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1949년, 국문학자 조윤제가 민족 사관에 입각하여 힌국 문학사를 서술한 개론서.
저자
조윤제는 이어 같은 학교의 촉탁(囑託) · 조수를 거쳐 1932년 3월 경성사범학교 교유(敎諭)로 임명되었으며, 그해 4월에 그의 첫 저서가 된 『조선시가사강(朝鮮詩歌史綱)』을 쓰기 시작하였다. 1939년 3월 경성사범학교 교유를 사임하고, 경신학교 · 양정중학교 · 동성상업학교 · 천주교신학교 등의 강사를 역임하였다. 당시 보성전문학교 도서관장이던 손진태(孫晉泰), 대학 후배인 이인영(李仁榮)과 모여 학문 연구 방법론을 논의하였다.
조윤제는 1945년 8월 조국 광복과 함께 경성대학 법문학부 재건의 책임을 맡았으며, 이어 동 대학의 법문학부장, 개편된 서울대학교의 대학원 부원장, 문리과대학 교수 및 학장을 역임하였다. 이어 성균관대학교 교수와 대학원장 및 부총장을 역임한 뒤 청구대학 · 영남대학교 교수를 역임하다가 71세 때인 1974년 2월 영남대학교에서 정년 퇴임하였다. 1976년 영면하였다.
구성과 내용
이 분류는 1963년 동국문화사에서 증보개정판으로 발행한 『한국문학사』(국판 636면)에서 고려 일대가 ‘위축시대(고려조 성종까지)’와 ‘잠동시대(潛動時代, 의종∼고려 말)’로, ‘복귀시대’ 대신 ‘유신시대(維新時代, 3·1운동∼광복)-재건시대(再建時代, 광복 이후)’로 세분되거나 수정되었다.
의의 및 평가
조윤제의 『국문학사』는 일제 식민지 치하로부터 벗어나 해방을 맞이한 나라에서 국문학 연구의 개척자 역할을 하였다. 국문학 연구에 대한 구체적 방법과 명확한 목표를 설정함으로써 향후 국문학 연구가 지속되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국문학사』의 문학사관은 민족 사관에 기반을 두었다. 조윤제의 민족 사관은 국문학 연구의 초창기 이래 당시까지 국문학 연구를 주도해온 실증주의적(實證主義的) 방법론과의 대결 및 그 극복이라는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는 실증적 방법론에 합리성을 보완하여 철저한 실증주의를 이룩하려 했던 한편 개별성을 추구하는 실증주의가 소홀히 하고 있는 전체성을 중시함으로써 민족 중심의 총체적 시야를 확보한 민족 사관을 창출하였다. 이는 실증주의적 학문 태도를 비판적 측면에서 계승한 것이다.
『국문학사』는 국문학 연구를 중심에 놓았음에도 세계와의 교섭에 대하여 배타적이지 않았다. 자칫 국수주의적(國粹主義的) 시각에 함몰될 수 있는 학문 자세를 비판하며, 세계성과 보편성을 추구하였다.
참고문헌
원전
- 조윤제, 『국문학사』 (동국문화사, 1949)
- 조윤제, 『한국문학사』 (동국문화사, 1963)
단행본
- 김동욱, 『국문학개설』 (민중서관, 1961)
- 조동일, 「조윤제의 민족사관과 문학의 유기체적 전체성」 (『도남조윤제박사고희기념논총』, 형설출판사, 1976)
논문
- 김명호, 「도남과 신민족주의 사관」 (『도남학보』 2, 도남학회, 1979)
- 김효중, 「조윤제의 국문학연구방법에 관한 고찰」 (『도남학보』 4, 도남학회, 1981)
- 박영호, 「도남 조윤제와 『한국문학사』」 (『한국종교사연구』 12, 한국종교사학회, 2004)
- 이동영, 「조윤제의 『한국문학사』 검토」 (『도남학보』 20, 도남학회, 2004)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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