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7년(태종무열왕 4)에 처음 설치되었으며, 중앙 행정 관청들을 기재한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8 잡지7 직관지(상)에 실려 있어, 중앙 행정 관청임을 알 수 있다. 다만 다른 관청들과 마찬가지로 관장하는 업무가 기재되어 있지 않고, 또 관청의 이름에서도 유추하기 힘들어 그 성격과 기능을 알기 어렵다.
경덕왕 대에 통합되었다는 전경부는 전읍서(典邑署)를 개칭한 것으로, 전읍서는 왕경의 도시행정을 관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대일임전 역시 도시행정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하지만 관직명을 볼 때 다른 가능성도 상정할 수 있다. 장관직인 대도사(大都司)는 경덕왕 대에 한식(漢式) 관호로 개정할 때 대전의(大典儀)로, 차관직 소도사(小都司)는 소전의(小典儀)로, 그 아래 관직인 도사대사(都事大舍)는 대전사(大典事)로, 도사사지(都事舍知)는 중전사(中典事)로, 도알사지(都謁舍知)는 전알(典謁)로, 도인사지(都引舍知)는 전인(典引)으로 고쳤다. 5등관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이는 당(幢)은 소전사(小典事)로 고쳤다고 한다.
이처럼 관직명으로 보았을 때 대일임전을 의례를 담당한 관청으로 추정하는 견해가 있다. 또 중국 북조 북제(北齊)에서 전의(典儀)가 조회의 일을 관장하였고, 남조 양(梁)에서는 전의가 창경창주(唱警唱奏)의 일을 관장하였다는 점을 근거로 군신회의가 있을 때 군신들에게 알리고, 왕이나 고위 관리의 행차를 알리고 잡인들의 접근을 막는 일을 맡았다고 보는 견해도 제기되었다. 현재로서 대일임전의 담당 업무를 정확하게 알기는 힘들지만, 다른 관청들에 비해 소속 관직과 관원의 수가 많은 편이어서 어느 정도 특수한 직무를 맡았다고 여겨진다.
소속 관원의 구성을 보면, 우선 장관직으로 대도사 6명이 있다. 대도사는 임명할 수 있는 관등이 사지와 나마(奈麻) 사이로 다른 관청의 대사와 같다. 그 아래에 소도사 2명, 도사대사 2명, 도사사지 4명, 도알사지 8명, 도인사지 1명, 당 6명, 도사계지(都事稽知) 6명, 도알계지(都謁稽知) 6명, 도인계지(都引稽知) 5명, 그리고 비벌수(比伐首) 1명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