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정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후기에, 야별초지유, 별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최씨정권을 붕괴시킨 무오정변에 참여한 무신 · 공신.
이칭
이칭
백원정(白元貞)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수원(水原)
출생지
미상
주요 관직
야별초지유|별장|장군
관련 사건
무오정변(1258년)
정의
고려 후기에, 야별초지유, 별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최씨정권을 붕괴시킨 무오정변에 참여한 무신 · 공신.
개설

본관은 수원(水原)이며 개경 출신으로 추정된다. 일명 백원정(白元貞)이라고도 한다. 할아버지는 선종대 활동한 백경신(白景臣), 아버지는 의종대 이후 활약한 백진식(白眞植)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최씨무인정권(崔氏武人政權) 시대 군인으로 입신(立身)하여 1258년(고종 45) 초반에 야별초지유(夜別抄指諭)로서 별장(別將)에 이르렀다. 1258년(고종 45) 3월 26일(丙子)에 별장 김준(金俊)과 대사성(大司成) 유경(柳璥)이 중심이 되어 최씨무인정권을 붕괴시킨 무오정변(戊午政變)에 참여하였다. 무오정변은 최의정권(崔竩政權)의 정치·경제적 실정에 불만을 품은 여러 정치세력이 결집되어 제4대 집권자인 최의를 죽이고 왕정복고(王政復古)를 이룩했던 역사적 사건을 말한다.

이때 백영정이 맡은 역할은 김준의 명을 받아 대정(隊正) 서정(徐梃)·이제(李梯)·임연(林衍) 등과 함께 최의의 저택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무오정변에서 공을 세운 결과, 같은 해 7월 차송우(車松祐) 등과 더불어 원종공신(原從功臣) 성격의 위사보좌공신(衛社輔佐功臣, 同力輔佐功臣)에 책봉되었다.

이에 앞서 같은 해 6월에 최우(崔瑀)의 외손(外孫)인 장군 권수균(權守鈞)의 사위였던 소경(少卿) 문황(文璜)이 최의의 원한을 복수하기 위해 우부승선(右副承宣) 김준을 죽이려고 하였다. 이때 백영정은 우변지유(右邊持諭, 右別抄의 指諭)로 재직하면서 이러한 문황의 모의를 김준에게 급히 전하여 김준이 문황 일파를 제거하는 데 일조하였다.

1260년(원종 1) 3월 19일(丙戌) 장군으로서 태손(太孫, 후일의 忠烈王)을 따라 몽골의 사신 수리다이[束里大]를 접대하였다. 이후의 행적은 알 수 없다.

1258년 7월 위사보좌공신 19인(혹은 20인)에 포함되었고, 1260년 6월 위사보좌공신 15인에 다시 책봉되어 포상받았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문화유씨가정보(文化柳氏嘉靖譜)』
『몽고침입에 대한 최씨정권의 외교적 대응』(강재광, 경인문화사, 2011)
『고려의 무인정권』(김당택, 국학자료원, 1999)
『고려무인정권연구』(홍승기 편, 서강대출판부, 1995)
「최씨가 가노출신 정치인의 역할과 무오정변의 성격」(강재광, 『한국사연구』127, 2004)
「김준세력의 형성과 그 향배: 최씨무인정권의 붕괴와 관련하여」(정수아, 『동아연구』6, 1985)
「1262년 상서도관첩의 분석」(허흥식, 『한국학보』27·29, 1982)
「金俊の政變について」(野澤佳美, 『史正』12, 1982)
집필자
장동익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