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법화종(大韓佛敎法華宗)에 속한 사찰이다. 창건 및 역사에 대해서는 전하는 바가 없으며 수암사(水菴寺) 터에 새로 지었다고 한다.
사찰 내에 고려시대 조성으로 추정되는 삼층탑과 석조약사여래좌상이 전해오고, 또 1481년(성종 12)에 편찬된 주1 청안현조에 “수암사는 칠보산(七寶山)에 있다.”고 되어 있으므로, 수암사가 고려시대 이래 전래되어 온 사찰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이후의 내력은 알 수가 없고, 1899년(광무 3)에 편찬된 『호서읍지(湖西邑誌)』의 지도에는 수암사가 표시되어 있지만, 같은 해에 편찬된 『청안군읍지(淸安郡邑誌)』에서는 수암사에 대해 ‘지금은 없다[今無]’라고 하였다. 아마도 17세기 이후 어느 시점에 폐사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956년에 마을 주민들이 수암사 터에서 파손된 탑의 부재(部材)를 모아 탑을 세우고, 석불 1구를 발굴하여 보호각을 지어서 주2 뒤 ‘보안사’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보안사 자리가 원래의 수암사 자리인지는 불분명하다.
국가문화재 보물로 지정된 삼층석탑은 주3 밑면의 받침이 3단으로 줄어들고 뭉툭하게 표현된 점이나, 기단이 완전하지 않고 간략하게 표현된 점 등으로 보아 고려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화강암으로 다듬어진 3층 석탑은 높이 325㎝이며, 주4) 일부가 떨어져 나갔다. 정상부의 네모난 지붕 모양의 주5은 그대로 남아 있으나 주6은 소실되었다. 기단부는 허술한 점이 있으나 탑신부는 균형 있게 안정감을 주고 있다. 1942년의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의 기록에는 5층 석탑이라 하였으나 이는 잘못된 기록이다.
충청북도 문화재 자료로 지정된 석조약사여래좌상은 광배(光背)와 대좌(臺座)는 남아 있지 않으나 불상은 그다지 훼손되지 않았다. 손의 표현으로 보아 왼손 위에 약그릇을 들고 있던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은 없어진 상태이며, 얼굴에 비해 어깨가 위축되었으며 턱을 내리는 등 조각수법이 둔화되는 양상에서 고려 후기 불상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