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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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 총사령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 대표 상훈건국훈장 애국장(1990)
  • 본관여흥(驪興)
  • 사망 연도1976년
  • 성별남성
  • 주요 경력화랑사 총무 겸 재무간사|한국광복군 총사령부
  • 출생 연도1911년
  • 출생지서울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1년
  •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
  • 최종수정 2022년 11월 10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민영완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 총사령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의 지도 아래 만들어진 청소년단체 화랑사에 참여하여 총무 겸 재무간사로 활동하였다. 1933년 중국 중앙항공학교를 졸업한 후 중국 공군으로 근무하다가 광복 직전 한국광복군 총사령부에서 활동하였다.

정의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 총사령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인적사항

민영완(閔泳琬, 1911~1976)은 서울 출신으로, 본관은 여흥(驪興)이다.

주요 활동

1919년 가족을 따라 상하이〔上海〕로 건너갔다. 1929년 7월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의 지도 아래 만들어진 청소년단체 화랑사에 참여하여 총무 겸 재무간사로 활동하면서 청소년의 독립정신 계몽 등을 전파하였다.

1933년 중국 항저우〔杭州〕에 있는 중앙항공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비행과에서 복무하였다. 1934년부터 1942년까지 중국 공군의 항저우 제1총참에서 근무하였다. 1944년 4월까지는 윈난성〔雲南省〕 쿤밍〔昆明〕에 있는 중국 중앙공군군관학교에서 보험산실장을 역임하였다.

이후 한국광복군 총사령부에서 복무하다가 광복을 맞아 1945년 11월 23일 김구 주석 등과 함께 귀국하여 이시영 부통령의 비서관을 역임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追敍)되었다. 대한민국정부는 1992년에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민영완의 유해를 안장하였다.

참고문헌

  • 기타 자료

  • -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 9(국사편찬위원회, 2006)

  • - 『독립유공자공훈록』(국가보훈처, 1988)

주석

  • 주1

    : 건국 훈장 중 네 번째 등급. 우리말샘

  • 주2

    : 죽은 뒤에 관등을 올리거나 훈장 따위를 줌. 우리나라의 경우 긴급 상황에서 살신성인의 정신을 실천하다가 사망하거나 위급한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여 사회 전체의 본받을 만한 모범이 된 사람, 생전에 큰 공을 세워 국민의 존경을 받으며 덕망을 갖춘 사람에게 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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