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5월 30일∼7월 1일까지 『조선일보』에 발표되었다. 제목 ‘서화’는 정월 대보름날에 한 해 동안의 액막이로서 하는 쥐불놀이 풍습을 가리킨다.
이 소설은 돌쇠라는 젊은 농민이 노름판을 벌려 그날 응삼이가 소판 돈을 다 따 먹은 사건과 돌쇠와 면서기 김원준과 응삼 처 사이에 삼각관계가 이루어진 사건을 중심사건으로 설정하고 있다. 노름 모티프와 간통 모티프(motif)가 이 작품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마을 유지의 아들이며 동경 유학생 출신인 정광조가 출현하면서 이 사건들은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기회를 마련하게 된다. 돌쇠가 돈을 따오자 돌쇠 모친은 가난에 넌덜머리가 났던 차인지라 싫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고 부친은 노름해서 번 돈은 도적질해서 번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였다.
원래 응삼의 처 이뿐이는 그 부모가 돈이 없어 응삼이네 민며느리로 팔아버린 존재로, 남편에게 정을 주지 않는 대신 유부남인 돌쇠를 은근히 좋아한다. 이와 같이 노름 모티프나 사연(邪戀) 모티프는 당시의 여러 농민소설들이 잘 일러주고 있는 것처럼 척박한 농촌의 현실을 잘 비쳐 주는 기능을 행사한다.
마름 정 주사 집 앞에 모인 마을 사람들로부터 돌쇠의 사과 요구를 들은 정광조는 이 마을에서 노름 안 한 사람 누가 있느냐, 또 결혼한 남자나 여자가 오입하는 것은 강제결혼과 조혼이 낳은 부작용이 아니냐고 되묻고 나서 당사자의 의지에 따른 자유연애가 바람직하다는 주장을 한다.
이에 오히려 돌쇠가 오히려 잘못을 빌고 노름에서 손을 씻겠다는 약속을 하게 된다. 이 소설은 이뿐이와 돌쇠가 입을 모아 정광조를 칭찬하는 것으로 끝나고 있다. 이 소설은 1920년대와 1930년대에 농촌을 소재로 한 소설이 흔히 풍속, 가난, 노름, 간통, 계몽 등을 다루고 있듯이 이러한 경향의 한 가운데 서 있다.
이기영은 1934년 2월호 『형상』에 「돌쇠(乭釗)」라는 작품을 발표하면서 이 소설이 「서화」의 속편이라고 명시하였다. 제목은 ‘돌쇠’라고 되어 있지만 「서화」에서보다는 정광조의 역할이 더욱 커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소설에서 정광조는 더욱 적극적으로 돌쇠에게 도움을 주면서 자연스럽게 그를 계몽하는데 힘쓴다. 「서화」가 농민을 주인공으로 한 농촌소설이라면 「돌쇠」는 지식인을 주인공으로 한 농촌소설이 된다. 「서화」는 「돌쇠」와 전후편의 관계를 맺음으로써 장편소설 「고향」과 더욱 비슷해지는 결과를 보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