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충주성의 수장인 방호별감(防護別監)은 앞서 처인성(處仁城)에서 몽골의 장수 살리타이[撒禮塔]를 사살하여 큰 공을 세운 낭장(郎將) 김윤후(金允侯)였다. 몽골 군대가 70여 일 동안 충주성을 포위하고 공격하였으나, 충주의 관민들은 힘을 합쳐 굳게 지켜 적을 고전 속에 빠뜨렸다.
그러나 포위 당한 날이 모두 70여 일이나 되어 군량이 거의 고갈되어가자 사기가 떨어지므로, 김윤후는 사졸들을 독려하여 이르기를 “이 싸움에서 승리만 하면 귀천(貴賤)을 가리지 않고 모두 관작(官爵)을 내리겠다.”라고 하며, 관노(官奴)의 부적(簿籍)을 불살라 믿음을 보이고 또 노획한 소와 말을 나누어 주었다. 이에 사람들이 모두 죽기를 맹세하여 싸웠다. 결국 그해 12월에 몽골군은 충주성을 포위한 지 70여 일 만에 그대로 물러갔으며, 더는 남쪽으로 내려가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