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말에 고승 나옹화상(懶翁和尙)혜근(惠勤)이 지은 불교가요. 7언 기조 40구이며 한문으로 되어 있다. <완주가 翫珠歌>·<고루가 枯髏歌>와 함께 <나옹삼가 懶翁三歌>로 일컬어졌으며, ≪나옹화상가송 懶翁和尙歌頌≫에 함께 수록되어 전한다.
후대에 불광산(佛光山)대원암(大源庵)의 스님 법장(法藏)이 이들 세 곡을 고쳐서 ≪보제존자삼종가 普濟尊者三種歌≫로 내놓았는데, 이 때 <백납가>는 200구로 늘려졌다.
<백납가>는 승려의 남루한 장삼의 기용(機用)과 공덕을 예찬하며, 명리(名利)를 떠난 수도자의 검소한 생활을 백납의(百衲衣)에 의탁하여 칭송하고 노래하였다. 노래의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을 보면 다음과 같다.
“저 누덕누덕 기운 납의는 내게 가장 어울리도다. 겨울, 여름 오래 입어도 절로 편하네. 누덕누덕 꿰매어 천만의 맺음이요 겹겹이 기운 자죽 먼저와 나중 없네. 혹 자리도 되고 혹 옷도 된다네. 철 따라 때 따라 쓰되 어기지 않네. ……(중략)…… 원래로 다만 배운 것 빈궁뿐이라 이익도 명예도 구하지 않고, 백납의 가슴이 비었거니, 어찌 정이 있으랴. 한 주발에 생애를 의탁하니 어디 가나 족하네. 오직 이 한 맛으로 여생을 지내리라. 생애가 족하니 다시 무얼 구하랴. 가소롭다. 어리석은 자의 분수 이상으로 구함이여. 전생에 행복과 안락을 모아 두지 못하고서 천지를 원망하며 부질없이 허덕이도다. 달도 기억하지 않고 해도 기억하지 않으며 경문 외기나 좌선도 아니하네. 누런 얼굴에 잿빛 머리인 이 어리석은 바보여. 오직 한벌 백납으로 여생을 보내리라.(這百衲 最當然 冬夏長被任自便 袒袒縫來千萬結 重重補處不後先 或爲席 或爲衣 隨節髓時用不違 ……중략…… 元來只是學貧窮 不求利不求名 百衲懷空豈有情 一鉢生涯隨處足 只將一味過殘生 生涯足 更何求 可笑癡人分外求 不會福從前世作 怨天怨地妄區區 不記月 不記年 不誦經文 不坐禪 土面灰頭癡呆呆 唯將一衲度殘年)”
이색(李穡)은 ‘백납’에 대하여, ‘비단을 물리고, 찢어지고 헤진 천들을 잇대어 만들었는데, 살가죽을 가리고 추위와 더위를 막을 뿐이다. 그러나, 이것이 아니면 장엄위의(莊嚴威儀)로서 무리를 편하게 하고, 불도(佛道)에 들어가 불성(佛性)을 보게 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 노래를 포함한 나옹의 세 곡에 대하여 ‘처음과 끝이 상응하고 맥락이 상통하여 후인에게 보임에 심오하고 절실하다.’고 평하였다.
깊이 생각하고 힘써 다듬어 지음으로써 <증도가(證道歌)>를 지은 당나라 영가대사(永嘉大師)의 구법(句法)을 재현할 수 있어, 다른 날에 서역에 유통하여도 응당 그 곡조를 감상하는 자가 있으리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