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백흥(伯興), 호는 수촌(秀村). 광주(廣州) 출생. 유형원(柳馨遠)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위솔(衛率) 유하(柳昰)이다. 아버지는 유응린(柳應麟)이며, 어머니는 내시교관 박해(朴澥)의 딸이다.
1723년(경종 3)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754년(영조 30)에 처음으로 온릉참봉(溫陵參奉)에 임명되었다. 2년 뒤 선공감봉사(繕工監奉事)를 거쳐 종묘서직장(宗廟署直長)·사옹원주부(司饔院主簿)·경릉령(敬陵令)·사재감첨정(司宰監僉正) 등을 역임하고, 1759년 좌수운판관(左水運判官)에 임명되었다.
2년 뒤에 벼슬에서 물러났으며, 이후 노인직(老人職)으로 오위장(五衛將)·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정헌대부·숭록대부 등을 제수받았고, 판중추부사로서 죽었다.
유형원의 후광을 입어 왕의 총애를 많이 받았다. 평소 행의(行誼)가 독실하였고 경사(經史)와 제자백가서에 해박하였으며, 문장과 글씨에 뛰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