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자와의 직접 거래를 통해 유통 과정에서 중간 상인이 취하는 이익을 제거함으로써 조합원들의 경제생활을 개선하기 위하여 조직되었다.
1929년 8월 18일 경성여자소비조합 창립준비위원회가 개최되었고, 1930년 3월 9일 수표정(水標町: 지금의 서울특별시 중구) 조선교육협회에서 약 5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창립대회가 개최되었다. 조합원 자격은 경성이나 경성 부근에 거주하는 가정 부인, 직업 부인 또는 여학생으로 가입비는 1구좌당 5원(圓)으로 하였다.
창립대회에서 발표한 창립 취지에 따르면 조합원은 가정에서 필요로 하는 일용품을 원가에 가까운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고 하였다. 임원으로는 이사장 김수준(金繡準), 사무이사 황애덕(黃愛德), 상무이사 김정원(金貞媛)과 김상순(金相舜)이 선임되었다. 경성여자소비조합은 1932년 이후 침체 상태에 빠지고 이후의 활동은 확인되지 않는다.
1930년 4월 경성 낙원동(樂園洞: 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대리점을 개업하였고, 특약을 맺은 상점에서는 할인된 가격으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1930년 9월부터는 경성부 6개 학교와 부인병원 등에 식료품을 공급하기로 하고, 조합원에게는 배달을 실시하는 등 그 활동 범위를 넓혀갔다.
『삼천리(三千里)』에서 소개한 내용을 보면, 경성여자소비조합의 모토는 "생산자의 손에서 물품을 직접 갖다가 소비하자, 중간 착취를 폐지하는 데서 우리 생활을 우선 개선하자"는 것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