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복 ()

의생활
물품
바로 사서 입을 수 있도록 제조업자가 일정 디자인을 표준화된 치수로 미리 만들어 놓고 파는 옷.
이칭
이칭
레디 투 웨어(ready to wear), 장내기옷
약칭
RTW(Ready to W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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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기성복은 바로 사서 입을 수 있도록 제조업자가 일정 디자인을 표준화된 치수로 미리 만들어 놓고 파는 옷이다. 기성복은 산업혁명 이후 재봉틀이 보급되면서 대량 생산되었다. 남성 양복이 먼저 기성화되었고, 이후 여성과 아동의 기성복이 등장하였다. 국내에서는 신생활운동으로 1960년대 초부터 간소한 기성복으로 바뀌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현재 성별-나이-체형에 따라 다양한 품목과 가격대의 기성복이 판매되고 있다.

정의
바로 사서 입을 수 있도록 제조업자가 일정 디자인을 표준화된 치수로 미리 만들어 놓고 파는 옷.
연원

서양에서의 기성복

기성복(旣成服, ready to wear, ready-made garment) 산업은 18세기에 시작되었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으로 면직물과 모직물이 빠르고 싸게 공급되기 시작하였고, 맞춤복점에서 상류층 고객에게 선택받지 못한 옷은 헌옷 시장에서 판매되었다. 맞춤옷 재단 후 남은 천 조각이나 직물 가게에서 팔다 남은 옷감으로 만든 옷은 ‘싸구려 기성복 가게(slop shop)’에서 싸게 판매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져 파는 옷들은 선원, 광부, 노동자와 같은 하류층이 입었다. 옷을 몸에 맞추는 맞춤복은 상류층의 옷, 몸을 옷에 맞추는 기성복은 하류층의 옷이라는 인식은 이 시점에 시작되었다.

이후 1824년 파리에 개점한 백화점 'Belle Jardinière'에서는 한정된 예산의 고객을 위한 기성복 정장을 판매하기 시작하였고, 1825년 미국인 조지 옵다이크(George Opdyke)는 저가(低價)의 남성 정장 제조 공장을 뉴욕에 설립하였다. 저가 기성복 정장의 판매는 옷을 통해 계급을 구별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1840년대에 재봉기와 부속품이 발명되면서 봉제 공장이 설립되었고, 1·2차 세계 대전을 치르는 동안 대량 생산 방법은 더욱 발전하였다. 군복에서의 사이즈 규격화로 인한 남성복 표준 치수 발달로 남성 기성복이 먼저 자리를 잡았으며,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아동복과 여성 기성복 시장도 성장하였다.

한국에서의 기성복

국내 기성복은 1905년 양복상(洋服商) 정자옥(丁子屋, 조지아) 광고에서 처음 확인된다. 1920년대 후반 정자옥은 '레디-메드부'를 확장하고, ‘양복은 필히 기성복에 한한다’고 천명하며, ‘레디-메-드 만능시대’를 열고자 하였다. 당시 기성복 품목은 신사복, 외투(오버, 돈비, 학생 외투), 부인복(부인오버, 코트, 케-프, 학생복, 잡화(와이샤스)였다.

해방 직후 인플레이션 현상과 한국전쟁의 발발로 양극화가 진행되면서 고급 맞춤 양복점이 성행하였다. 이 시기에는 기성복으로 군복, 경찰복, 학생복 등과 같은 제복이 피복창(被服廠)에서 만들어졌으며, 사치 근절과 생활 간소화를 위한 남자 여름철 신생활복 ‘반소매 노타이셔츠(반소매 남방셔츠)’가 동대문 평화시장과 남대문시장에서 대량생산되어 전국에 판매되었다. 시대복장사(時代服裝社)는 해방 후 한국 최초로 대량 생산 체제를 갖추어 와이셔츠와 남방셔츠를 주로 제작한 기성복 생산업체였으며, 한국 최초의 패션쇼를 기획한 노라노(Nora Noh)는 1966년 명동 미우만 백화점에 국내 최초로 여성 기성복 판매장을 개점하였다.

형태와 제작 방식

개인의 신체 사이즈에 맞게 맞춤 방식으로 제조된 맞춤복은 제작 시간이 오래 걸리고, 가봉의 수고로움도 필요하지만, 몸에는 잘 맞는다. 반면, 대량으로 생산되는 기성복은 신속성과 원가 절감의 장점이 있지만, 표준 체형 패턴으로 설계되기 때문에 개개인의 맞음새와 치수 적합성을 충족시키기 쉽지 않다. 특이 체형일 경우, 기성복 구매에 어려움이 따른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1960년대 국내 기성복 도입 초창기에는 ‘이지 오더(easy order)’ 방식으로 옷의 바지 길이나 치마 길이를 완성시키지 않고, 옷을 사 가는 사람의 몸에 맞추어 완성시켜 주기도 하였다. 2000년대 후반에는 대량 생산 체계를 활용한 맞춤 제작을 의미하는 '엠티엠(MTM, made-to-measure)'이 주목받고 있다.

기성복 제작에 필요한 표준 체형 패턴을 위한 한국인 표준 치수가 도입된 것은 1980년이다. 공업진흥청에서 의복 치수의 표준화를 위해 성별, 연령 등에 따라 품목별로 호칭을 정하고 신체 치수, 참고 치수, 제품 치수를 규격화하였다. 1986년에 실시한 제2차 국민 체위 조사를 토대로 의류 제품의 호칭 및 치수 규격 단순화가 연구되었고, 1990년에는 국제 규격에 부합하는 의복 치수 규격이 공포되었다. 현재까지 제8차(2020~2021)에 걸친 국민 체위 조사(사이즈 코리아)가 진행되었으며 3D 측정 방식이 추가되었다. 새롭게 제정된 의복 치수와 체형 규격은 국내에서 생산되는 모든 기성복에 의무적으로 적용된다. 기존 기성복이 대중적 체형의 표본 통계값으로 만들어졌다면, 고객 신체 사이즈를 수년간 모아 활용하는 최근 빅 데이터 기술은 개인 각자의 취향이나 체형에 최적화된 맞춤복을 제작할 수 있게 하였다.

기성복의 분류

기성복은 성별-나이-체형, 의류 품목, 가격대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

성별-나이-신체 측면에서의 기성복은 크게 남성, 여성, 아동용으로 나뉜다. 남성복은 일반 남성, 젊은 남성, 키와 체구가 큰 남성으로, 여성복은 아가씨, 플러스 사이즈 여성, 체구가 작은 여성, 키가 큰 여성, 임산부, 청소년으로, 아동복은 갓난아이, 걷기 시작한 아기, 아동, 소년, 키와 체구가 큰 소년, 소녀, 플러스 사이즈 소녀, 어린이로 구분된다.

기성복의 의류 품목은 상품의 최종 사용 목적에 따라 구분된다. 아우터(코트, 자켓, 조끼), 드레스, 블라우스, 셔츠, 스웨터, 슈트, 니트/티, 수영복, 스포츠 웨어(골프복, 테니스복, 스키복, 요가복 등), 아웃도어 웨어, 이브닝 웨어, 웨딩드레스, 임부복, 유니폼, 속옷, 잠옷, 악세사리/가방, 신발, 모자/스카프/장갑, 양말, 모피, 가죽으로 구분된다.

가격에 따른 분류로는 고가 또는 디자이너 브랜드 가격대(high or designer price zone), 고가와 중고가의 중간 가격대(bridge price zone), 중고가 가격대(better price zone), 중간 가격대(moderate price zone), 저가 가격대(mass or budger)가 있다. 고가 가격대에 속하는 기성복인 프레타포르테(Pret-a-porte)는 유명 패션 하우스에서 디자인한 고급 기성복을 의미하며, 드미 쿠튀르(demi couture)는 고급 맞춤복(haute couture)과 기성복의 중간 개념으로 오트 쿠튀르(haute couture)에서 볼 수 있는 정교한 공정을 가한 기성복을 의미한다.

변천 및 현황

1961년 5·16 군사 정변 직후 진행된 신생활운동으로 신생활복(반팔 노타이 셔츠, 재건복 등)이 유행하면서 간편하고 간소하며 저렴한 기성복 시대로 전환되는 초석을 쌓았다. 1960년대 후반에는 남대문에 기성복 전문 양복점들이 즐비하였고, 1972년 기성복 메이커들이 전국적으로 판매망을 확장하였다. 1971년 미국 의류 수출 쿼터제는 수출에 주력하던 의류업체들의 눈길을 내수 시장으로 돌리게 하였으며, 재고율 감소, 단가를 낮추려는 노력, 보세품이 헐값으로 나돌기 시작하면서 그때까지 조잡한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던 내수용 기성복의 품질 향상 계기가 마련되었다.

1970년대에는 산업 발전과 경제 성장, 생활 수준의 향상, 대중매체의 발달과 더불어 임금이 높아지면서 기성복 구매 추세가 증가하였다. 1970년대 후반에는 대기업이 기성복 산업에 대거 참여하고, 유명 디자이너가 새로운 유행 감각을 기성복에 도입하였다. 1980년 초에는 양장점으로 가득하였던 명동이 기성복 거리로 정착되었다. 1980년대에 들어와서 기성복은 용도나 이용 대상에 따라 다양화, 고급화되었고, 제조 회사들의 적극적인 연구 개발과 판매 촉진 활동으로 일반화되었다. 특히 1983년 교복 자율화로 아동 · 청소년 기성복의 수요가 크게 늘어나면서 아동 기성복 시장이 크게 성장하였다.

1990년대에는 국내 백화점에서 해외 명품 브랜드를 수입하면서 다양한 가격대와 취향의 기성복이 국내 시장에서 소비되기 시작하였다. 2000년대 후반부터 저가 가격대에 속하는 스파 브랜드가 급성장하며 유행을 창조하였는데, 이는 옷을 직접 제조, 유통해 상품 회전율을 높이고 단가를 크게 낮추어 저렴하지만 트렌디한 기성복을 사 입는 젊고 실용적인 소비자의 욕구에 부합하였기 때문이다. 젊은 소비자들은 오프라인 매장에서 직접 옷을 입어 보고 구매하기보다는 온라인 모바일 쇼핑으로 자신의 취향에 맞는 다양한 기성복을 구매하는 방향으로 소비 패러다임이 변화하였다.

이와 같은 간편하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생활 방식은 가장 먼저 기성복화 된 남성복에 영향을 미쳤다. 2010년대 후반까지 신사 정장 기성복은 맞춤(MTM) 생산 시스템까지 도입하며 자구책을 마련하였으나 점차 격식을 차리지 않는 생활 양식으로의 변화와 2019년에 전 세계적으로 퍼진 코로나 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와 재택 근무 체제로의 변화로 인해, 2022년 현재 남성 정장 기성복 제조 업체들은 사업을 정리하거나 캐주얼 웨어로의 전환을 도모하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현재까지의 흐름이 기성복화였다면, 곧 도래할 미래는 디지털 기술과 3D 프린터 기계를 통해 개인의 니즈(needs)에 맞는 맞춤형 옷, “네오 오트 쿠튀르(neo-haute couture)”가 주도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손미영·이규혜, 『글로벌패션비즈니스』 (방송통신대학교출판문화원, 2018)
조희진·양미경·이대화·주영하, 『한국인, 어떤 옷을 입고 살았나-한국 현대 의생활사-』(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7)
최효안, 『노라노-우리 패션사의 시작-』(마음산책, 2017)

논문

김윤희, 「서양 기성복의 출현 배경과 그 유토피아적 성격」(『服飾』 64-3, 한국복식학회, 2014)
안태호, 「時代服裝社」(『경영논집』 3-3, 서울대학교 경영연구소, 1969)
최진영·송화경, 「신사 정장 브랜드의 기성복 및 MTM 생산 실태 조사」(『한국의류산업학회지』 18-6, 한국의류산업학회, 2016)

인터넷 자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s://encykorea.aks.ac.kr/)
관련 미디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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