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조 이전의 집은 벽이라고 지칭할 만한 부분이 없다. 땅을 파고 내려가는 움집의 경우, 파고 내려간 만큼 흙벽이 되는 셈이지만 이것을 벽이라 할 수는 없다. 간단하게나마 기둥을 세우고, 보나 도리가 걸리는 구조에서 기둥과 기둥 사이를 막을 때 벽이 형성되는 것이다.
벽의 재료는 처음에는 풀잎이나 그 줄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지붕을 덮었던 재료가 그대로 벽에까지 연장되었으리라는 점에서 가능하다. 지금도 헛간을 간단한 형태로 지을 때는 위와 같은 방법이 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렵생활을 위주로 하는 종족이나 지역에서는 짐승의 가죽이 이용되었을 것이다.
인디언이나 몽고인의 파오 등에서 그 실례를 찾아볼 수 있다. 정상적인 목조의 집이 지어진 뒤에도 흙벽의 사용은 늦게 시작된다. 고구려 고분의 벽화나 신라시대에 그려진 사경(寫經)의 변상도(變相圖)에 표현된 건물들에는 대부분 장막이 드리워 있다. 겹으로 천을 박아서 만든 장막은 필요할 때 들추어서 출입구로 쓰는 이중의 효과가 있다.
더운 여름철에는 장막을 걷고 대신 발을 늘여놓은 장면도 있다. 이 밖에 널벽[板壁]도 이용되었다. 널벽은 흙벽보다 먼저 발생한 것으로 여겨진다. 고구려의 부경(浮京)은 작은 창고로서 귀틀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자연 벽은 통나무가 이용된다.
그러나 나무를 얇게 켜서 쓰려면 잘 드는 톱이 있어야 하는데, 건축을 위한 연장의 발전상황이 모호하므로 널벽의 정착시기를 정확하게 알아내기는 어렵다. 삼국시대 이후의 집들에서는 널벽과 흙벽이 고루 사용되었다.
벽은 흙벽·널벽·흙벽돌벽·전벽돌벽·석벽(石壁)·반담벽·화담벽·회벽 등으로 분류한다. ① 흙벽 : 인방 사이에 중깃을 박고 외를 엮은 다음 짚여물을 섞은 흙을 안팎으로 두툼하게 바른다. 이것이 초벌바르기이다.
초벌이 잘 마른 다음 재벌을 바르는데 9㎜ 내외의 두께로 한다. 역시 잘 마른 다음 정벌을 한다. 정벌은 회반죽·진흙 또는 삼화토(三和土)로 막음하되 전체 두께는 인방의 두께에 맞춘다.
② 널벽[板壁]: 널빤지를 세워서 대는 데 상·하 인방의 중심에 널빤지 두께의 홈을 파고 끼워 넣는다. 세워 댄 널빤지의 중간에 띠장을 한 줄 또는 두 줄 수평으로 두른다. 띠장은 안팎으로 대어서 못으로 판재와 고정시킨다. 두 줄로 두를 때에는 띠장의 간격을 벽 높이의 중간쯤에 몰아서 대는 것이 일반적이다. 간략하게 할 때에는 인방에 홈을 파지 않고 덧대듯이 하기도 한다.
③ 흙벽돌벽 : 점토질의 흙에 짚여물을 썰어서 물과 함께 짓이겨서 되직하게 한 다음, 나무로 된 형틀에 넣고 다진다. 잘 다져졌으면 형틀을 위로 올려 빼고는 그 자리에서 말리고, 어느 정도 마르면 옮겨서 다시 잘 말린다. 흙벽돌의 크기는 길이가 30㎝ 내외, 높이가 18㎝ 내외, 너비가 15㎝ 내외이다.
이 흙벽돌을 진흙으로 줄눈을 채워가면서 쌓는데 쌓는 방식은 대부분 막힌 줄눈이다. 다 쌓은 다음 안팎으로 삼화토를 발라주기도 하고, 헛간 등에서는 그대로 두기도 한다.
④ 전벽돌벽 : 흙을 구워서 쓰는 전돌은 그 역사가 오래 되고 상당히 널리 보급되었으나,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일반 민가에서는 거의 쓰지 않았다. 다만, 서울과 같이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경우에는 화재의 예방을 위하여 행랑채의 외벽에 사용되기도 하였다. 전벽돌 대신 막돌이 쓰인 경우는 많다.
기타 석벽이나 반담벽이 있는데, 이것은 쌓는 높이나 재료에 따라서 분류하는 것이다. 쌓는 방법은 줄눈을 넣어가면서 쌓는다. 벽의 위치에 따라서 외벽·내벽·칸막이벽·포벽(包壁)·후불벽(後佛壁)·합각벽(合閣壁) 등 여러 가지로 나누어 부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