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성보(誠甫). 아버지는 참봉 이선(李璿)이고, 어머니는 종사랑(從仕郎) 곽연성(郭連城)의 딸이다. 이이(李珥)의 조카이다. 성혼(成渾)에게서 수학하였다.
이이가 죽은 뒤 동인 정여립(鄭汝立) 등이 이이를 무고하자, 1585년(선조 18)에 이이를 옹호하였다. 1587년 이이의 문인인 이귀(李貴)가 포의(布衣)로 있을 때 변무소(辨誣疏)를 올렸으나 중도에 전달되지 않으려는 것을 대신 전달하여, 이이가 시류(時流)에 휩쓸리지 않는 인물임을 천명하기도 하였다.
1591년 전옥서참봉(典獄署參奉)을 내렸으나 받지 않았으며, 임진왜란 때는 이이의 부인 노씨(盧氏)를 모시고 고향으로 피난하였다. 노씨가 적에게 화를 당하자 양덕현(陽德縣)으로 갔다가 1593년에 해주석담(海州石潭)으로 돌아갔다. 그 때 스승인 성혼으로부터 강학을 받고, 1594년 정월에 제릉참봉(齊陵參奉)이 되었다가 난중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