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천사는 경상남도 의령군 의령읍 벽화산에 있었던, 통일신라시대에 창건한 절이다. 수암사라고도 불렀다. 통일신라 말에 탑과 석등, 금당의 가람 배치로 개창하였다. 고려시대에 사역이 넓어져 조선시대까지 운영되다가 19세기 전반 이후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관련 문화유산으로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의령 보천사지 삼층석탑과 의령 보천사지 승탑이 있다.
보천사(寶泉寺)는 경상남도 의령군 의령읍 벽화산(碧華山)에 있었던 절이다. 일제강점기에 의령 보천사지 삼층석탑(宜寧 寶泉寺址 三層石塔)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이 석탑은 1960년에 국보로 지정되었으며, 1963년 1월 21일에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소재지는 의령군 의령읍 하리 797-1번지이다. 전체적으로 원만한 비례를 나타내며, 기단부의 독특한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1967년 도굴꾼에 의하여 도괴, 훼손되었을 때 사리공(舍利孔)에서 청동으로 만든 불상과 광배 모양의 구리 조각, 흙으로 만든 탑 등이 발견되었다. 석탑 옆에는 석등의 대석이 남아 있다. 석탑으로부터 동북쪽 산기슭 계곡에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의 기본형을 갖춘 의령 보천사지 승탑(宜寧 寶泉寺址 僧塔)이 있다. 고려 전기에 제작된 것으로 짐작되며, 1968년 12월 19일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후 2018년 극동문화재연구원이 실시한 발굴 조사에서 유구를 확인하였고, 토기와 기와, 백자 조각 및 통화(統和), ‘보천사’ 등의 글자가 새겨진 명문 기와를 수습하였다.
1940년 간행된 『교남지(嶠南誌)』에서 통일신라시대 경덕왕 때 창건한 절이라고 전하지만 출전을 정확히 알 수 없다. 보천사 터에 남아 있는 유물들을 고려할 때 경덕왕 때 창건하였다는 내용은 신빙성이 높지 않다. 이후 조선 후기까지 관련 문헌 기록이 없어 자세한 연혁을 알 수 없다. 다만, 보천사 터 발굴 조사 결과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건물터 등이 확인되었으며, 의령 보천사지 삼층석탑은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전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통일신라 후기에 탑과 석등, 금당의 가람배치로 개창하였고, 고려시대에 사역이 넓어져 조선시대까지 운영되었던 것 같다. 수암사(水巖寺)라고도 하였다.
18세기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와 『범우고(梵宇攷)』에서는 벽화산에 있다고 하였는데, 1899년(광무 3)에 편찬된 『의령군읍지(宜寧郡邑誌)』에는 ‘지금은 없다’고 하였으므로 19세기 전반까지 운영되다가 어느 때인가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