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군부 ()

고려시대사
제도
고려 전기, 군사기구.
이칭
이칭
군부(軍部)
제도/관청
설치 시기
고려 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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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순군부는 고려 전기의 군사기구이다. 군사 업무를 담당하던 병부가 존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순군부가 설치되어 더 중요하게 취급되었던 것은 많은 사병을 거느린 호족들이 발호하던 시대적인 상황에 기인하였다. 순군부는 병부보다 상위의 정치 조직이었으며, 경종 때까지 그 위상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성종 때 군사제도가 2군 6위로 정착되면서 순군부의 역할이 약화하여 폐지된 것으로 보인다.

키워드
정의
고려 전기, 군사기구.
설치 목적

순군부(徇軍府)는 궁예(弓裔)태봉(泰封) 시기에도 있었던 것이 확실하지만 『삼국사기』 궁예 열전의 태봉 관제에는 보이지 않고, 왕건(王建)이 즉위하여 관제 개편을 시행하였을 때 처음으로 기록에 나타난다. 『고려사』 백관지(百官志)에 의하면, 순군부가 ‘장병(掌兵)의 기구’라는 기사를 통해 군사 기구였음을 알 수 있다.

기능과 역할

고려 초의 군사 기구로는 순군부와 함께 병부(兵部)가 존재하였다. 병부가 군사에 관한 왕명(王命)을 이행하는 관청이었던 반면, 순군부는 당시 정치세력의 중심이었던 호족(豪族)들의 군사력과 연결된 협의체적인 군사지휘권의 통수부(統帥府)로 기능하였다.

관제상의 서열은 광평성(廣評省)과 내봉성(內奉省)의 다음으로 병부보다 한 등급 위에 위치하였으며, 소속 관원으로는 영(令)·낭중(郎中) 등의 직제가 확인되나 자료 부족으로 더 이상의 내용은 알 수 없다. 이에 따라 순군부를 태조(太祖)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왕의 직속 기구로 보는가 하면, 군정(軍政) 기구로 이해하거나 혹은 군정과 분리된 군령(軍令) 기관이자 지방 호족의 군사력에 대한 순행 감시의 역할을 하는 기구로 보기도 한다.

변천사항

호족의 군사적인 협의체로 운영되었던 순군부는 960년(광종 11) 광종(光宗)의 왕권강화 정책의 시행과 아울러 단행된 호족 숙청작업의 일환으로 기능이 축소 약화하여 군부(軍部)로 개편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단행본

박용운, 『고려사 백관지 역주』 (신서원, 2009)
이기백, 『고려병제사연구』 (일조각, 1981)

논문

권영국, 「고려 초 순군부의 설치와 기능의 변화」 (『한국사연구』 135, 한국사연구회, 2006)
전경숙, 「고려초의 순군부」 (『한국중세사연구』 12, 한국중세사학회, 2002)
정경현, 「고려 태조대의 순군부에 대하여」 (『한국학보』 48, 일지사, 1987)
최규성, 「순군부고」 (『상명사학』 1, 상명사학회,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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