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산송산리고분(鳳山松山里古墳)은 북한 황해북도 봉산군에 있는 벽돌무덤 · 덧널무덤으로 이루어진 낙랑군의 무덤군이다. 1917년 송산리 제1호분이라는 이름으로 야쓰이 세이이쓰에 의해 조사되었으나 정식 보고는 되지 않았으며, 광복 이후 북한이 봉산송산리고분에서 발굴한 덧널무덤이 동일한 고분군인지는 검증이 필요하다. 그러나 송산리에서 덧널무덤과 벽돌무덤이 발견된 점은 대방군 지역으로 이해되는 봉산군 일대의 주요 무덤 형태와 일치하고 있다. 대방군치지라 알려진 고당성 동북쪽에 있어 대방군 관련 유적으로 추정하고 있다.
봉산송산리고분은 황해북도 봉산군 송산리에 자리한다. 일제강점기에 고분 1기가 발굴되었으나 정식으로 보고되지는 않았다. 발굴 조사는 1917년 5월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는데, 조사자는 야쓰이 세이이쓰〔谷井濟一〕였다. 조사된 고분은 고당성 북분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정식 명칭은 송산리 제1호분이다. 이 고분은 조사 당시 이미 도굴된 상태였지만, 소량의 유물이 발견되었다는 조사 복명서의 기술이 있다.
봉분은 남북 길이가 11m를 넘고 잔존 높이가 2.42m에 달하는 규모였다. 매장 주체부인 널방은 천장을 제외한 대부분이 지표면 아래에 구축된 반지하식 구조이다. 매장 주체부의 위치는 봉분의 중심에서 동쪽으로 약간 치우친 상태였다.
매장 주체부는 벽돌을 쌓아서 만든 널방이 하나인 벽돌무덤이었다. 널방은 장축을 정남북에 가깝게 두었고 널길은 북쪽에 만들었는데 동쪽으로 약간 치우쳐 있다. 널방 바닥은 모자전(母子塼)과 문양이 없는 네모진 벽돌을 두 겹으로 깐 다음 벽을 쌓아 올렸는데 벽면은 벽돌을 뉘어쌓기로 일관되게 쌓아 올린 형태이다. 즉 낙랑에서 일반적인 ‘3횡 1수’의 벽돌쌓기가 지켜지지 않았다.
벽면은 널길 아치가 시작되는 높이에서 안으로 곡선을 그리면서 축약된다. 바깥쪽으로 배가 부른 구조이다. 이 곡률로 추정하건대 천장은 비록 남아 있지 않았지만 궁륭형(穹窿形)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둥근 아치로 만들어 낸 널문은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서 폐쇄시켰다. 널길 바깥 쪽에는 별도의 시설물이 없었는데 봉분의 흙벽을 출입구로 이용했던 결과로 보인다.
널방 바닥의 북쪽 즉, 널문 쪽의 바닥이 높게 처리되어 마치 관대(棺臺)로 보인다. 다만, 이것이 관대로 의도된 설계인지 도굴의 결과로 남쪽의 바닥 벽돌이 제거된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널방의 동쪽에 치우쳐 다수의 토기 조각이 발견되었으나 기형(器形)을 추정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널방의 중앙부에서 널문에 가까운 곳에는 나무널의 흔적이 관찰된다.
광복 후에도 송산리고분이라는 유적이 알려졌다. 유적은 1957년부터 1961년까지 실시된 황해북도 봉산군과 은파군 일대의 어지돈 관개수로 공사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사리원과 마동 사이의 긴 구릉의 중간쯤에 자리하며 이 구릉의 남쪽 방향 비탈면 골짜기에 송산리마을이 있고 그 일대에 토기 조각들과 한나라식 전돌이 다수 발견되었다고 한다.
발견된 토기 조각 중에는 화분형토기(花盆形土器)도 포함되어 있다. 이 일대에 굴착된 수로 주변에서 덧널무덤 1기가 발견되어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유적에서 100m 정도 떨어진 지점에 봉산군의 철교동 원시 주거지 유적이 있다.
표토(表土)의 1m 정도 아래에서 10여 매의 나무 판재가 발견된 것이 고분 수습 발굴 조사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유구는 덧널무덤인데 드러난 덧널은 길이 약 230㎝, 너비 약 100㎝, 높이 약 30㎝의 장방형 구조였다. 그 내부를 판재로 격벽을 만들어 부장 칸을 만들었다.
관 내부에는 다시 판자를 깔고 그 위에 시신과 세형동검(細形銅劍) 등의 부장품을 넣고 나무판자를 덮었다. 그리고 다시 나무널과 덧널 전체를 회색의 부드러운 점토로 5~10㎝ 정도로 밀봉한 다음 흙을 덮어 봉토를 만들었다.
출토 유물로는 피장자의 허리 부근에서 세형동검과 칼집, 그리고 칼자루끝장식이 출토되었다. 딸린덧널에서 대형의 니질계 두들긴무늬토기 2점과 화분형토기 1점이 출토되었다. 보고자는 철기가 나오지 않았지만 대동강 유역의 전 단계 널무덤을 계승한 묘제라고 하였다.
일제강점기에 발굴된 송산리 제1호분과 광복 후에 발굴된 송산리 덧널무덤이 동일한 고분군인지는 검증이 필요하다. 다만, 황해도 봉산군의 송산리로 불리는 곳에서 덧널무덤과 벽돌무덤이 발굴 조사되었다는 것은 확인된 사실이다. 대방군 지역으로 이해되는 곳의 무덤 형태가 대동강 남쪽 기슭의 것과 거의 일치한다는 점이 주목된다. 대방군치지라 알려진 고당성(古唐城) 동북쪽에 있어 대방군 관련 유적으로 추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