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환(李家煥: 1742~1801)은 정조로부터 신뢰를 받았던 남인계의 대표적인 정치가이자 문장가이다. 본관은 여주(驪州)이며, 자는 정조(廷藻), 호는 금대(錦帶) · 정헌(貞軒)이다. 종조부는 성호(星湖) 이익(李瀷)이고, 아버지는 혜환(惠寰) 이용휴(李用休)이다. 학문과 문장에 모두 뛰어났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천주교를 신봉했다는 이유로 역적으로 몰려 신유박해(辛酉迫害) 때 처형당했다.
저자의 호를 따라 ‘금대집(錦帶集)’이라 표제를 붙였으나, 『금대집』 외에 『금대시문초(錦帶詩文抄)』, 『시문(詩文)』, 『시문초(詩文草)』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이가환의 시문집으로는 현재 7종 가량의 필사본 이본이 전해지고 있다.
이가환이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기 때문에 그의 문집이 정식 간행되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정약용이 이가환을 위해 지은 「정헌묘지명(貞軒墓誌銘)」의 기록에 따르면 그의 저서로 『금대관집(錦帶館集)』 10책이 있으며 편수(篇數)는 미상이라고 했다. 이 묘지명이 이가환 사후 15년 이상 지난 1818년에 지어진 것이므로 이가환의 문집이 제대로 정리되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현전하는 문집 대부분은 공식적으로 간행되지 못한 필사본이며, 그마저도 대부분 낙질본이다.
현재 여러 이본에 흩어져 수록되어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이가환의 작품은 산문이 204편, 운문이 235수 정도이다. 이본에 따라 문집의 구성과 수록 작품의 수가 크게 차이 난다. 가장 많은 작품을 수록하고 있는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의 경우, 춘(春) · 하(夏) · 추(秋) · 동(冬) 4책에 산문 190편, 운문 224수가 수록되어 있다. 가장 많은 작품이 실려 있으며, 문체별로 분류되어 있어 운문과 산문 연구에서 모두 선본(善本)으로 삼아 왔다.
춘책에는 224제의 시가 시기순을 고려하여 편차되어 있다. 하책에는 기(記), 서(序), 잡설(雜說)을 수록했다. 이 가운데 잡설에는 설(說), 찬(贊), 제발(題跋), 인(引)의 문체가 들어 있다. 추책에는 제문(祭文), 전(傳), 행장(行狀), 발(跋), 서(書), 제발(題跋), 기(記), 소(䟽)를 수록했다. 끝으로 동책에는 묘지명(墓誌銘)과 묘갈명(墓碣銘)을 수록했다.
이가환은 정조는 물론이고 당대 명사들에 의해 뛰어난 문재(文才)를 인정받은 인물이다. 다만 삶의 곡절로 말미암아 전 생애에 걸쳐 창작한 시문이 온전하게 전해지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다. 현재 문집에 수록되어 확인이 가능한 작품은 그가 정주목사로 부임했던 1786년[45세] 이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의 시기로 국한되어 있다. 따라서 당대에 ‘이단(異端)’, ‘사설(邪說)’, ‘패관소품(稗官小品)’ 등의 혐의로 공격받던 시문 창작의 면모가 어떠했는지 현전하는 문집만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