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완(閔泳琬, 1911~1976)은 서울 출신으로, 본관은 여흥(驪興)이다.
1919년 가족을 따라 상하이〔上海〕로 건너갔다. 1929년 7월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의 지도 아래 만들어진 청소년단체 화랑사에 참여하여 총무 겸 재무간사로 활동하면서 청소년의 독립정신 계몽 등을 전파하였다.
1933년 중국 항저우〔杭州〕에 있는 중앙항공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비행과에서 복무하였다. 1934년부터 1942년까지 중국 공군의 항저우 제1총참에서 근무하였다. 1944년 4월까지는 윈난성〔雲南省〕 쿤밍〔昆明〕에 있는 중국 중앙공군군관학교에서 보험산실장을 역임하였다.
이후 한국광복군 총사령부에서 복무하다가 광복을 맞아 1945년 11월 23일 김구 주석 등과 함께 귀국하여 이시영 부통령의 비서관을 역임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追敍)되었다. 대한민국정부는 1992년에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민영완의 유해를 안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