 『한국민속학보』를 속간하였다.
    이 시기 각 대학 부설 민속학연구소의 업적은 경희대학교 민속학연구소에서 김태곤 등이 펴낸 『한국민속학원론』(1983)과, 중앙대학교 한국민속학연구소에서 김선풍 등이 펴낸 『열두띠이야기』를 손꼽을 수 있겠다.
    이 시기는 학문의 전문화와 분업화 작업이 돋보인 시기로도 볼 수 있는데 한국민요학회·한국구비문학회의 창립이 그를 입증하고 있다. 한국민요학회는 임동권·최철·김선풍·강등학 등이 주축이 되어 설립되었는데, 이보형(李輔亨) 등 민속음악 전공자들이 입회하여 민속학과 음악학 두 학문 분야의 취약점을 상보(相補)해 나가고 있다.
    강한영(姜漢永) 등이 설립한 판소리학회에서는 『판소리연구』를 펴내고 있는데, 한국민요학회와 마찬가지로 국문학·민속학·음악학 전공학자들이 대거 참가하여 공동작업을 해 나가고 있다. 1993년 조동일·서대석·조희웅(曺喜雄) 등이 설립한 한국구비문학회에서는 『한국구비문학학』을 펴내고 있는데 주로 국문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있다.
    위의 학회의 움직임으로 감안할 때, 이제 민속학은 단순히 앉아서 이론을 전개하는 학문이 아니라 문헌민속을 참고삼아 현장이론을 체계화시키고, 그 이론을 전문학회에서 평가를 받아야 하는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증언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민속학도 국제화시대에 발맞추어 범 아세아 단위의 아세아국제민속학회가 창립되었다. 1997년 중국의 도립번(陶立璠), 한국의 김선풍, 일본의 사모껜지(佐野賢治)의 발의로 그 결실을 맺게 된 이 학회는 제1회 아세아국제민속학학술대회를 1997년 중국에서, 제2회·제3회 아세아국제민속학학술대회를 1998·1999년 한국에서 개최한 바 있다.
    이 시기에 이루어진 업적은 양적으로 방대하여 단행본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세시풍속 분야의 업적으로는 장주근의 『한국의 세시풍속』(1984), 김택규(金宅圭)의 『한국농경세시의 연구』(1985), 임동권의 『한국세시풍속연구』(1985), 장정룡(張正龍)의 『한·중 세시풍속 및 가요연구』(1988)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이 중 김택규는 세시풍속을 일반적인 상식을 뛰어넘은 분석으로, 원론적 접근을 과학적으로 시도하고 있으며, 장정룡은 한국의 세시풍속과 중국의 세시풍속을 치밀하게 대비, 연구하고 있다.
    구비전승 분야에서는 최내옥·최인학·조희웅·임재해(林在海)·장장식(張長植)·조동일 등의 업적이 돋보이는데, 최내옥의 『한국구비전설의 연구』(1981)와 임재해의 『설화작품의 현장론적 분석』(1991), 최인학의 『한국민담의 유형 연구』(1994) 등이 돋보인다.
    최내옥은 전국의 전설을 질문지법까지 동원해가며 조사하여 그 분포상황과 변이를 연구하고 있으며, 최인학은 수십 년간 설화의 유형분류안을 천착해온 그 결정판을 학계에 선보이고 있고, 임재해는 문헌자료의 현장론적 이해와 전승현장의 상황과 전승의 관계는 물론 연행현장의 상황까지 연구하고 있다.
    이 시기 민요연구자로는 최철·강등학·류종목·좌혜경·박민일·김무헌·나승만·손종흠·고혜경·이창식·서영숙 등을 들 수 있다. 강등학은 『정선 아라리의 연구』(1988)에서 전승가사의 구연양상을 구심적 구연과 원심적 구연으로 나누어 분석하고 있으며, 정선아라리의 장르 수행문법과 작시공식을 찾고 있다.
    류종목은 『한국민간의식요연구』(1990)에서 의식요의 배경을 이루는 구조와 기능면을 중시해 분석하고 있으며, 『한국민간의 현상과 본질』(1990)에서는 한국 민요의 구연방식과 기능 및 민요 이론의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좌혜경은 『민요시학 연구』(1996)에서 새로운 연구방법과 의미구성의 원리, 유형구조, 각편의 형식, 전승변이론을 현장론적 방법론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 시기의 민속극 연구자료는 정상박·박진태(朴鎭泰)·전경욱(田耕旭)을 꼽을 수 있다. 정상박은 『오광대와 들놀음 연구』에서 종래의 민속지적 연구를 극복하여 오광대와 들놀음의 실상과 본질을 명확히 고증하고 있다. 박진태는 『동아시아 샤머니즘 연극과 탈』(1999)에서 연극의 기원을 샤머니즘에서 찾은 기왕의 작업을 확대 심화시키고 있으며, 전경욱은 『한국가면극』(1998)에서 가면극의 지역 분포와 특징, 가면극과 무속, 가면극과 놀이꾼, 가면극의 극적 양식 등을 소상히 논술하고 있다.
    속담 연구로는 제주도 속담의 형태·소재·주재·성향 등을 집중적으로 분석한 고재환의 『제주도속담연구』(1993)가 보일 뿐 여전히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시기 무가연구자로는 최길성·현용준·서대석·김선풍·조흥윤(趙興胤)·황루시(黃縷詩)·김헌선(金憲宣)·박경신(朴敬伸)·김진영·홍태한·이균옥·이경엽 등이 있다. 서대석은 『한국무가의 연구』(1980)에서 구전현장에서 채록한 제석본풀이·바리공주·거리굿·무경 등을 신화적 성격과 문예적 특성 및 연극적 특성 등을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다. 김헌선의 『경기도 도당굿 무가의 현지 연구』(1995) 또한 빼놓을 수 없는데 특히 도당굿판의 연행방식과 작시방식, 변형양상 등을 통해 화랭이(남자 무당) 무가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최길성의 『한국민간신앙의 연구』(1989)는 한국 무속의 상징성과 방법론을 이해하려는 연구자들의 지침서가 되고 있다.
    이 밖에 각 지역별 무가 연구업적으로 서대석·박경신의 『안성무가』와 박경신의 『동해안 별신굿 무가』(1993), 그리고 김선풍의 『남해안별신굿』(1997), 김진영·홍태한의 『바리공주전집』(1997)과 『당금애기전집』(1999), 이균옥의 『동해안별신굿』(1998), 이경엽의 『무가문학연구』(1998) 등을 손꼽을 수 있겠다.
    끝으로 제의와 신앙연구자로는 이광규(李光奎)·이재곤·장철수(張哲秀)·이필영(李弼泳)·김의숙(金義淑)·주강현(朱剛玄) 등을 들 수 있다.
    장철수는 『한국의 관혼상제』(1995)에서 종교의 의례와 예절은 물론 상장례(喪葬禮)의 변천을 통해 관혼상제의 전통과 사회변동을 통시적 접근까지 하고 있다. 김의숙은 『한국민속제의와 음양오행』(1993)에서 한국 민속 제의를 음양오행사상론으로 접근하고 있으며, 그 음양오행이 가지고 있는 민속학적 위상을 밝히고 있다. 주강현은 『굿의 사회사』(1992)에서 마을 공동체로서의 굿과 제의로서의 굿, 회의로서의 굿, 놀이로서의 굿의 기능을 논급하고 있다.
    1997년에는 안동대학교 민속학과에 이어 중앙대학교 문과대학에도 민속학과가 개설되어 중부권 민속학의 산실역을 맡고 있다. 또한 이 시기에 임동권·김선풍·인권환(印權煥)이 이어온 민속학회와 김태곤이 이끌어온 한국민속학회가 한 학회로 합쳐 학회명을 한국민속학회로 하고 한국 민속학의 발전을 위해 더욱 노력하고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한국민속학소사」(조지훈·임동권,『민족문화연구』 1,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1964)

    • 한국민속학사  (인권환, 열화당, 1978)

    • 민속학의 방향  (원광대학교 민속학연구소, 1972)

    • 「민속학이란 무엇인가」(송석하,『學燈』 4∼9,1933∼1934)

    • 「초기민속학의 연구영역 및 대상」(송석하,『學燈』 23,1936)

    • 한국민속학  (김동욱 외, 새문사, 1988)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개정 (1996년)
    김선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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