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북한 황해북도 봉산군에 있는 대방군의 무덤으로 알려진 덧널무덤.
유적의 위치
발굴경위 및 결과
조사 결과 고분은 홑묻기, 즉 단장(單葬)의 덧널무덤으로 드러났다. 장축을 남북으로 둔 고분이며 덧널의 북쪽 공간에 토기들이 밀집 부장되었다. 그 나머지 남쪽 공간은 비어 있는 상태였고 덧널의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토기가 부장된 공간이 전용 부장곽(副葬槨: 부장품을 넣는 별도 공간)이었으며, 그 남쪽에 피장자를 매장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고분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내리는 자연 구릉의 자락에 구축한 것으로 봉분이 인정된다. 봉분의 서쪽은 자연 구릉의 말단부와 연결되기 때문에 더욱 높아 보이는 형태이다. 봉분의 동쪽은 약간 낮아지다가 평탄면을 이룬다.
부장 칸에서 출토된 유물은 모두 토기류이다. 대형의 석영혼입계의 백색토기 항아리가 2점 확인되고, 화분형토기의 저부와 구연부 조각도 출토되었다. 니질계의 직립하는 아가리를 가지는 납작바닥토기도 발견되었다. 화분형토기의 바닥 굽이 분리된 채 발견된 것을 보면, 원래는 화분형토기 2점을 부장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형태와 특징
토기 그 자체를 상품으로 수입했다기보다는 내용물이 수입품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유사한 백색토기에서 생선의 뼈 등이 많이 출토되는 것을 참고하면 젓갈류 등의 보존식품을 담는 용기였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화분형토기는 굽이 달리고 아가리가 바깥쪽으로 벌어진 형태로 분리되어 조각으로 출토되었지만, 흔히 변형 화분형토기로 불리는 기형으로 보인다. 전형 화분형토기에 비해 출현 시기가 늦은 것으로 알려진다. 직립 구연의 니질계 짧은목항아리는 바닥이 편평한 기형이다. 제작 기법의 측면에서 평양 지역에서 출토되는 니질계 토기와 완전히 일치한다.
고분의 시기는 백색토기 항아리의 형태가 참고된다. 즉 이 토기는 그 상한이 1세기 대로 정해지며 2세기까지 유행했던 기형이다. 변형 화분형토기도 그 시기가 1세기 중엽 이후로 정해진다.
의의 및 평가
그러나 봉산입봉리고분군은 시기적으로는 대방군이 설치되기 이전의 고분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연구에서 지탑리토성이 유력한 대방군치의 후보지임을 증명하였던 대방 태수 장무이묘의 조영 주체가 대방군이 아니라 4세기 대 중반의 고구려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은파군은 봉산군과 함께 대방군과 연관된 지역이라는 황해도 지역에 대한 고고학적인 정황에 대하여 재고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단행본
- 『光復以前調査遺蹟遺物未公開圖面 3. 平安道 · 咸鏡道 · 黃海道』(국립중앙박물관, 1999)
- 『大正六年度古蹟調査報告』(朝鮮總督府, 1920)
기타 자료
- 조선총독부박물관 문서(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
- 조선총독부박물관 유리건판(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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