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하원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호군, 형조판서,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백유(伯兪)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47년(영조 23)
사망 연도
미상
본관
진주(晉州)
출생지
고양
주요 관직
호군|형조판서|한성부판윤
정의
조선 후기에, 호군, 형조판서,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백유(伯兪). 고양 출신. 유덕장(柳德章)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일기(柳一基)이다. 아버지는 유위진(柳威鎭)이며, 어머니는 조원(趙愿)의 딸이다. 유영진(柳榮鎭)에게 입양되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74년(영조 50) 유학으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문한관을 거쳐 장령(掌令)에 올랐으나 한때 면직되었다. 1785년(정조 9) 지평 이청(李晴)의 상소에 의하여 복직되었다. 같은해 왕에게 상소를 올려 영남지역에 천주교가 널리 유포되어 천당·지옥의 설로 혹세무민하고 있으니, 이를 금지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뒤에도 당쟁과 시정(時政)의 폐해를 논하다가 한때 파직되었고, 헌납(獻納)으로 이주석(李周奭)의 일을 논하다가 흑산도에 유배되었는데, 좌의정 채제공(蔡濟恭)도 이에 연루되어 면직되었다. 1812년(순조 12)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고, 이어서 부호군·호군·형조판서·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정조실록(正祖實錄)』
『순조실록(純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집필자
장동익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