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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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후기에, 상서좌복야, 추밀원부사, 형부상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신지(愼之)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251년(고종 38)
본관
순창(淳昌)
정의
고려 후기에, 상서좌복야, 추밀원부사, 형부상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순창(淳昌). 자는 신지(愼之). 아들은 충렬왕(忠烈王)대 찬성사(贊成事)를 지낸 설공검(薛公儉)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선계(先系)가 순창의 향리(鄕吏)였으며 20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1216년(고종 3) 함풍현(咸豐縣)의 감무(監務)로 나가 치적이 드러남으로써 최충헌(崔忠獻)의 포상을 받는 등 일찍부터 뛰어난 이재(吏才)를 발휘하였다.

그 뒤 식목도감(式目都監)의 녹사(錄事), 대관승(大官丞)·비서랑(祕書郎), 추밀원(樞密院)의 당후관(堂後官)·감찰어사(監察御史) 등을 거쳐 1227년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郎)으로 용주(龍州)에 외보(外補)되었으며 다시 병부(兵部)·이부(吏部)의 원외랑을 역임하고 1231년에는 내시(內侍)에 입적되었다.

몽고침입기인 1232년 시어사(侍御史)로서 몽고에 사행(使行)하여 과중한 공물(貢物)의 징구에 대한 고려측의 입장을 전하였다. 그러나 그해 고려에 재침략한 몽고의 살리타이[撒禮塔]에게 억류되어 몽고군 지휘부를 따라갔다가, 살리타이가 처인성(處仁城)에서 김윤후(金允侯)와 처인부곡민(處仁部曲民)들에게 사살되자 비로소 풀려났다.

대부소경(大府少卿)·어사잡단(御史雜端)을 거쳐 1234년충주부사(忠州副使), 이어 호부(戶部)·예부(禮部)의 시랑(侍郞), 경상도안찰사(慶尙道按察使)·서북면병마사(西北面兵馬使)·판예빈성사(判禮賓省事)·국자감대사성(國子監大司成)·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등을 지내고 1251년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형부상서(刑部尙書)에 이르렀다.

8형제 가운데 3형제가 과거에 급제하여 어머니 조씨(趙氏)가 국대부인(國大夫人)에 봉해졌다. 성격은 강직하고 과단성이 있었다 한다. 김백일(金百鎰)이 지은 묘지명(墓誌銘)이 전하고 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한국금석문추보』(이난영 편, 아세아문화사, 1968)
「몽고의 이차침구와 처인성승첩」(윤용혁, 『한국사연구』29, 1980)
집필자
윤용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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