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0년(정조 14)에 춘파(春坡)가 중수하였다. 1841년(헌종 7)에 작성된 「양간록(樑間錄)」과 염불암(念佛庵)에서 발견된 고문서에 따르면, 당시 부도암에 72인 승려가 있었다고 한다. 이로 보아 동화사의 부속 암자 중에서 규모가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전하는 말이 따르면, 처음에 부도암은 동화사 서쪽 편에 있는 부도군 근처에 있었으나, 조선 후기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의 산내 암자로 존재한다.
동화사부도군(桐華寺浮屠群)[^1]으로부터 북쪽 600m 지점에 높은 석축을 쌓아 사역(寺域)을 조성하였다. 돌계단을 올라 입구에 서면 ‘부도암’ 현판을 단 인법당(因法堂)이 있고, 이외에 수선당(修禪堂)과 관음전(觀音殿) 등의 건물이 있다.
2006년 4월 20일에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현, 대구광역시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동화사부도암신중탱(桐華寺浮屠庵神衆幀)」이 있다. 이 신중탱은 1폭에 상하 2단 구도로 구성되어 있다. 19세기부터 전국에 조성되기 시작한 신중탱은 제석을 주존으로 그린 제석탱, 제석과 위태천을 주존으로 표현한 제석 · 천룡탱, 제석 및 범천과 예적금강을 주존으로 그린 제석 · 금강탱 등이 있는데, 부도암의 신중탱은 제석 · 천룡탱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19세기의 전형적인 불화로 시대적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다.
한편, 부도암으로부터 600m 아래에 있는 부도군은 조선 후기에 조성된 부도들이 모여 있는 것이다. 이 가운데 1995년 5월 12일에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현, 대구광역시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부도암부도(浮屠庵浮屠)는 통일신라시대에 유행한 양식으로 조성되었다. 3단 형식의 기단, 탑 몸돌, 지붕돌을 갖추었고, 각 부분이 8각 평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의 돌로 새긴 기단은 원형을 이루는 맨 아래와 윗부분에 연꽃을 새겨 두고, 8각을 이루는 가운데에는 모서리마다 배흘림 모양의 기둥을 본떠 새겨 놓았다. 탑 몸돌에도 역시 배흘림기둥 모양의 여덟 모서리를 새겨 놓았다. 지붕돌은 여덟 모서리의 각 선이 미끄러지는 끄트머리에 덩굴무늬를 한 꽃 조각을 돌출되게 조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