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산 도리사 ( )

불교
유적
국가유산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의 냉산(冷山)에 위치한 사찰.
유적
건립 시기
삼국시대
관련 국가
신라
관련 인물
아도|길재|김종직
소재지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도리사로 526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명칭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국보(1982년 12월 7일 지정)
소재지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북암길 89, 직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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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도리사는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의 냉산(冷山)에 위치한 사찰이다. 삼국시대 신라 눌지왕 때 아도 화상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조선 중기 이후 중창되어 세존 사리탑 금동 사리함기 등 다수의 성보 문화유산이 있으며 대한 불교 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이다.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의 냉산(冷山)에 위치한 사찰.
건립경위

도리사는 경상북도 구미시 냉산(冷山)에 위치한다.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이 절이 신라 최초의 사찰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도리사 창건에 대하여 전하는 가장 이른 자료는 1530년(중종 25)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로, 삼국시대 신라 눌지왕 때 묵호자와 모습이 비슷한 아도라는 승려가 이 지역이 겨울인데도 꽃이 만발한 것을 보고는 절을 세웠다는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다. 1639년(인조 17) 간행된 『도리사사적(桃李寺事績)』, 1655년(효종 6)에 세운 「아도화상 사적비(阿道和尙事績碑)」 등에서도 아도 화상이 도리사를 창건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아도가 실제 도리사를 개창했다기보다 통일신라에 이르러 아도를 추모하며 건립되면서, 이 사찰의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지역에서 전해 오는 아도 설화와 연관지었을 가능성이 높다. 본래의 절터는 현재의 도리사 아래쪽에 있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위치와 규모는 확인되지 않았다. 지금의 절이 있는 곳은 금당암(金堂庵)이 있었던 곳이다.

변천

창건 이후 구체적인 역사는 전하지 않는다. 도리사 경내 화엄 석탑은 고려시대 유물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건립 연대는 확인되지 않았다. 길재(吉再, 13531419)가 1363(공민왕 12)에 냉산(冷山) 도리사에서 글을 배웠다고 하며, 조선 전기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은 도리사를 유람하고 시문을 남겼다.

1639년(인조 17)에 아도화상 사적비(阿度和尙事蹟碑)를 세웠다. 1645년(인조23)에는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을 조성하였고, 1655년(효종 6)에는 아도화상 사적비 뒷면에 도리사 중수 시 내역과 공덕을 넣은 자운비(慈雲碑)를 새겼다.

1677년(숙종 3)의 큰 화재로 금당암과 아미타불 좌상을 제외하고 대웅전을 비롯한 모든 건물이 불타 버렸다. 1712년(숙종 38)에 도리사에 불양답(佛粮畓)을 헌납한 시주와 전답량(田畓量)을 기록한 도리사불양답시주질비(桃李寺佛糧畓施主秩碑)를 세웠다. 1729년(영조 5) 대인(大仁)이 아미타불상을 개금(改金)하여 금당암으로 옮겨 봉안하고 금당암을 도리사로 개칭하였다. 1743년(영조 19)에는 금동 육각 사리함(金銅六角舍利函)이 발견된 세존사리탑(世尊舍利塔)을 건립하였다. 1807년(순조 7)에 절을 중창하였고, 1823년에는 조사전(祖師殿)을 중수하였다. 1876년(고종 13)에 극락전을 중건하였으며, 아미타불 좌상 후불탱을 봉안하였다.

1920년에는 조사전에 모실 아도화상 진영을 조성하였고 1922년에 칠성각(현 삼성각)을 신축하였다. 1931년 영산회상도 1폭을 봉안하였다.

형태와 특징

1976년에 사찰을 수리하다가 화엄 석탑 뒤 석축에서 아도 화상으로 추정되는 석상(石像)을 발견하였다. 1977년에 세존사리탑을 해체 · 복원하면서 금동 육각탑 형태를 띤 사리구(舍利具)와 석가모니 진신 사리(眞身舍利) 1과가 발견되었는데, 이 사리의 발견으로 도리사가 재조명되었다. 이 사리구는 현재 직지사(直指寺) 성보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1982년에 진신 사리 친견을 위한 적멸보궁을 신축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인 극락전을 중심으로 태조 선원(太祖禪院) · 삼성각(三聖閣) · 조사전 · 요사채 등이 있다. 이 가운데 극락전은 정면 3칸, 옆면 3칸의 팔작지붕 다포계 건물로 내부에는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이 불상은 조선시대 양식을 띠고 있고 높이 129㎝, 무릎 너비 92.5㎝로서 1731, 1764, 1876년에 개금하였다. 조사전은 정면 3칸, 옆면 1칸의 건물이며 창건주 아도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문화유산으로는 국보 도리사 세존사리탑 금동 사리기와 보물인 삼층 석탑,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인 극락전,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아도화상 사적비 및 도리사 불량답시주질비,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을 비롯하여 세존사리탑, 아도 화상으로 추정되는 석상과 조선 후기의 탱화 등이 있다. 이밖에 숭정 원년명 암막새(1628), 순치 15년명 암막새(1658) 등의 기와가 전해 온다.

아도 화상 사적비는 총 높이 296㎝, 비신 높이 197㎝로 그 뒷면에 자운비(慈雲碑)가 음각되어 있다. 사적비는 1639년(인조 17)에, 자운비는 1655년(효종 6)에 새긴 것이다. 세존사리탑에서 발견된 사리는 무색투명하고 둥근 콩알 크기의 큰 사리로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것 중 가장 가치 있는 사리로 평가되고 있다. 아도 화상 석상은 높이 97㎝의 입상으로서 전면 너비가 좁아 기이한 감을 주나 조각의 윤곽이 뚜렷하다. 또한 1876년에 그린 후불탱화(後佛幀畫)를 비롯하여 1881년에 그린 신중탱화(神衆幀畫) · 독성탱화(獨聖幀畫) · 칠성 탱화(七星幀畫) 등이 있고,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판목(板木) 24매가 보관되어 있다.

참고문헌

원전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점필재집(佔畢齋集)』
『범우고(梵宇攷)』

단행본

권상로 편, 『한국사찰전서』(동국대학교 출판부, 1979)
『도리사 극락전 : 정밀실측조사보고서』(구미 : 구미시, 2015)

논문

李順英, 「龜尾 桃李寺 石塔의 樣式 特徵과 建立時期」(『文化史學』 42, 서울 : 韓國文化史學會, 2014)
장충식, 「도리사사리탑의 조사」(『미술사학연구』 135, 한국미술사학회, 1977)

인터넷 자료

국가문화유산포털(https://www.heritage.go.kr)
집필자
옥나영(숙명여자대학교 강사, 한국고대사(불교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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