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금강산유기』는 1924년 단행본으로 출간된 이광수의 금강산 기행문이다. 이광수는 1921년과 1923년 여름 두 차례에 걸쳐 금강산을 여행하고, 1922년 잡지 『신생활』에 일부 내용을 연재한 후, 1924년 시문사에서 전체 기행을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1차 여행은 장안사에서 구룡연까지 내금강에서 외금강을 향해, 2차 여행은 보광암에서 백탑동까지 내금강 코스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1920년대 국토순례 기행문 중 하나로, 1차 여행기에는 심미적 자연관과 계몽적 합리성이, 2차 여행기에는 불교적 성찰과 탈속에 대한 욕망이 두드러진다.
정의
1924년, 단행본으로 출간된 이광수(李光洙)가 쓴 금강산 기행문.
저술 및 발간 경위
구성과 내용
의의 및 평가
“만일 우리가 금강산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었을진대 우리의 제매(第妹)와 자녀들이 보통학교를 마치기 전에 벌써 금강산의 위치, 명소의 배체와 명칭, 그 사진과 화첩, 그 시와 노래를 보고 외웠어야 할 것입니다. …… 이에 나는 이 부족하나마 내 손으로 우리 금강산을 우리 조선 사람 중에 소개해 보자는 야심을 발하였읍니다. 나의 사랑하는 제매들에게 금강산이 어떻게 아름다운 맛을 알리고 아울러 금강산 구경 노차(路次)나 알려주어 나와 같은 설움을 당하지 말자 하자 하였읍니다.”
금강산은 근대 이전에도 명승지로서 수많은 기행문이 남겨졌으나, 일본인들에 의해 근대적 관광지로 재발견되었다. 1913년 일본의 민관 합동 기구로 설립된 ‘재팬 투어리스트 뷰로’가 금강산 안내서를 배포한 이래 금강산 철도 부설, 각종 관광 책자 발간으로 금강산 관광이 한층 대중화되었다. 기쿠치 유호[菊池幽芳]의 「금강산탐승기(金剛山探勝記)」를 비롯해 일본 작가와 화가들도 금강산 관련 작품을 발간하였다. 이광수의 「금강산유기동기」에는 이처럼 외국인의 시선에 의해 발견된 금강산을 조선의 민족적 장소로 재전유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이런 점에서 『금강산유기』는 최남선의 『백두산근참기』나 『금강예찬』, 안재홍의 『백두산등척기』, 이은상의 『묘향산유기』 등과 함께 국토 순례 기행문의 범주에 든다. 그러나 『금강예찬』이나 『풍악기유』 같은 최남선의 금강산 기행문들이 민족의 숭고한 기원을 찾아가는 순례에 가까운 것에 비해, 이광수의 『금강산유기』는 심미적 대상으로서의 자연관과 근대적 합리성에 좀더 기울어 있다고 평가된다.
참고문헌
원전
- 이광수, 『금강산유기』 (시문사, 1924)
논문
- 김미영, 「이광수의 『금강산유기』와 「민족개조론」의 관련성」 (『한국문화』 70,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5)
- 김현주, 「근대 초기 기행문의 전개양상과 문학적 기행문의 기원-국토기행을 중심으로」 (『현대문학의 연구』 16, 한국문학연구학회, 2001)
- 복도훈, 「미와 정치: 낭만적 자아에서 숙명적 자아로의 유랑기-이광수의 금강산유기를 중심으로」 (『동악어문학』 46, 동악어문학회, 2006)
- 서영채, 「최남선과 이광수의 금강산 기행문에 대하여」 (『민족문학사연구』 24, 민족문학사연구소, 2004)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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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연재기간은 다음과 같다. 1호(1922.3.15)·2호(1922.3.21)·3호(1922.4.1)·5호(1922.4.22)·6호(1922.6.6). 4호는 압수로 발간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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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나중에 일본교통공사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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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전유된 가치나 질서로부터 출발하여 본래의 목적과는 다른 기호와 방식으로 작용하거나 다른 의미 체계를 갖도록 만드는 행위. 이는 억압된 문화에 대한 도전과 위반 의식을 가지는 하위 문화적 특성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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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팔촌이 되는 동생.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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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1907년에 이승훈이 평안북도 정주에 세운 학교. 민족정신을 고취하고 독립운동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하여 설립하였으며, 광복 후 서울의 오산 중ㆍ고등학교가 되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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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여행하는 동안에 보고, 듣고, 느끼고, 겪은 것을 적은 것.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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