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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조왕(溫祚王)

고대사인물

 삼국시대 백제의 제1대(재위:BCE.   18~CE. 28)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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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 온조왕 37년(우박)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삼국시대 백제의 제1대(재위:BCE.18~CE. 28)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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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온조(溫祚)는 엄밀한 의미에서는 위례성(慰禮城)에 토대를 둔 백제 왕실의 시조이다. 현존 문헌들에는 백제의 시조로 전하는 인물들이 온조, 비류(沸流), 구태(仇台) 등 여러 명이며, 온조는 그 중의 하나이다. 백제 초기에는 북쪽에서 한반도 중서부 일대에 남하한 부여족의 여러 집단들이 연맹체를 결성하고 있었다.
그들 중 연맹체를 주도한 대세력으로는 먼저 미추홀(彌鄒忽)에 웅거한 집단이며, 뒤이어 패권을 잡은 것이 위례성(현재의 서울 風納土城 또는 경기도 廣州 부근으로 추정)의 집단이었다. 미추홀에서 일어난 집단의 시조로 전하는 것이 비류이고, 그 뒤에 권력을 장악한 위례성집단의 시조가 바로 온조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 활동사항
『삼국사기(三國史記)』등에는 온조의 아버지를 동명(東明)이라 하는 한편, 동명을 백제의 시조라고도 하였다. 현존 문헌들에 의하면, 북부여(北扶餘)·고구려(卒本扶餘라고도 함)·백제(南扶餘라고도 함) 등 부여족 사회들은 모두 동명을 시조라 하고, 그를 숭배하는 제전(祭典)을 각기 가지고 있었다. 온조의 아버지가 동명이라 하는 것도 그러한 부여족 일반의 상황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백제의 건국설화가 다양하고 그 건국시조에 대한 이견(異見)이 많은 것은 그만큼 백제를 형성한 지배집단의 계통이 복잡하다는 방증이다. 또한 온조와 비류가 형제라고도 하였다. 이는 두 집단의 연맹관계를 형제의 관계로 강조하기 위해 만든 연맹설화(聯盟說話)의 구성에서 오는 것으로 보인다. 비류가 형으로 기록된 것은 초기 에는 온조계 집단보다 비류계 집단의 세력이 우월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위례의 온조계 세력이 위례지역의 농업생산력을 바탕으로 후기에 와서는 비류계 집단을 포섭하여 연맹의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온조계 집단이 비류계 집단을 아울렀던 시점은 서기전 18년이었다는 견해와 온조왕 치세 어느 시기였다는 견해, 온조왕대가 아니라 한참 후대의 시기였다는 견해가 제기되어 있다.
온조왕은 백제의 성장을 위협하는 낙랑군(樂浪郡)의 사주를 받은 말갈(靺鞨)의 침공을 수 차례 막아냈다. 또한 마한(馬韓) 영역의 일부를 복속시켜서 일련의 정복사업을 마무리했고 낙랑군 침공계획을 세우기까지 했다. 백제는 주변의 낙랑·말갈·마한 등 외부 세력의 압력을 효율적으로 방어하고, 새로 편입된 지역을 원활하게 통제하기 위한 지방통치구획으로 부(部)를 설치했다.
하지만,『삼국사기』등에 온조왕 치세(治世)의 일이라고 한 것들의 상당한 부분은 실제로는 백제의 발전과정에서 점차적으로 이루어진 일들을 소급해놓은 것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이를테면, 온조왕대에 마한지역 전체를 통합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마한 전체를 정복한 것은 근초고왕(近肖古王) 때의 일이다. 또한 백제연맹체의 주도권이 미추홀 왕족으로부터 위례성 왕족에게 넘어간 것이 온조왕대였다는 것도 의문의 여지가 있다. 연맹장의 역할을 넘어서는 강력한 왕권이 확립되는 것도 온조왕대에서 훨씬 후대인 고이왕(古爾王)대에나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다. 이러한 견해에 반하여 최근 풍납토성의 발굴 성과에 힘입어 온조왕 치세의 업적을 부분적으로 인정하려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삼국유사(三國遺事)

  • 『한성백제사(漢城百濟史)』(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2008)

  • 『백제 역사(百濟 歷史)와 문화(文化)』(노중국,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2008)

  • 『백제(百濟)의 왕권(王權)』(문안식,주류성,2008)

  • 한성백제의 역사와 문화  (노중국·정재윤·김영심·김기섭, 서경문화사, 2007)

  • 「백제의 건국 시기와 주체세력」(김기섭,『선사(先史)와 고대(古代)』27,한국고대학회,2007)

  • 「백제(百濟)의 동명신화(東明神話)와 동명묘(東明廟)」(노명호,『역사학연구(歷史學硏究)』Ⅹ,1981)

  • 『한국사(韓國史)-고대편(古代篇)-』(이병도,을유문화사(乙酉文化社),1959)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7년)
노명호
개정 (2009년)
김선주(중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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