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중기에, 경상도관찰사, 한성판윤, 호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몽촌(夢村)
  • 시호소의(昭懿)
  • 자앙(子昻)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임진왜란
  • 본관안동(安東)
  • 사망 연도1615년(광해군 7)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예문관검열|경상도관찰사|한성판윤|호조판서
  • 출생 연도1547년(명종 2)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주웅영 (경북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6년 01월 20일
김수 글씨 미디어 정보

김수 글씨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중기에, 경상도관찰사, 한성판윤, 호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앙(子盎), 호는 몽촌(夢村). 할아버지는 김노(金魯)이고, 아버지는 사재감정(司宰監正) 김홍도(金弘度), 어머니는 이계백(李繼伯)의 딸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73년(선조 6) 알성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예문관검열을 지냈다. 홍문관교리 재직 중 왕명으로 『십구사략(十九史略)』을 개수(改修)하였다. 1583년 번호(藩胡)가 침입해 경원부(慶源府)가 함락되자 이조정랑으로서 도순찰사 정언신(鄭彦信)의 종사관이 되었다.

유학(幼學) 신급(申礏)의 상소 속에 조정에서 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하는 인물로 지적되기도 하였다. 직제학 · 승지 등을 거쳐, 1587년에 평안도관찰사에서 면직되었다. 그러나 나라에서 변방의 일을 아는 재신(宰臣)을 뽑아 삼도(三道)로 나누어 파견할 때 경상도관찰사가 되었다.

1591년 정철(鄭澈)건저문제(建儲問題)에 대해 옥당에서 탄핵하는 차자(箚子)를 올리려고 할 때, 부제학으로서 사성 우성전(禹性傳)의 집으로 의논하러 가서 시간이 지연되어 올리지 못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래서 대사간 홍여순(洪汝諄)이 우성전을 탄핵하면서 남 · 북 두파로 갈리게 되자 남인이 되었다.

임진왜란이 발생했을 때 경상우감사(慶尙右監司)로서 진주를 버리고 거창으로 도망을 갔다. 그러면서도 다만 각 고을에 격문을 돌려 백성들에게 적을 피하라고 통고하니 도내가 텅 비어 왜적을 방어할 수 없었다. 또한 전라감사 이광(李洸)과 충청감사 윤국형(尹國馨)이 근왕병(勤王兵)을 일으키자 겨우 1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참가하였다. 그러나 근왕병이 용인(龍仁)에서 패하자 경상우도로 되돌아가 영남초유사(嶺南招諭使) 김성일(金誠一)로부터 패전에 대한 질책을 받았다.

또한 당시 의령에서 의병을 일으켰던 곽재우(郭再祐)와 불화가 심해 김성일의 중재로 무마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일로 지방사람들로부터 처사가 조급하고 각박할 뿐만 아니라 왜적과 싸우지 않고 적을 피해 도망갔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였다.

1592년 8월 한성판윤이 되었고, 지중추부사 · 우참찬 등을 거쳐, 1596년(선조 29) 호조판서로서 전라도충청도에서 명군(明軍)의 군량을 충당하기 위해 군량징수에 힘썼다. 그 뒤 영중추부사에 이르렀으나 1613년(광해군 5) 손자인 김비(金祕)가 옥사할 때 탄핵을 받고 삭직당하였다. 시호는 소의(昭懿)이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몽촌집(夢村集)』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청선고(淸選考)』

  • - 『낙전당집(樂全堂集)』

  • - 『대동야승(大東野乘)』

주석

  • 주1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八(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2

    : 임금이나 왕실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군인. 우리말샘

  • 주3

    : 파직 : 『광해군일기[중초본]』 23권, 1613년(광해 5) 5월 13일. "간원이 안위의 일과 김태허·김수·김의립 등의 파직을 청하다"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