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동아시아경기대회는 1997년 5월 10일부터 1997년 5월 19일까지 부산광역시에서 개최된 제2회 동아시아 경기대회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승인한 국제 지역대회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일본·카자흐스탄·홍콩·괌 등 9개국 2,100명이 참가했다. 육상·수영·태권도·복싱·배드민턴·농구·축구 등 14개 종목의 경기가 펼쳐졌다. 대회 슬로건은 “함께 여는 평화제전, 하나되는 동아시안”이다. 우리나라는 금메달 45개, 은메달 38개, 동메달 51개로 종합 3위를 차지하였다. 한국 스포츠가 밝은 미래를 향해 도약할 수 있다는 확신을 입증해준 점에서 의의가 크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승인한 국제 지역대회로, 1993년 5월 중국 상해(上海)에서 개최된 제1회 대회에 이어 4년 뒤인 1997년 5월 우리나라 항구도시 부산에서 두번째로 개최되었다. 이 대회에는 육상 · 수영 · 태권도 · 복싱 · 배드민턴 · 농구 · 축구 등 14개 종목의 경기가 펼쳐져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 일본 · 카자흐스탄 · 홍콩 · 괌 등 9개 국 2,100명이 참가하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임원 80명, 선수 296명이 참가하여 금메달 45개, 은메달 38개, 동메달 51개로 중국과 일본에 이어 종합 3위를 차지하였다.
이 대회는 1991년 11월 동아시아경기대회 협의회를 창설하였고, 1993년 5월에 중국 상해에서 제1회 대회를 개최하였다. 제2회 대회는 1995년 평양에서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정치적 문제로 북한이 갑자기 반납하여 2년여의 우여곡절 끝에 동아시아지역의 화합과 우의증진이라는 본래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1994년 10월 동아시아스포츠협의회(EAGA)에서 1997년 5월 개최지를 부산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휘장은 태극문양으로 구성돼 있는 물결의 형태로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태극문양과 개최지인 국제항구 부산의 푸른 파도를 나타내며 동쪽을 향해 뻗어있는 동아시아의 단결과 발전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휘장의 대표색은 청색이며 우리나라 고유의 색동을 각각 단색으로 활용하였다.
동아시아인의 축제인 이 대회의 대회슬로건은 “함께 여는 평화제전, 하나되는 동아시안(Peace, Unity, New East Asia)”이며, 슬로건의 의미는 진정한 의미에서 승패의 개념, 국가와 이념, 인종의 벽을 넘어서 15억 동아시아인 모두가 참여하고 하나가 되고 참여자 모두가 승자로 태어난다는 뜻을 담고 있다.
1997년 5월 10일 부산구덕운동장에서 동아시아경기대회의 개막식 공식행사가 개최되었다. 개막식에는 김영삼 대통령, 사마란치(Samaranch,J.A.) IOC위원장, 김운용(金雲龍) 대회조직위원장, 문정수(文正秀) 부산광역시장 등 귀빈과 각국 선수단, 그리고 3만여 관중이 참가한 가운데 개회식을 알리는 팡파레 연주와 더불어 대회 개식이 알려졌다.
개회식은 선수단 입장, 대회사, 환영사, 개회선언에 이어 대회기 게양, 성화 등으로 이어져 약 50분간 진행되었다. 개회식에는 특히 40여 명의 IOC위원과 IF임원,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임원, 동아시아경기협의회(EAGA) 임원, 2004년 올림픽유치도시 홍보단 등 국제스포츠 인사들이 대거 방안하여 대회를 참관하였으며, 이들이 보여준 관심은 향후 동아시아지역이 스포츠 발전의 핵심체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되리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였다.
대회 개막 직전인 5월 6일부터 8일까지 3일간 부산롯데호텔에서 스포츠과학학술대회(위원장:이태일 동아대학교 총장)가 개최되었다. 학술대회는 경기 · 문화 · 학술 행사는 올림픽의 3대 행사로 일컬어지며 이는 체육행사의 3위일체을 의미한다.
학술대회의 주제는 스포츠를 통한 동아시아의 공동번영과 화합이었으며 종합학술심포지움과 체육학의 전문영역별 분과발표를 가졌다. 종합학술심포지엄의 주제는 “환경과 스포츠”였으며 그 내용은 대기오염과 스포츠, 해양환경과 스포츠였다. 또한 분과발표의 각 영역은 체육사 · 스포츠철학 · 스포츠사회학 · 스포츠심리학 · 체육행정 및 관리, 체육측정평가 · 운동역학 · 발육발달학 · 운동생리학 · 운동영양학 · 스포츠의학 · 운동처방 · 스포츠교육 · 특수교육 · 무용이었다.
대회기간 동안에는 제12차 동아시아경기협의회와 제30차 아시아올림픽평의회가 개최되었다. 제12차 동아시아경기협의회는 1977년 5월 8일 부산롯데호텔에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9개 국 32명의 회의대표가 참가한 가운데 개최되었는데 볼링의 전시종목의 채택과 약물검사에 관해 논의되었다. 볼링을 전시종목으로 채택하고 약물 및 여성검사는 IOC규정에 따라 EAGA 의무위원회의 감독하에 실시토록 결정하였다.
제30차 OCA집행위원회는 1997년 5월 11일 부산롯데호텔에서 개최되었으며 사마란치 IOC위원장, 김운용 대회조직위원장. 셔이크 아마드 OCA회장, 그리고 OCA 집행위원이 참가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동 위원회는 1998년 제13회 방콕아시아경기대회의 개최준비 상황보고와 1999년 제4회 용평동아시아경기대회, 2002년 부산아시아경기대회의 준비사항 보고를 들었다.
뿐만 아니라 대회 개회식을 전후하여 국제스포츠 주요 인사들이 모여들었던 롯데호텔은 2004년 하계올림픽 유치도시들의 유치홍보와 1998년 방콕아시아경기대회 리셉션 등이 열려 풍성한 스포츠 외교의 장이 되었으며, 한국스포츠를 세계 속에 인식시키고 우리나라의 국제종합대회 유치역량을 홍보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특히 이번 대회는 2002년 아시아경기대회의 전초전이며, 대회유치도 북한의 갑작스런 반납으로 준비기간이 짧았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데도 조직위원회에서 기존시설을 최대한 활용하여 예산을 절감하고 대회를 조직적으로 운영해냈다는 점이 돋보였다. 특히 지방에서도 국제대회를 개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2002년 부산아시아경기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또한 대회기간 중 부산시민들의 친절함과 자가용 홀 · 짝수제 운행에 따른 적극적인 협조 등은 성숙된 문화 시민상을 보여줬다.
우리나라 선수단은 당초 금메달 40개로 일본을 제치고 중국에 이어 종합 2위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중국이 전체 메달의 42%를 차지하는 육상과 수영에 2진 선수들을 출전시킴으로써 일본이 육상과 수영에서 선전하여 우리나라는 2위를 탈환하는데 실패하였다. 이 대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문제점은 모든 스포츠의 기본이 되는 육상 · 수영 등의 기초 종목에 대한 선수의 발굴과 육성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투자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종합 1위를 차지한 중국은 육상에서 16개, 수영에서 12개의 금메달을 획득하여 2개 종목에서만 28개의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우리나라와 2위를 다퉜던 일본은 육상에서 16개와 수영에서는 21개의 금메달 등 무려 모두 37개 금메달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남자 육상에서 4개의 금메달과 수영에서는 남자가 2개의 금메달을 차지해 이들과 대조를 이루었다.
전체적인 메달분포를 보면 중국은 금메달 62개, 은메달 59개, 동메달 62개를 획득하였고, 일본은 금메달 47개, 은메달 52개, 동메달 53개, 우리나라는 금메달 45개, 은메달 38개, 동메달 51개, 그리고 카자흐스탄이 금메달 24개, 은메달 12개, 동메달 22개를 따냄으로서 4개국이 전체 메달의 90% 이상을 차지하였다. 이는 참가국 9개 국간의 실력편차가 크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제1회 대회 때는 중국이 금메달 105개, 한국이 23개, 일본의 금메달이 25개였던 점과 비교하면 한국과 일본의 경기력 향상은 매우 괄목할만하였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선수단의 종목별 경기성적을 살펴보면 수영 경영에서 남자선수 조광제는 평영100m에서 중국과 일본선수를 당당히 누르고 한국선수단에 첫 금메달을 안겨주었고, 김방현은 개인혼영400m에서 금메달과 접영200m에서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그리고 이규창은 자유형 1,500m에서 은메달과 400m에서 동메달을 획득하였고, 고윤호는 자유형 100m와 200m에서 동메달을 획득하였으며, 또한 지상준(池相俊)은 배영200m에서 동메달을 추가하였다. 반면에 여자선수는 이보은이 자유형 100m에서 유일하게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다이빙에서는 어린 선수들이 괄목하게 성장하여 세계적인 선수들과 난이도가 대등한 경기를 펼치며 권경민이 남자부 3m스프링보드와 10m플랫폼에서 각각 동메달을 획득하였고, 이미선이 여자부 10m플랫폼에서 동메달을 따내 한국 다이빙의 발전 가능성을 제시해 주었다.
육상에서는 전반적으로 일본의 경기력이 상당히 향상되었고 그 중에서도 단거리 및 허들의 발전이 있었다. 우리나라 선수들은 전반적으로 성적이 저조하였다. 남자 400m의 손주일과 800m의 김순형(金順亨), 그리고 남자 높이뛰기의 이진택(李鎭宅), 남자 10종경기 김태근(金泰根)이 금메달을 획득하여 체면을 유지하였으며, 하프마라톤에서 제인모가 2위, 고정원이 3위를 해 마라톤 한국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배드민턴선수단은 남자단체, 남자복식에 이동수 · 유용성(柳鏞成), 혼합복식에 이동수 · 임경진, 그리고 여자단식에서 이주현이 금메달을 획득하였고, 여자단체와 남자복식에서 최지태 · 김중석이 은메달, 남자단식과 혼합복식에서 동메달을 추가함으로써 배드민턴에서 금메달 4개, 은메달 3개, 동메달 2개를 획득하여 종합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올렸다.
전통적으로 아시아경기대회의 메달 종목인 복싱은 서울아시아경기대회와 서울올림픽을 전후로 하여 아시아 복싱강국을 군림하였으나 지금은 구소련의 분리독립으로 인해 아시아지역에 5개국이 편입함에 따라 판도가 많이 달라졌다. 이번 대회에서도 카자흐스탄이 금메달 7개, 은메달 2, 동메달 3개로 복싱에서 다수의 메달을 획득한 점이 그러한 증거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과 복싱인구가 격감하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최준욱(라이트플라이급) · 최승록(밴텀급) · 신은철(라이트급) · 고영삼(헤비급) 선수 등이 금메달 4개, 은메달 5개, 동메달 4개로 기대 이상으로 좋은 성적을 올렸다.
레슬링도 자유형에서 노원창(63kg) · 황상호(69kg) 선수와 그레꼬로망형의 하태연(54kg) · 박치호(58kg) · 손상필(69kg) · 박명석(85kg) · 양영진(125kg) 선수가 금메달 7개를 획득하였으며, 자유형의 정진혁 · 양현모 · 김태호 선수가 은메달을, 그리고 그레꼬로망형에서는 김경중과 한치호가 은메달을 획득하는 등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체조경기의 성적은 세계 정상권에 있는 중국선수들이 14개의 금메달 중 10개의 메달을 가져갔고, 우리나라 선수들은 여홍철(呂洪哲)이 마루운동에서 금메달과 도마에서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그 밖에 남 · 녀 단체전과 안마에서 이주형이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개인전 여자부에서는 공윤진이 평균대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였다.
여자농구선수단은 제17회 ABC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귀국하여 곧 바로 태릉선수촌으로 들어간 다음날 부산동아시아경기대회에 출전하여 피로가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금메달을 차지한 반면에, 남자농구는 대만에 패해서 은메달에 머물렀고, 6개국이 참가한 축구는 풀리그전으로 대회를 치른 결과 일본에게 패했으나 종합전적에서 4승 1패로 우승하였다.
역도선수단은 동아시아경기대회를 대비하여 실전훈련과 컨디션조절에 중점을 두고 훈련한 결과 남자선수단에서는 김태현(108kg 이상)과 이강석(76kg)이 금메달을 차지하였으며, 정대진(鄭大珍)과 김학봉(金鶴鳳)이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그리고 이배영 · 황의열(黃義烈) · 최병찬(崔炳贊) · 염동철(廉東喆) · 전용성(全龍星) · 최종근 선수는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여자선수들은 금메달 없이 최명식의 은메달과 신영주 · 최은자 · 강미숙 · 김동희 · 김순희 선수가 동메달을 획득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였다.
태권도는 남 · 녀 각각 4체급씩 8개의 금메달을 놓고 겨루었는데 남자 4체급, 여자 3체급에서 우승하여 7개의 금메달로 이 대회의 종합전적에 크게 기여하였다. 남자부 우승자는 김의철(-58kg) · 김천규(-68kg) · 고성석(-80kg) · 강동국(80kg 이상)이며, 여자부는 심혜영(-49kg) · 이승민(-57kg) · 김윤경(67kg 이상) 선수가 우승하였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 참가국 모든 나라가 메달을 획득하는 현상을 보였다.
정구는 세계 정상권에 있는 일본 · 대만 · 중국 등이 참가하였다. 남 · 녀 단체전에서 우승하였고, 우리 선수들끼리 결승전을 치룬 남자복식에서는 최지훈이 금메달을 방준화는 은메달을 차지하였으며, 여자복식에서는 강지숙(姜志淑) · 정희윤이 금메달과 여자단식에서는 김경자가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또한 여자단식의 강지숙은 은메달을 획득하였으며 여자복식에서 동메달을 추가하였다. 이로써 100년 사상 처음으로 전종목(금메달 6개)을 우승하는 경사를 맞이하였다.
일본과 세계의 정상을 다투는 남자유도는 이번 동아시아경기대회에서 3∼4개의 금메달을 목표로 참가하였으나 그 이상의 전적을 올렸다. 김혁(-65kg) · 곽대성(-71kg) · 조인철(-78kg) · 김민수(-95kg) 선수가 분전하여 금메달을 획득하여 일본을 누르고 좋은 성적을 올렸다. 그러나 확실한 금메달로 생각했던 전기영이 은메달에 머물렀다. 그리고 여자부에서는 정성숙(鄭成淑, -61kg)과 조민선(曺敏仙, -66kg)이 금메달, 유희준 · 현숙희(玄淑嬉)가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중국의 전통무술인 우슈는 중국이 6개의 금메달 중 3종목을 석권해 종주국의 체면을 유지하였고, 일본 · 대만 · 홍콩에서 각각 1개의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우리나라의 박찬대(朴贊大)가 남자 전능에서 은메달을 차지하였으며, 여자 태극권에서 부은경이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역도는 남자 10개, 여자 9개의 금메달 중 남자부는 중국이 7개, 한국이 2개, 카자흐스탄이 1개를 차지하였고, 여자부는 중국이 5개, 대만이 4개를 차지하여 종주국의 독무대가 되다시피 하였다. 우리나라는 남자 76kg급의 이강석과 +108kg급의 김태현이 우승하였고 70kg급의 김학봉(金鶴鳳), 108kg급의 정대진(鄭大珍)이 은메달을 차지하였다.
우리나라는 이 대회의 시범종목인 조정에서 남자 에이트 이성국 외 8명과 더블스컬에서 이인수(李仁秀) · 이호가 아시아 조정 강국인 일본과 중국을 누르고 금메달을 차지하였다. 또 여자 싱글스컬에 소미령, 무타페어에 임충숙 · 임선교가, 무타포어에서 은메달을 획득하였고, 남자 싱글스컬, 무타페어, 무타포어, 경량급싱글스컬 그리고 여자 경량급싱글스컬에서 동메달을 추가하였다.
전시종목인 볼링에서는 여자 마스터즈에서 김여진이 은메달 1개만을 획득하는 부진을 보였다. 특히 이번 대회에서는 역도에서 아시아신기록 7개와 타이 스코어기록 3개를 수립하였을 뿐만 아니라 동종목 세계신기록 5개와 2개의 타이 스코어기록이 수립되었다. 이 밖에도 남자수영 접영200m에서 아시아신기록을 수립하였다.
특히, 제2회 부산동아시아경기대회는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을 1년 앞두고 개최되었기 때문에 아시아의 스포츠계를 이끌어가는 중국과 일본의 전력을 탐색할 수 있으며, 한국 스포츠의 현주소에서 볼 때 밝은 미래를 향해 도약할 수 있다는 확신을 모두에게 입증해준 점에서 의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