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선기(善紀). 윤종의(尹宗儀)의 아들로 윤기의(尹夔儀)에게 입양되었다.
1882년(고종 19) 정시에 을과로 급제하였고, 이듬해에는 군국아문주사(軍國衙門主事)가 되었다.
1890년 이조참의를 역임하였으며 영흥군(鈴興君)에 봉하여졌다. 이어 성균관대사성이 되었으며, 1893년 대사헌·대사성, 1896년 나주부관찰사를 지냈다. 그뒤 궁내부특진관으로 칙임관 3등에 서임되었고, 1910년 정2품에 제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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