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봉」은 이인직이 『혈의 누』 하편으로 『매일신보』에 1913년 2월 5일부터 6월 3일까지 65회에 걸쳐 연재하다가 미완으로 중단되었다. 상편에 해당하는 『혈의 누』는 1906년 『만세보』에 주1 1907년 광학서포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선 1911년 『혈의 누』가 경무부에 의해 발행 불허가 처분을 받자, 이인직은 이를 개작해 1912년 『모란봉』이라는 제목으로 동양서원에서 재출간했다.
『매일신보』에 연재된 「모란봉」은 이처럼 『혈의 누』가 개작 · 주8 『모란봉』의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연재 첫 회분에서 주5라는 제목이 불러 일으키는 비관(悲觀)적인 느낌을 피하기 위해서 제목을 바꿨다고 밝혔다. 한편 이인직은 「모란봉」에 앞서 『혈의 누』 하편을 『제국신문』에 주2 중단한 적이 있는데, 이는 「모란봉」과는 내용이 상이하다.
앞서 『혈의 누』는 청일전쟁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고아가 된 김옥련이 우여곡절 끝에 구완서와 미국 유학을 가고 아버지 김관일과 재회하는 장면으로 끝맺었다. 후편인 「모란봉」은 러일전쟁 발발로 먼저 귀국하게 된 옥련과 김관일이 주6 공원에서 구완서와 작별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한편 옥련이 귀국하여 어머니 최씨 부인과 재회하기 전에 김옥련과 동명인 장옥련의 이야기가 끼어든다. 장옥련은 어머니가 첩 농선의 모함으로 자살한 후 실성한 채 거리를 헤매다가 우연히 김옥련의 본가에 들어가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한다. 최씨 부인은 장옥련을 딸 김옥련으로 오해해 남편의 변심을 비관하며 자살하려다가 서일순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다. 김관일 부녀의 환영회에서 옥련을 보고 첫눈에 반한 서일순은 최여정, 서숙자 같은 악인과 공모하여 옥련과 결혼하려는 음모를 펼친다. 서일순은 서숙자의 남편을 시켜 옥련의 집을 몰래 불태운 후, 오갈 곳 없는 옥련 가족에게 거처를 제공하여 김관일과 최씨 부인의 환심을 산다. 그러나 옥련은 미국 유학 중인 정혼자 구완서와 의리를 지키겠다며, 서일순과 결혼하라는 부모의 압력에 맞선다. 소설 연재는 서숙자가 구완서 부모를 찾아가 옥련을 모함하는 데서 중단되었다.
「모란봉」은 『혈의 누』에 비하여 작품의 밀도가 약하고 주3의 가정 주7로 퇴행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강제 병합 전후 작가의 정치적 변화나 식민지 초기의 사회상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인직은 1907년 고종 퇴위 이후 이완용 내각의 기관지인 『대한신문』 사장으로 재직했고, 강제 병합의 막후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인직의 『혈의 누』 개작과 후속편인 「모란봉」 창작에는 작가의 이러한 정치색이 반영되어 있다. 『혈의 누』는 문명 지식을 배워 대한제국을 부강한 문명국가로 만들어야 한다는 자강론에 기초해 있었다. 반면 「모란봉」에서 작가는 문명국가 건설이라는 정치적 전망을 상실한 채, 애욕과 물질적 욕망만을 추구하는 인물들의 타락한 사회상을 그려낸다. 『혈의 누』에서 옥련은 문명 지식을 배워 대한의 여성 교육에 앞장서겠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모란봉」에서는 근대적, 주체적 면모가 약화되고 규방에 갇혀 구완서와의 혼인 언약만을 고수하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
이밖에도 「모란봉」은 “신학문도 좀 있는 체, 의협심도 있는 체, 개화한 체”하는 서일순 같은 주4, 신분제 사회가 동요하면서 돈의 힘으로 출세를 도모하는 서숙자 같은 하층민, 여전히 봉건적 처첩 갈등에 희생되는 장옥련 등 근대 초기의 다양한 인물상을 그려낸다. 이제 막 근대적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던 평양, 인천, 경성의 풍물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