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장(二次葬) · 이중장제(二重葬制)의 일종이다. 중국 남부 지방이나 대만, 일본의 오키나와, 우리나라 남해안 일부 지방에서 현재까지 행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환태평양지구(環太平洋地區)에서 나타나는 묘제(墓制)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삼국지』위서 동이전에 이러한 장례법이 소개되어 있다. 이후 불교와 유교가 도입되면서 장례에도 변화가 일어나는데 화장하여 유골을 추려 뼈단지에 넣어 묻는 풍습은 고려시대까지 줄곧 이어졌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유교식 장례의 도입으로 매장이 일반화되었지만 조선시대 말까지도 이차장의 일종인 초분이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었다. 오늘날에는 전라남도 진도(珍島)와 초도(草島)를 중심으로 하는 도서 지방에서 보이며, 명칭도 ‘이차장’ · ‘복장(複葬)’ · ‘구토롱’ 등 다양하게 불리고 있다.
이와 같은 세골장은 민속학적으로 볼 때, 농경문화 복합현상의 하나로서, 현재 남아 있는 진오기굿이나 씻김굿은 이와 관련된 의식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고고학적인 자료는 우리나라의 땅이 산성인 관계로 실제의 유골이 나타나지 않아서 확실한 것을 알 수 없다.
그러나 여러 곳에서 발굴 조사된 고인돌 중 나주 보산리 · 판촌리, 춘천 중도(中島) 등의 고인돌의 경우 돌방 크기가 1m 미만의 작은 것들이 있어서 유아용이거나 굽혀묻기[屈身葬]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세골장을 포함한 이차장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특히, 신석기시대 유적인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 후포리의 경우, 직경 4m 남짓한 구덩이 안에 40인 이상이 매장된 세골장이란 점에서 주목된다. 이를 고려한다면 세골장의 기원은 신석기시대에 처음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세골장의 풍습은 보통 화남(華南)계통의 장제(葬制)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육신절단(肉身切斷)’ 및 골수신앙(骨髓信仰)으로 보고 있어 반드시 남방계의 문화로만 보기는 어렵다.