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관은 고려시대, 무선(武選) · 군무(軍務) · 의위(儀衛) · 우역(郵驛)을 담당하였던 관청이다. 『고려사』에 따르면 918년(태조 1)에 병부를 두었으며, 후에 병관으로 고쳤다고 하였다. 병부는 신라 이래로 태봉의 것을 계승한 것이다. 병관이라고 칭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982년(성종 1)에 상서도성의 전신인 어사도성이 설치된 것에 미루어 이때 고친 것으로 추정된다. 어사도성 아래에 선관, 병관, 민관, 형관, 예관, 공관 등 6관이 설치되고, 병관에는 어사, 시랑, 낭중, 원외랑 등의 관원을 두었다.
『고려사』 권76, 백관1 병조조에 무선(武選) · 군무(軍務) · 의위(儀衛) · 우역(郵驛)을 관장하였다고 하였다. 무관의 선발(정안의 작성 등 포함), 병적의 관리와 병력의 배치, 군량, 성보, 마정, 군사의 열병 등 군사관계 업무, 국왕에 대한 의장, 역참관계 업무를 관장하였다.
982년(성종 1)에 어사도성(御事都省) 아래에 선관(選官), 병관(兵官), 민관(民官), 형관(刑官), 예관(禮官), 공관(工官) 등 6관이 설치되었다. 병관에는 어사, 시랑, 낭중, 원외랑 등의 관원을 두었다.
병관은 당나라의 제도를 수용한 것이며, 속사로서 이전에 없었던 고조(庫曹)도 설치되었는데, 995년(성종 14)에 병관을 상서병부로 고치면서 고조를 상서고부로 고쳤다. 당나라의 제도 가운데 직방[職駕部方], 가부(駕部) 등은 제외되어 고려식으로 변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조는 각종 병기나 의장용 기기를 관장하는 것이 임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