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시중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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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박건회(朴健會)가 지은 고전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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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13년 박건회(朴健會)가 지은 고전소설.
내용

1책(48면). 구활자본. 1913년 조선서관(朝鮮書館)에서 발행하였다. 원제목은 ‘고려강시중젼’이며, 총 10회의 장회체소설(章回體小說)로 되어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고려 태조 때 경기도 시흥시 문성동에 사는 강궁진(姜弓珍)이 꿈에 종남산이 입으로 들어오는 태몽을 꾸고 강은천(姜殷川)을 낳는다. 강은천은 장성하여 이름을 강감찬(姜邯贊)이라 했다. 성종 때 장원급제하여 한양판관이 되었는데, 백운대 노승을 불러 호랑이의 피해를 막아 큰 공을 세웠다.

경주부윤이 되었을 적에는 밤마다 요란하게 우는 개구리들에게 명령하여 울지 않게 하기도 하였다. 현종 때는 거란이 의주 흥화진에 침범한 것을 물리치고, 이를 계기로 정병을 양성한다.

거란의 소손녕이 고려를 재침하자, 강감찬은 성동대천을 우피로 가로막고 군사를 매복시켜 또 대승을 거둔다. 패퇴하여 구주(龜州)로 도망한 소손녕은 잔병을 모아 다시 대치하나, 강감찬은 김종현의 군사와 합세하여 기상(氣象)의 도움으로 다시 승리한다.

소손녕의 군대가 반령(盤嶺)에 이르렀을 때 집단투항이 있었으며, 거란왕의 분노를 산 소손녕이 자진했음을 알려온다. 강감찬이 많은 포로와 전리품을 가지고 돌아오니 왕은 친히 그의 머리에 금화(金花)를 꽂아주며 환영하고, 영파역(迎波驛)을 흥의역으로 고친다.

강감찬은 도성을 수축하여 오랑캐의 침략에 대비할 상소를 올리고 관직에서 물러난다. 강감찬은 성덕을 기리는 『교거집(郊居集)』과 『구선집(求善集)』을 지어 세상에 전했다. 그 뒤 송나라의 사신이 강감찬을 보고 천상에 자리한 문곡성(文曲星)이라 하였다. 현종이 승하하고 명종이 즉위하자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하직하고 다시 문곡성으로 되돌아갔다고 한다.

이 작품은 강감찬의 역사적 전기와 비슷하다. 다만 처음의 태몽이나 마지막의 문곡성으로 돌아가는 종교적 윤색만 가미된 정도이다. 저서로 『낙도교거집(樂道郊居集)』과 『구선집』을 남겼다는 기록도 같다. 박건회가 강감찬의 일생을 『고려사』 등에서 발췌하여 흥미롭게 널리 읽을 수 있도록 회장체 역사소설로 꾸민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한국문학통사』4(조동일, 지식산업사, 1986)
「고려강시중전」(『구활자본고전소설전집』1, 인천대학민족문화연구소,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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