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 토광묘에서 출토된 거푸집은 모두 2점이다. 1점에는 한쪽 면에만 세형동검이 새겨졌으나, 다른 1점에는 세형동검과 세형동과가 각각 양면에 새겨져 있다. 각각의 거푸집에 새겨진 세형동검은 동일한 형태와 크기를 통해 2점의 거푸집이 한 짝인 것을 확인할 수 있으나 각 거푸집들의 길이가 다른 점을 고려할 때 처음부터 한 짝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세형동검과 세형동과가 새겨진 거푸집의 주조 면에는 탄소물질이 칠해져 있고 주탕 과정에서 변색된 부위가 확인된다. 이들을 통해 실제로 청동기의 주조가 이루어졌고 주조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하여 탄소물질을 칠한 결과로 판단된다. 변색이 이루어진 쇳물 주입구[주탕구]의 잔존상태를 통해 동과를 먼저 주조하였고, 나중에 동검을 주조하였음을 알 수 있다. 원래 동과 거푸집으로 사용하다 거푸집의 뒷면에 다시 세형동검을 새겨서 재활용한 결과이다. 거푸집의 짧은 측면에는 정확하게 합범(合范)하기 위한 줄눈이 새겨져 있는데 동과 주조 시의 줄눈과 동검 주조 시의 줄눈이 모두 관찰되었다.
거푸집의 재질은 활석제일 가능성이 높으며, 청동기~초기 철기시대 중국 동북부와 한반도에서 주로 사용하였으며, 일본열도에서는 한반도에서 수출된 것이 존재한다. 이 거푸집은 동반되어 출토된 청동기와 점토대토기, 그리고 흑도장경호(黑陶長頸壺) 등으로 보아 고조선 · 삼한 시기에 해당하는데 이 시기는 초기 철기시대라고도 부른다. 이 시기에는 고도로 발전된 청동기문화를 기반으로 새로이 철기가 이입되는 특성이 있다.
갈동유적의 3호, 9호 토광묘에서는 네모난 주조괭이와 주조제 쇠낫이 출토되었는데, 청천강 유역의 세죽리 유적 등에서 발견된 철기들과 비교해 볼 때, 서기전 3서기전 2세기라는 연대가 도출된다. 그러므로 갈동 토광묘에서 출토된 거푸집의 연대는 서기전 3세기서기전 2세기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전(傳) 영암 출토 청동기 거푸집[국보]을 대표로 다수의 거푸집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완주 갈동 출토 거푸집처럼 발굴조사를 통해서 출토 정황이 정확하게 밝혀진 사례는 매우 희소하다.
갈동 출토 세형동과와 세형동검 거푸집은 영암 출토 거푸집을 포함하여 기존에 알려진 활석제 거푸집이 대부분 신용해도 좋은 자료임을 입증해 준 획기적인 유물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갈동 출토 거푸집의 분석을 통해 고조선과 삼한 청동기의 제작기술을 둘러싼 이해가 한층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2019년 6월 26일 보물로 지정되었고, 국립전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