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3년(태종 13)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향전(鄕傳)에 의하면 756년(경덕왕 15) 처음으로 문산면 문장리 향교골 돌고개 쪽에 암자 형식으로 세워졌다가 1314년(충숙왕 1) 서부면 동조리로 이건하였으며, 1413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고 한다.
1869년을 비롯하여 수차례에 걸쳐 보수하였으며, 1984년에 중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동무(東廡)·서무(西廡)·명륜당·동재(東齋)·서재(西齋)·내삼문(內三門)·외삼문(外三門)·홍살문·수복청(守僕廳) 등이 있고, 홍살문 밖에는 하마비(下馬碑)가 세워져 있다. 건축형태는 앞쪽에 학문을 배우는 공간인 명륜당이 있고 뒤쪽에 제사 공간인 대성전이 있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이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의 위패가, 동무·서무에는 송조2현(宋朝二賢) 및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대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1997년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두어 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소장 전적으로는 ≪공부자성적도(孔夫子聖蹟圖)≫·≪존화록(尊華錄)≫·≪속자치통감강목(續資治通鑑綱目)≫·≪선무원종공신록(宣武原從功臣錄)≫·≪서천군선생안(舒川郡先生案)≫·≪동사회강목(東史會綱目)≫·≪대전속록(大典續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