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한성일보』에 연재, 발표되었고, 1954년에 금융조합연합회 협동문고로 처음 출간되었다. 장편소설 「농민」은 대하소설 「농민」 5부작의 제1부에 해당된다. 제2부 「농군(農軍)」은 1952년 『서울신문』에, 제3부 「노농(勞農)」은 1954년 『대구일보』에 연재, 발표되었다. 충청북도 충주 근처 미륵동과 탑골의 지주·토호들이 빈민 착취를 일삼는 농촌의 실상과 농민들의 울분 항거를 사실적으로 부각하고 있다.
아내 금순은 지주 김승지에게 능욕을 당하여 목매어 자살을 하고, 주인공 원장쇠는 근거도 없는 억울한 죄를 뒤집어쓴다. 죽도록 매를 맞은 장쇠는 집을 나가 동학군의 두목이 되어 미륵동 뒷산에 나타난다.
장쇠는 김승지·박의관 부자 등을 연행하여 그들이 사용하던 형구(刑具)로 설분(雪憤)의 벌을 가하며 속죄를 시키고, 종 문서와 빚 문서를 불태운다. 마을사람들이 몰려와 자기들 손으로 죽이겠다고 아우성을 치는 바람에 관군(官軍)이 나타나자 장쇠는 또 어디로 잠적한다.
억울하고 절통한 사정을 어디에 호소할 수도 없이, 자위와 체념 속에 죽어사는 농민들의 삶을 생생하게 형상(形象)하고, 미륵동과 탑골이라는 농촌으로 소우주화(小宇宙化)된 사회현실, 김승지와 박의관으로 상징된 조정에 동학운동을 발발시켜 불의와 불법을 꿇어앉히는 저항적 의지를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제 2부 「농군」에서는 자취를 감추었던 장쇠가 농군이 되려고 돌아오다가 경술국치를 저지하기 위하여 의병대장이 된다. 그러나 국운이 이미 기울어져 장쇠는 다시 집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제 3부 「노농」에서 장쇠가 다시 등장한다. 장쇠는 새로 들어선 더욱 간악한 지주들 밑에서 현실 극복을 위하여 보(洑)를 수축하고 넓은 땅을 개간하기 위하여 주야로 분투한다. 그러다가 지주들보다 더욱 굴욕적으로 농민을 짓밟는 일제에 대하여 항거하는 이 지역의 3·1 만세 계획을 세워 아들 만석의 합세로 민족적인 울분을 터뜨린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일본 관원에게 발각되어 좌절당하고 쫓기는 몸이 된다.
대하소설 「농민」은 미완이라 할 수 있지만 동학운동·경술국치 및 3·1운동 등의 민족사적인 배경에 농민의 수난사를 생동감 있게 엮어나가고 있다.
이 작품은 노농인 아버지 원치수, 농군 장쇠 그리고 아들 만석으로 이어지는 농민 3대의 박해받는 생애와, 농민의 이상, 민족의 열망이 주인공의 극적인 출몰과 쫓김의 절박한 상황으로 절정을 이루며 반복되는 플롯을 이루고 있다.
「제일과 제일장(第一課第一章)」과 「농민」 제1부가 이무영의 대표작이며, 우리나라 농민·농촌 소재 소설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