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사(念佛師)에 관한 사항은 『삼국유사(三國遺事)』 「피은(避隱)」편 ‘염불사’조에만 기록되어 있다. 이 조목에 의하면 경주 남산 동쪽 기슭의 피리촌(避里村) 피리사(避里寺)에 무명의 승려가 머물면서 항상 아미타불을 염송하였는데 도성의 360방 17만 호까지 그 소리가 들렸다고 하였다. 또한, 염불사가 죽은 후에 소상(塑像)을 만들어 민장사(敏藏寺)에 안치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기록만으로 염불사가 누구인지를 알 수 없으며, 설화적인 내용 자체가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피리촌, 피리사라는 이름에서 왕경 중심지와 거리가 있는 외곽이라는 장소가 강조되어 있다는 점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또한, 360방 17만 호라는 표현은 신라 통일기의 전성기를 가리키며, 왕경을 향해 아미타불 염송을 한 것은 왕경인들이 모두 염불사의 주장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큰 소리로 염송을 한 것으로 추측된다. 대표적인 관음도량인 민장사에 아미타신앙을 강조하는 염불사의 소상이 안치된 것은 아미타신앙과 관음신앙이 결합되는 양상을 반영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