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별집(燕巖別集)』 「방경각외전(放璚閣外傳)」에 실려 있으며, 작자가 20세였던 1756년(영조 32) 전후의 작품으로 추측된다. 이 작품은 송욱(宋旭) · 조탑타(趙闒拖) · 장덕홍(張德弘)이라는 세 걸인의 사귐에 대해 논한 내용을 중심으로 엮은 것이다.
군자란 세(勢)와 명(名)과 이(利)를 추구하면서도 그것을 숨기는 것이다. 군자의 사귀는 태도는 이익을 뒤로 돌리는 척해야 하고, 사귀는 얼굴은 속생각을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 사귀는 수단은 다음과 같다.
칭찬하려면 먼저 책망하고, 기쁨을 보이려거든 먼저 성을 낼 것이며, 친해지려거든 성긴[소(疏)]듯이 하고, 믿게 하려거든 의심하는 척하며, 감동시키려거든 눈물을 흘리는 권술(權術)을 쓰는 것이다. 충의(忠義)란 빈천한 이의 일일 뿐이다. 부귀한 이들에게는 논할 것도 없는 것이다.
「마장전」은 조탑타의 입을 통해 “세상에 친구가 없었으면 없었지, 군자의 사귐은 할 수 없다”고 말하며 끝맺는다. 이 글은 군자의 사귐이 행해지지 않는 현실을 역설적으로 풍자한 것이다.
박지원은 「방경각외전」 자서(自序)에서 “붕우의 도리가 오륜(五倫)의 맨 끝에 놓인 것은 소홀히 한 것이거나 낮게 본 것이 아니다. 이것은 마치 오행(五行)에서 토(土)가 사시(四時)의 가운데 위치하는 것과 같다. 부자 · 군신 · 부부 · 장유의 도가 신(信)이 없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떳떳이 해야 할 일을 떳떳이 하지 못할 때에 벗이 이를 바로잡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후군(後軍)이 앞을 통섭하는 것과 같다. 세 광인은 서로 벗이 되어 세상을 피해 떠돌아다녔다. 그러나 그들이 논한 ‘헐뜯음과 아첨’에서 사나이를 보는 것 같아서 이에 「마장전」을 쓴다.”고 하였다.
이것과 「마장전」 본문 끝에 넣은 「골계선생우정론(滑稽先生友情論)」에서 “송욱 · 조탑타 · 장덕홍 같은 걸인도 말 거간꾼의 술수를 쓰지 않았다. 하물며 군자로서 글 읽은 이야 말할 것이 있겠느냐.”고 결론짓는다. 여기서 작자의 저작 의도를 살필 수 있다.
「마장전」은 소외되기 쉬운 서울의 하류층 인물인 세 사람을 등장시켜 당시의 ‘군자의 사귐’을 비판하였다. 그리고 이들이 옷과 갓을 찢고 허리에 새끼줄을 매고 거리에서 노래하게 하는 것으로 끝맺음으로써 그 풍자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