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인성(仁聲)이며, 열성군(悅城郡: 지금의 충청남도 청양군 정산면)의 향리 출신이다. 17세에 상경(上京) 수학하여 성균시에 합격하고, 1139년(인종 17) 국자감에 입학하였다.
1146년(인종 24) 영주(寧州)의 장서기(掌書記)로 관도에 나간 이후 도병마녹사(都兵馬錄事)·병부원외랑(兵部員外郎)·우사간 지제고(右司諫知制誥)·중서사인(中書舍人) 등을 지내고, 1173년(명종 3) 양광도안찰사(楊廣道按察使), 호부시랑(戶部侍郎), 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 국자좨주(國子祭酒), 예부상서(禮部尙書), 한림학사(翰林學士) 등을 역임하였다.
1176년(명종 6) 8월에는 예부상서로서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동지공거(同知貢擧)인 대부경(大府卿) 한문준(韓文俊)과 함께 과거를 주관하기도 하였다. 이후 형부상서로 옮겨 치사하였으며, 1181년(명종 11) 정월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